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 많은 재앙들을 염피관음력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게송은 들려줍니다.
상념, 즉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써 물리친다는 거죠. 관음력, 즉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나에게 어떻게 오느냐? 바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생각할 때 온다는 거예요. 그게 생각 념자예요. 관세음보살에게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고 우리는 그 관음력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밖의 재앙과 안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음신앙도 그런 원리예요. 관세음보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이 있고 자비가 있고 원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두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죠. 내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염피관음력, 즉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
|
마음의 세 가지 독성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한 번 중독되면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탐독이 가장 심각합니다.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을 보면 그 안에는 많은 시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선사의 설법’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용운 스님은 시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다. 그 선사는 말했다. 애욕을 멀리 여의면 자유와 기쁨이 있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사실 애욕을 멀리 여의게 되면 사랑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기쁨과 평화로운 마음이 찾아드는 게 사실입니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애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서 출발하지요. 계속해서 시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도 어리석었습니다. 사랑의 줄을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 선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즉, 애욕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대안이니까 제시를 하나마나라는 거죠. 애정에 대한 집착을 여읠 때는 평화와 자유와 기쁨이 찾아오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애정에 집착을 여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줄을 그 선사는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용운 스님은 불교의 세계도 알고 중생의 세계도 알아서 불교의 방향을 제시하고 중생의 아픔도 함께 달래주는 그런 시를 쓰고 있는 셈이죠. 불교 사상과 문학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기에 고전이고 명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慈悲)와 위신력(威神力)은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방편입니다. 이것이 관음신앙의 근본입니다. 몸이 아프다든지 하는 것은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도 함께 물리치는 것이 관음신앙입니다. 게송 부분에는 재앙의 여러 가지 사례, 즉 재앙의 항목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 많은 재앙들을 어떻게 물리치느냐 바로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게송은 들려줍니다. 상념, 즉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써 물리친다는 거죠. 관음력, 즉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나에게 어떻게 오느냐? 바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생각할 때 온다는 거예요. 그게 생각 념자(念)예요. 관세음보살에게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고 우리는 그 관음력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밖의 재앙과 안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관음신앙의 영험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어 음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양가는 별로 없지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기호식품과 영양가가 높은 영양식이 있습니다. 기호식품은 몸에 이롭지는 않지만 기분을 좋게 만들고, 영양식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기운을 돋게 하는 음식입니다. 젊을 때는 기호식을 좋아하게 되고 나이들면 영양식을 하게 됩니다. 입에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이라도 그냥 놔두면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문제는 먹어야 된다 이겁니다.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관음신앙도 그런 원리예요. 관세음보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이 있고 자비가 있고 원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두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죠. 내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염피관음력, 즉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