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다(波羅密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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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다(波羅密多)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일) 03 22, 2020 1:33 pm

바라밀다(波羅密多)
‘바라밀다’는 마하반야의 힘에 의해 즐겁고 자유롭고 편안한 대해탈(大解脫)의 세계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바라밀다의 범어인 파라미타(Paramita)는 파라(para:피안)와 미타(mita:도착한다)의 두 낱말이 붙어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도피안(到彼岸)으로 한역(漢譯)됩니다. 곧 ‘피안에 도달한다’, ‘피안에 도달한 상태’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라밀다를 줄여서 ‘바라밀’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파라미타의 ‘파라(para)에 대해 조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파라는 피안(彼岸), 이상의 세계인 저 언덕을 뜻합니다. 생로병사 등의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금의 사바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한없이 즐겁고 평화로운 세상이 ‘파라’의 세계입니다.
범어 ‘파라’는 천당(天堂)을 뜻하며, 히브리어나 라틴어에서도 ‘파라(para)'는 하늘나라*천국*유토피아*이상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의 파라다이스(paradise)도 ’파라‘의 파생어로서, 천국의 낙원, 곧 아주 즐거운 하늘나라 꽃동산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뜻을 담고 있는 ‘파라’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열반의 세계, 해탈의 세계, 극락 또는 불국정토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라 뒤에 붙은 ‘미타(mita)’는 거기에 ‘도착한다’, 그것을 ‘완성한다*이룩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라미타’라고 하면 ‘파라에 도착했다’, ‘파라를 완성했다’, ‘파라를 이룩하였다’는 등의 종결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불교에는 바라밀다 외에도 ‘파라’를 앞에 붙인 아주 중요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바라이*바라제 등이 그것입니다. 잠깐 바라밀다와 관련시켜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라이(parajika, 波羅夷)의 ‘이’는 기(棄)로 번역되며, ‘포기한다*버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라이는 ‘해탈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스님들이 불문(佛門)에서 축출을 당하게 되는 4바라이죄(四波羅夷罪)라고 하면 살생*투도*음행*대망어의 네 가지 무거운 죄를 지칭하게 됩니다. 수행승이 이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바라이죄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바라제(parati, 波羅提)라고 할 때의 ‘제(提)’는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바라제는 흔히 계율(戒律)로 번역하는데, 불살생*불투도*불사음*불망어 등의 계율을 잘 지키는 그 자체가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잘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바라제는 ‘해탈을 보호한다’, ‘해탈의 세계로 가는 것을 지켜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라제*바라이*바라밀다. 결국 바라제인 계율을 잘 지키며 나아가면 해탈의 세계인 바라밀다를 쉽게 이룰 수 있고, 바라이죄를 범하면 바라밀다와는 갈수록 요원해진다는 것을 이 세 단어는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바라밀다! 과연 우리 불자들의 이상향인 파라의 세계는 무엇에 의해서 ‘도달(밀다)’ 할 수 있는 것인가? 두말 할 나위 없이 우리의 본래면목인 마하의 영원한 생명력과 반야의 대지혜 광명을 회복해 가질 때 이 파라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제 ‘심경(心經)’이라는 단어와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연결시켜 봅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줄여서 ‘심경(心經)’이라고도 합니다. 심경! 마음을 이야기한 경입니다. 이 마음이 누구의 마음입니까? 우리의 마음이요 ‘나’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마음은 좁디좁은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불행한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 나의 마음은 마하심입니다. 한없이 넓고 크고 수승한 공덕을 갖추고 있는 마하의 마음입니다. 언제나 대지혜 광명을 발하고 있는 반야의 마음입니다. 행복만이 가득한 바라밀다의 마음입니다.
원래가 마하심*반야심*바라밀다심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가 마하요 반야요 바라밀다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만 회복해가지면 우리도 부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오직 ‘나’의 마음인 마하심이 반야하기만 하면 파라에 밀다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한대의 마하심을 잘 관찰하고 개발하여 부처님의 자리로 나아가자는 것이며, 그것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경제목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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