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암 대선사>

<동암선사 부도탑>


녹야원 옛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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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東庵) 과거 30년 전 강원도 오대산 방한암(方漢岩) 큰스님을 친견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스님이 하는 말이 “참선을 해서 견성을 해야지, 그밖에 다른 일은 필경 쓸데없다고 하면서 자취를 감추는 천년 학(鶴)이 될지언정, 저 길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우는 꾀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다. “앵무새는 능히 말은 하지만 나는 새는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곧 법(法)을 일러주는 말이었다. 참선은 세간을 버리고 하는 공부가 아니다. 혹자는 심산궁곡(深山窮谷)에 들어가 솔잎이나 씹어 먹고 독선기심(獨善己心)으로 세상을 피해서 참선하는 것을 강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산불교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그대로 선을 찾아야 세간에 이익을 주는 선이 되고 오늘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종교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 불교다.
불교는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 타율적인 구원을 받는 종교가 아니다. 인간 자신이 곧 최고절성(最高絶性)을 가진 우주의 진리로서 현실과 내세의 자기 앞길을 스스로 닦아 자기를 창조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종교다.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세간을 여이고 별천지(別天地)에서 어떤 위대한 힘을 가지고 제도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 위대한 힘을 가졌다 해서 각자의 업(業)을 현실적으로 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위대한 불심(佛心)이 대중의 생활 속에서 서로 접촉하는 가운데 고해중생에게 약(藥)이 되어 스스로 제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 글에서 동암 선사는 “이와 같이 자신의 진리를 믿고 수행하여 스스로 성불(成佛)의 목적을 이루는 종교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한암(漢岩, 1876∼1951) 스님을 오대산에서 친견하고, 법담(法談)을
나눈 일화를 소개하며 참선 수행에 대한 견지(見地)를 밝힌다. 그리고 동암 선사는 “과거 30년 전 강원도 오대산에서 방한암 큰스님을 친견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스님이 하는 말이 ‘참선을 해서 견성을 해야지 그밖에 다른 일은 필경 쓸데없다고 하면서 자취를 감추는 천년 학(鶴)이 될지언정 저 길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우는 꾀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다. ‘앵무새는 능히 말은 하지만 나는 새는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동암 선사는 당신의 견해도 밝혔다. “이 말은 곧 법(法)을 일러주는 말이었다. 참선은
세간을 버리고 하는 공부가 아니다. 혹자는 심산궁곡(深山窮谷)에 들어가 솔잎이나 씹어 먹고 독선기심(獨善己心)으로 세상을 피해서 참선하는 것을 강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산불교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그대로 선을 찾아야 세간에 이익을 주는 선이 되고, 오늘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종교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 불교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동암 선사는 참선수행의 궁극적인 뜻이 ‘세상에 이익을 주는데 있다.’면서 불교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종교인의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암 선사의 입장은 불교가 개인적인 원력만을 성취하고, 복을 비는 기복(祈福) 위주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구체적인 메시지를 주고 실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현실 참여의식의 선수행을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동암 선사의 의지는 결국 독립운동 참여, 사회복지 실천, 불교정화 운동 참여로 구체화 된 것이었다.(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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