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만경 강의 9 자성청정장(自性淸淨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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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 강의 9 자성청정장(自性淸淨章)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수) 10 03, 2018 12:53 pm

승만경 강의 9
자성청정장(自性淸淨章)


경(經)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래장이기 때문에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생사를 설하는 것은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생사라고 하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이 사라지고 이어서 일어나지 않았던 감각기관이 일어나는 것을 생사라고 이름합니다.


설(說) 여기서 생사(生死)는 모든 중생의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며, 한개인의 삶의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생사뿐이 아닌 세상의 모든 현상은 모두 여래장에 의지하는것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세상의 모든 변화 현상중 유정계(有情界) 중생에게 가장 극적이고, 중생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가장 큰 변화이기에 이 생사를 바르게 설하는 것을 가장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삶과 죽음은 오직 감각기관이 생기고 정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오직 육식(六識)의 관점일뿐, 진여의 관점에서는 그 삶과 죽음의 매개(媒介) 역시 잠시 허공에 뜬 헛꽃과 같은 것일뿐 태어났다고 해서 없던것이 생긴것이 아니요, 죽었다고 해서 살아있던 존재가 사라지는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생사를 오직 가상현실과 같이 감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것이라 규정합니다.
그 안에 담긴 두려움과 환희는 모두 중생의 어리석은 육식(六識)이 만든 무명일뿐입니다.


이제 승만경 강의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한듯합니다.

다른 불경을 강의하기에 앞서 요즘 제 글에 댓글 달으시는 기독교 전도사님이신지, 목사님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열렬기독교 전파자분이 계신데 그분이 자주 선과 악을 이야기 하시며 불교에서는 선과악을 어떤 기준으로 분별하느냐는 내용의 질문을 자주하십니다.

선과악이란 명제는 참으로 인류가 오랬동안 고민하고, 인류를 번뇌에 빠뜨린 명제입니다.
이 명제는 가장 고학력자인 박사부터 초등학생까지 그 누구에게나 논의 대상이면서 그 어떤이도 확실한, 어떤것이 선이고 어떤것이 악인지를, 규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얼마전 하나티비에서 본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제목이 (나쁜녀석들 : 악의 도시) 인데 거기서 등장인물인 반준혁 부장검사가 후배검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선은 미숙하고 악은 원숙하다.
선이 원숙해지면 악이 된다.'였던것 같습니다.

나름 시대의 엘리트라 불리는 검사마저 선과 악의 문제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과악의 문제가 서구와 중동의 순백을 추구하는 종교에서는 나는 선이요 상대는 악이란 규정하에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서로 자신은 깨끗한 백색이고, 상대는 어두운 검은색이란 주장을 하며, 그 주장을 힘으로 관철하려고 서로 다투고, 전쟁까지 합니다.

선과악이 그 가진 힘의 크기로 구분될수 있는 것인지요?
많은 불자님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힘이 쎄기에 자신은 선이요, 상대는 힘이 약하기에 악인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군원정을 갔던 유럽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의 무리를 무찌른 성전을 치룬 것이고 그에 반대되는 중동의 회교도들은 극악무도한 이교도인것입니다.
또한 아메리카의 인디언을 학살했던 청교도 신자들에게도 주술과 원시 샤면을 존경하는 인디언들은 우상을 섬기는 극악무도한 악당이었을 것입니다.
그 중동의 회교도와 인디언에게 유럽의 흰색 옷으로 몸을 감은 자칭 성기사와 청교도들이 과연 위대한 선인(善人)으로 보였을까요?
절대 아닐것입니다.
그들에게 성기사와 청교들은 가식과 위선에 꽉찬 극악무도한 악마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예전에 비유를 들은 마더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보더라도 알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카톨릭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성녀라 이름 붙여졌지만, 그에 반하는 이교도 들에게는 상처입고, 몸이 썩어들어가더라도 개종하지 않으면 항생제를 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이교도들의 입장에서는 선량한 양의 탈을 쓴 극악무도한 악당중에서도 상악당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극단적인 선과악의 개념은 인류에게 고통과 좌절만을 안겨줄뿐 절대 평화와 안정을 줄수 없습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는 임종하기 몇년전부터 자신의 신앙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때문에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의 삶은 너무 무미건조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외롭습니다.
저는 마치 고문을 당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심오한 철학이 배제된 마치 고대 왕이나 황제에게 병사들이 바치는 충성같은 그런 막무가내식의 믿음과 신앙은 언제나 풀리지 않는 의문과 번뇌가 생길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니까요.
심오한 철학적 명제에 대한 인간의 의구심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며, 그렇기에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준낮은 맹목적인 신앙으로는 절대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심오한 철학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지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도록 폭력으로 굴복시킨다고 해도 그의 마음속에 어느날 문득 생긴 의문은 그의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뿐입니다.
타인(악당, 이교도 포함)의 사랑하지 않고 불이(不二)의 이치를 실천하지 않으며 스스로 구원을 바란다는것은 아스팔트에 벼농사를 짓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선과악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오직 이론으로만 존재할뿐이지 절대 존재할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선과 악은 오직 상대적인 선과 악일뿐이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오직 인간의 나름의 상태와 성질에 대한 묘사일뿐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때 비열한 악당을 잔인하게 죽이고 고문하는 장면에서 통쾌감을 느끼며 탄성을 내는 이들을 볼때 제 눈에는 그 관객이 전혀 선한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권선징악은 원시적인 인류의 마음에 흑과 백을 구분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때 필요한 개념일뿐이지, 고도의 심오한 철학을 배우고 깨달으려 노력하는 우리 불자님들이 가질 마음이 아닙니다.


여래께서는 그러한 수준낮은 선과악의 개념보다는 더욱 심오하고 초월적인 바른 개념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정함입니다.

이 위대한 불법을 접한 불자님들은 이제 그런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흑백논리에서는 벗어나 레벨업된 청정함이란 이치를 터득하셔야합니다.

선을 흰색, 악을 검은색이라 했을때 청정함이란 투명함입니다.
흰색과 투명함은 비록 밝고, 깨끗하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흰색도 검은색과 같은 유색(有色)이기에 투명함과는 또한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인류의 정신이 미숙할때 인류의 근기를 키우기 위해 많은 고대의 성인자들께서 흑백논리를 가르치신것이지 인류가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도 그 흑백 논리를 버리지 못함은 한없이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부디 모든 불자님들께서 불성을 가진 다른 중생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이가 되기보다는 한없이 청정한 보살의 마음을 가지셔서 지상에 극락을 만들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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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승만경 강의를 마쳤으니 다음부터는 어떤 불경을 강의할지 벗님들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1)어떤 벗님께서는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해달라고 하셨고,
2)어떤 벗님께서는 능가경(楞伽經)을 강의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보다 많은 벗님들께서 선택하신 불경을 강의할것이니 댓글로 숫자를 기재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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