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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가 서로 대화를 나눌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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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불교철학의 중요한 과업 가운데 하나인데, 과학은 우리 세계의 본성에 대해 강력한 통찰력을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투안: 연구를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실재, 물질, 시간, 공간 등의 개념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들과 대면할 때마다 불교가 이러한 개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실재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불교의 실재 관념과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티유: 현상의 배후에는 확고부동한 실재가 존재하는가? 현상세계, 즉 주변에서 우리가 ‘실재’로 보는 세계의 기원은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시간, 공간, 자연법칙은 실재로서 존재하는가? 2,500년 전부터 불교의 형이상학자들은 줄곧 이러한 문제들을 검토했다.
투안: 당신은 불교를 일종의 마음의 과학으로 제시하는 것인가?
마티유: 불교의 방법에는 분석에서 시작되고 종종 ‘사고(思考) 실험’에 의존한다. 그것은 정신 속에서 수행되는 가설적 실험으로, 비록 물리적인 현실에서 실행될 수 없다 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기법은 과학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투안: 옳은 말이다. 사고(思考) 실험은 특히 물리학에서 대단히 유효하다.
마티유: 불교는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체험에 기초를 둔 탐구이기 때문에, 경직된 교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불교는 실재에 대한 어떠한 견해라도 그것이 확실하다고 이해된다면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 불교의 주요 목표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들이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이다.
투안: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티유: 그것은 최고의 지식 상태로, 무한한 자비심과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의 축적이나 현상 세계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앎이란 고통의 궁극적인 치유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별들의 밝기나 별들 사이의 거리를 아는 것이 유용성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투안: 19세기까지 고전 과학은 사물이 고유한 실체를 갖고 있으며 엄격한 인과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발전한 양자물리학은 물질의 기본적 구성 요소가 명확하고 고유한 실체를 갖고 있다는 관념을 심각하게 뒤흔들어놓았으며, 이 세계가 엄격한 인과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마티유: 불교에서 공이 사물의 궁극적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사물, 즉 세계의 현상들에 독자적이고 영속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공이라고 부르는 실재의 진실한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에서는 분할할 수 없는 물질의 입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 투안: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론과 경험이 합치되는 것이다.
마티유: 물론이다. 이론이 합치되어야 경험의 힘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의식이 실재 전체와 본질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의 정신은 이러한 발견이 함축하고 있는 결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우리의 삶은 그로 인해 변화되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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