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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가피와 위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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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태양을 맞이하게 되고 그러면 암실은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염이 그런 의미입니다.
즉, 높은 산이 있으면 올라가야지 산은 산대로 홀로 높고 나는 나대로 늘 밑에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도 상념, 늘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인연의 고리가 되어 위신력을 나한테로 오게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삼독과 육진은 말하자면 수도꼭지를 막아 놓은 상태와 같은 이치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 꽉 막아 놓은 수도꼭지를 열어놓은 상태가 되는 것이기에 본래대로 물이 흐르는 모습, 즉 염피관음력으로 장애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의 염피관음력으로 모든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상태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암실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곳은 항상 어둡겠지요. 그러나 문만 열면 태양이 항상 밝게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태양이 그토록 밝지만 암실은 항상 어둡습니다.
문제는 밝은 햇빛을 어두운 방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간단합니다. 문만 열면 되는 것이죠.
문을 열면 태양을 맞이하게 되고 그러면 암실은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염(念)이 그런 의미입니다.
즉, 높은 산이 있으면 올라가야지 산은 산대로 홀로 높고 나는 나대로 늘 밑에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도 상념, 늘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인연의 고리가 되어 위신력을 나한테로 오게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삼독과 육진 안에 둘러싸여서 밖으로 보이고 들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마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의 능력은 수도관과도 같습니다. 물이 수도관에 차 있는데 항상 닫혀 있어서 안 나오는 거죠. 그럴 때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바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사실, 수도를 틀어서 나오는 게 아니죠. 늘 물이 흐르게 돼 있는데 중생들 스스로 막아놨을 뿐입니다.
막아 놓은 부분만 제거하면 본래 흐르는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삼독과 육진은 말하자면 수도꼭지를 막아 놓은 상태와 같은 이치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 꽉 막아 놓은 수도꼭지를 열어놓은 상태가 되는 것이기에 본래대로 물이 흐르는 모습, 즉 염피관음력으로 장애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불가사의한 점입니다. 관음신앙은 물질과 물질로써 설명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생각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에 불가사의한 면으로 설명되는 내용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염피관음력으로 모든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상태를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개득해탈(皆得解脫), 즉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죠.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 장애나 문제가 없는 상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중생들 스스로 삼독에서 나왔다고 하는 얘기와 같은 뜻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부모한테서 나왔다든지 어떤 일을 두고 역사가 잘못돼서 그랬다든지 혹은 혈액형이 달라서 그랬다든지 하는 외부적인 조건을 문제삼곤 합니다. 그것은 불교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부모와 연관 짓고 사회와 역사와 관련짓는 것은 세속적인 사유체계입니다.
불교적인 사유체계는 마음을 바꾸면 됩니다. 모든 문제가 내 삼독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하는 자세, 이것을 사성제에서 말하는 고집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에게는 많은 고통이 있는데 유전자가 조작돼서 나왔다든지, 가문이 이상해서 나왔다든지, 역사적인 대가를 치른 탓이라든지 하는 세속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지요.
불교적인 방법은, 삼독에서 괴로움이 나왔다고 하는 고(苦)는 집(集)이라고 하는 번뇌에서 나왔다는 것이 부처님이 발견하신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마치 나무를 보고 불을 발견한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에 나무에 불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꽃피고 잎지고 하는 나무에 불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렸듯이 ‘중생에게 기쁨이 어디서 오느냐’ ‘내 마음을 바꾸면 기쁨이 온다’고 하는 이치를 깨닫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아는 것이 결국 깨달음인데 지금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쉽게 듣고 있지 않습니까? 시커먼 돌멩이 속에 금덩이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운 법문을 편안한 자세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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