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SNS News & Buddhist Forum


반야심경의 격과 유통과 영험2

현장법사는 나라의 보호 없이 제자 40명만을 데리고 은밀하게 길을 떠났고, 중앙아시아의 관문인 서역 땅 계빈국의 국경에 이르렀을 때에는 40명의 제자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홀몸이 된 현장법사는 하염없이 두려움을 안고 큰 강가에 이르렀으나 나룻배마저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상류로부터 집짓는 재목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저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가가 있을 것이니 쉬어 가로 하자.”
한참을 올라가자 잡초가 우거진 쓸쓸한 고찰이 눈에 띄었고, 안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러와 들어가 보니 문둥병을 앓는 노비구가 있었습니다. 현장법사는 병든 노비구만 홀로 있게 된 내력을 물었습니다. “이 절에는 원래 대중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이와 같은 업병(業病)을 앓게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다 떠나고 말았다오.”
비록 구법의 길이 바쁘기는 하였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당장 숨이 넘어갈 병든 노비구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장법사는 지성을 다해 간병하였고, 다행히 노승은 얼마 있지 않아 완쾌되었습니다. 노승은 그지없이 감사하며 더 머무르기를 권하였지만, 현장법사는 곧 떠나야 한다며 하직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노승은 품속에서 범어로 된 반야심경 한 권을 꺼내어 선물하였습니다.
그 뒤 현장법사는 이 경의 가피를 많이 입었습니다. 재난을 당할 때마다 이 경을 독송함으로써 몰아치는 공포와 모든 액난을 면한 것입니다.

특히 현장법사가 인도 항하(恒河: 갠지스강)의 한 지류를 통과할 무렵, 떼지어 덤벼든 그곳의 주민들이 순식간에사지를 묶어버렸고, 당황한 현장법사는 물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결박하는 것이오?”
“항하의 재물로 바치려는 것이오.”
그들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항하의 수신(水神)을 잘 대접해야 농사가 풍년이 드는데, 그 대접하는 방법이 사람을 바쳐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제삿날이었고, 현장법사가 공교롭게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으므로, 같은 마을 사람보다는 외국인을 죽이기가 인정상 쉬운 일이라 실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법사로서는 목숨은 아깝지 않았지만, 인도 땅에 도착하여 범본 불경을 구하지도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장 때문인가? 따라오던 제자 40명을 다 죽이고 이제 자신까지 죽게 되었으니...”

현장법사는 마음으로 깊이 참회하며 그들에게 청했습니다.

“나는 출가한 승려입니다. 당신네들 모두가 잘 살게 될 수 있다면 내 목숨을 기꺼이 줄 것이오. 그러나 죽기 전에 경문이나 한번 읽을 수 있도록 이 포승줄을 약간 늦추어 주시오.”

현장법사는 반야심경을 품에서 찾아내어 세 번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새까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모래흙을수십 길이나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변에 놀란 주민들은 대경실색하여 현장법사를 풀어주었습니다.
그 뒤 현장법사는 인도의 나란타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학문을 연구하였고, 그 대학의 대학원장급에 해당하는 직책과 예우를 받았으며, 귀국할 때는 천축국의 왕이 나라의 보배로 받들면서 환국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침내 귀국한 현장법사는 그의 서원처럼 번역불사로 생애를 끝내게 되었는데, 그 어떤 경전보다 반야심경을 먼저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귀국 길에 노승의 중병을 간호해 주고 범본 반야심경을 얻었던 계빈국의 고찰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노승은 고사하고 헐어빠진 고찰의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영험담 중에서 2004년에 작고하신 "한갑진 거사님의 체험"

후일 현장법사께서는 그 ‘병든 노화상이 관세음보살의 시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
반야심경과 현장법사의 이러한 인연담과 함께 현장법사 번역의 반야심경은 매우 중요시되어, 예불의식이나 법회가 있을 때면 종파를 초월하여 이 경전을 독송하였으며, 불자들은 신행생활 및 공부의 한 방편으로 반야심경을 즐겨 외웠습니다. 그리고 이 경전에 대한 해설서도 수백 종이나 발간되었습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서 교리적으로나 신행의 면에서 핵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야심경!
이토록 소중한 반야심경이기에 이 경을 읽고 얻은 영험담 또한 역사적으로 매우 많이 전래되고 있습니다.
이제 반야심경을 공부하는 우리의 신심을 조금이나마 북돋우기 위해, 많은 영험담 중에서 2004년에 작고하신 한갑진(韓甲振) 거사님의 체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한갑진 거사의 아버지는 8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는 7일을 더 넘기지 못한다고 하였고, 환자 또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사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거사의 아버지는 반듯하게 눕지 않고 모로 누워 주무셨는데, 병석에서도 팔다리를 구부리고 모로만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차가워지고 임종이 임박해짐에 따라 구부러진 팔다리가 그대로 굳어 다시 펴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상례에 따라 염을 하고 입관을 해야 하는데 팔다리가 펴지지 않는 것부터가 거사에게는 큰 걱정이었습니다. 마침내 임종 3일전, 아버지는 가족도 잘 분간하지 못한 채 계속 신음소리만 내었습니다. 전신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면서 허리부분이 더욱 심하게 오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허공을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였지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갑진 거사가 암담한 심정으로 서성이고 있을 때, 병실 한쪽에 놓여있는 반야심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사는 반야심경을 펼쳐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런데 허공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만 하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경 소리가 참 듣기 좋구나.”
거사는 너무 신기하여 반야심경을 계속 읽었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아버지의 얼굴이 온화하게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을 계속 읽다보니 목이 잠기고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녹음을 하면 되겠구나.’
거사는 녹음을 한 다음, 아내와 교대를 해가며 밤새도록 녹음기를 반복해 틀어 드렸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아버지의 수족에 따스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모로 누웠던 몸을 반듯이 고쳐 누우셨고, 오그렸던 팔과 다리를 똑바로 쭉 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뒤, 아버지는 평화로운 얼굴로 아들의 손을 잡고 운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반야심경의 영험을 경험한 한갑진 거사는 불교에깊이 귀의하여, ‘호국팔만대장경’ 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사후 세계]등 여러 권의 불서를 번역하였습니다.
***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으로도 굳어버린 몸을 녹여 편안한 임종을 가져다준 반야심경!
만약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읽으면 그 영험이나 공덕이 어떠하겠습니까?
반야심경 속의 말씀 그대로 걸림 없는 마음을 얻을 뿐 아니라 행복한 삶, 안정된 생활, 필경에는 부처님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
이제 감히 청하옵니다. 이 수승한 반야심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마하심으로 바꾸고, 삶을 지혜롭게, 현실을 바라밀의 세계로 바꾸어 봅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이 속에 그 비결이 남김없이 들어있으니....,

다른 페이지로 가기(5면)

<오른쪽 로고 크릭!! web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