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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자아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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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기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철학자, 데카르트와 흄이 말한 이후 유럽세계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살 때의 내 모습과 70 노인이 된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이 두 모습을 같은 '나'로 볼 수 있을까? 신경의학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은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정신으로 구성돼있다.

육체는 수억 아니 수조의 세포들이 모여서 형성된 집합체로 120세를 살다 모두 죽게 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각각 다른 수명이 있다. 적혈구는 120일, 백혈구는 28일, 피부세포는 14-21일을 살다 죽고 대신 다른 세포들이 생성돼 교체된다. 그렇다면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고 재생된 다른 '존재인 나'일 뿐이다.
시·청·촉·후·미각을 통해 물체의 존재를 정의하려고 했으나 감각을 통한 존재는 믿을 수가 없었기에 데카르트는 고민하다가 문득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정의했다.

1846년 피네아스 게이지의 뇌 손상 사건, 1953년 H.M의 뇌수술 사건 이후 사람의 뇌는 생각하고 기억하는 곳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20~30년, CT, MRI 등의 발달로 철학이 모르는 비밀을 의학은 밝혀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죽고 재생하나, 뇌 속에 있는 뉴런(Neuron)만은 생후 3세까지 형성되면 재생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원래의 세포로 유지한다. 대뇌에 있는 뉴런은 140억 개가 되며 각 뉴론에는 수상, 축색돌기가 있다. 놀라운 것은 뉴런 하나에 작은 가시돌기(Spine)가 1만개가 있어 다른 뉴론의 돌기와 시냅스(연합)를 한다. 결국 140억×10000개의 시냅스를 이룬다. 이들 시냅스 속에는 '기억'이란 정보가 저장 돼 있음을 에릭 칸델은 증명해 노벨상을 받았다. 기억은 사고(idea)를 만들고 사고는 말과 글을 통해 '생각'이 된다. 그러므로 존재란 결국 뉴론이 죽지 않고 서로 시냅스를 해 기억을 유지함으로 나라는 존재가 지속된다.

한편 자아(Self)에 대해서도 많은 철학적 종교적 설명이 있으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의학적으로는 대뇌의 뒷부분 즉 감각이 서로 한 곳으로 모이는 '고차신경연합(게쉬윈드 영역)'에서 신체의 표상(表象, symbol)이 기억된 시각 공간을 만나 표상 공간이 돼 그곳에서 자아가 활동한다"고 칸델은 정의한다. 실제로 그 영역에서 나의 존재를 느끼며 공간과 시간을 느낀다. 놀라운 것은 이 게쉬윈드 영역과 전두엽의 배외측전전두엽은 수억의 섬유다발을 통해 단숨에 전달해주어 이 정보를 해석, 분석 그리고 결정을 하는 인지 기능을 밤낮없이 쉬지 않고 계속해 왔기 때문에 1살 때, 내 모습과 70세의 내 모습은 다르지만 '나는 존재하고 있다'라고 본다. 솔직히 데카르트와 흄은 비록 의학적인 기능은 몰랐지만 놀랍게도 대답은 옳게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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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호 / 내과·신경과 은퇴의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02/07 미주판 21면


死後世界는 어떻게 전개될까?

(1) 見正비구는 새로 출가하여 아직 법을 많이 듣지 못했으므로 이런 의심이 있었다. [부처님은 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마는, 사람이 죽은 후에는 아무도 다시 와서 말하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아는가?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겠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벌써 그 마음을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저 나무는 한 개의 씨로서 지 수 화 풍 4대로 자라나 저렇게 크고 무성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의지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씨로 있을 때에는, 뿌리 줄기 가지 열매도 없었고, 또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4대의 인연을 얻어, 싹이 돋고, 잎이 피고, 줄기가 나고, 마디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어, 잇따라 변하여 저렇게 자란 것이다.

그러나 저것은 예전대로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예전 것을 여윈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씨지마는, 씨에서 나오는 것은 싹이요, 싹에서 나오는 것은 줄기요, 줄기에서 나오는 것은 꽃망울이요, 꽃망울에서 나오는 것은 꽃이요, 꽃에서 나오는 것은 열매다. 이렇게 변천하여 일정한 이름이 없이 큰 나무가 된 것이다. 그 나무에서 다시 과실이 나고 과실에서 다시 나무가 나고 하여, 세월이 많아지면 나무도 무성할 터인데, 그러면 그 꽃, 열매, 줄기, 마디, 뿌리 등 모든 것을 주어 모아 다시 씨를 만들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미 그렇게 변천하였으므로 다시는 씨로 회복될 수 없고, 날로 썩어 없어지고 맙니다.-

생사도 또한 그러하다. 識神이 일어나는 법이 되고, 일어나는 법은 癡라는 것이다. 치는 탐애를 이루는 것이니, 치는 저 나무 씨와 같다.  씨가 적어도 큰 나무를 생장하는 것처럼, 치 하나에 많은 인연이 있고, 많은 인연은 치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치에서 行이 나오고, 행에서 識이 나오고, 식에서 名色이 나오고, 명색에서 六入이 나오고, 육입에서 觸이 나오고, 촉에서 受가 나오고, 수에서 愛가 나오고, 애에서 有가 나오고, 유에서 生이 나오고, 생에서 老死가 나왔다.

이러한  12인연으로 몸이 되었으니,  몸이 있으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으면 식신이 행을 따라가, 다시 부모가 있고, 형체가 생기고, 6정이 생기고, 습성이 있고, 고락을 받고, 풍속을 따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가 예전 것이 아니므로, 다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예전 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새로 보는 것으로만 따라가 그것만을 있다하여 떳떳한 것으로 알고, 전세 후세는 없다하여, 다시는 예전 몸, 예전 습관, 예전 처소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마치 저 나무가 다시 씨로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견정비구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는 출생한 이후로 죽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혹은 부자 형제 부부 벗이 서로 사랑도 하였고, 혹은 원수가 되어 서로 미워도 하였지마는, 죽은 후에는 魂身이 돌아와서 은혜를 갚거나 원수를 갚는 일이 없으니, 원컨대 그것을 분별하여 나의 의심을 풀어주소서.-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야, 識이란 것은 형체가 없다. 옮아간다는 것도 行을 따라 있는 것이다. 만일 몸이 복을 지었다면 복의 識으로 轉生하였으므로, 다시 돌아와서 사람에게 갚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철광에서 돌을 녹이어 쇠를 만들고, 쇠를 다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다면, 그 그릇으로 다시 돌을 만들 수 있느냐?”

-아닙니다. 이미 쇠가 되었으므로 다시 돌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識이 옮아가 中陰속에 있는 것은, 마치 돌을 녹여서 쇠를 만든 것 같고, 또 중음에서 옮겨 다른 몸을 받는 것은, 마치 쇠로 그릇을 부은 것 같으니, 형상이 없어지고 체가 바뀌었으므로 다시 예전 識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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