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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들은 그러지요. “우리 아버지가 나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잘 될 것 같다. 엄마가 달라지면 내가 좋아질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잘 해 주면 좋을 텐데….” 마치 내 행복이 밖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내 행복은 내 마음에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늘 생각하고 공양하고 예배하게 되면 밖의 재앙이나 안의 재앙이 다 소멸하게 되고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것..
관이라는 게. 첫째는 진관으로 참세계를 보는 능력, 둘째는 청정관으로 청정함을 보는 능력이고, 셋째는 광대지혜관으로 지혜로써 보는 능력이고, 넷째는 자관, 다섯째는 비관으로 자비로써 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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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집안에 오면 듣는 게 매일 이런 소리니까 오다가다 듣는 얘기인 줄 아는데 귀한 말씀입니다. 대개 우리들은 그러지요. “우리 아버지가 나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잘 될 것 같다. 엄마가 달라지면 내가 좋아질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잘 해 주면 좋을 텐데….” 마치 내 행복이 밖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내 행복은 내 마음에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발견입니까?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다 아는데 부처님이 최초에 이런 행복의 틀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인류문화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천수경』에 나오지요. 그저 높고 깊고 미묘한 부처님 법입니다. 나무 속에 불이 있다는 것을 알 듯이 사람 속에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불법(佛法)입니다.
그렇다면 불성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을 마음대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삼독과 육진이 중독돼서 지금까지 불행을 만들고 있는 것이 범부들의 모습입니다. 나의 불행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는 나의 삼독으로부터 왔다는 대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청정심을 일으키는 것을 발심이라고 하는데 그 청정심은 태양이 암실을 환하게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불행을 사라지게 합니다.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아진 상태를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 게송 부분에 “관음묘지력(觀音妙智力) 능구세간고(能救世間苦)하니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제하니 구족신통력(具足神通力) 광수지방편(廣修智方便)하고 신통력을 구족하고 지혜방편을 널리 닦아서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 무찰불현신(無刹不現身)이니라.” 시방세계 모든 국토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중생의 한결같은 특징은 안으로부터 삼독이 중독되어 있고 밖으로는 수 많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평생 욕망과 고통의 굴레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욕망이 없고 고통이 없는 건 도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늘 생각하고 공양하고 예배하게 되면 밖의 재앙이나 안의 재앙이 다 소멸하게 되고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관음신앙입니다. 우리는 흔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로 알고 있는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오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觀)이라는 게 ‘본다’라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보는 힘을 뜻합니다. 첫째는 진관(眞觀)으로 참세계를 보는 능력입니다. 둘째는 청정관(淸淨觀)으로 청정함을 보는 능력이고, 셋째는 광대지혜관(廣大智慧觀)으로 지혜로써 보는 능력이고, 넷째는 자관(慈觀), 다섯째는 비관(悲觀)으로 자비로써 본다는 것입니다.
이 관세음보살의 오관을 계환 선사라는 분이 해석하기를 진관은 모든 허망한 습관들을 다 여읜 상태, 즉 심망이라고도 하는데 망을 쉰다는 뜻입니다. 중생들은 부질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쓸데없는 줄 알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게 중생입니다. 진관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진실을 보는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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