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대중화와 만해불교전집 발간 인생의 큰 목표”
[서재탐방]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2012년 04월 16일 (월) 14:43:15

 

   

▲ 권영민 교수는 대학시절 헌책방에서 구입한 최남선의 현대시조집 <백팔번뇌>와 정지용 첫 시집인 <백록담>을 아끼는 책이라며 보여줬다. 서재에는 1만권 이상의 책이 꽂혀 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한국불교의 근대화를 이끈 선승으로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하고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해 불교계의 혁신과 대중화에 앞장서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

만해 스님은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 300여 편을 썼으며 <흑풍(黑風)> <박명(薄命)> 등의 소설을 펴냈고 당시 조선일보가 폐간되기 전까지 <삼국지>를 번역해 연재했다.

생전에 문학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만해 스님의 문학활동과 사상을 40여 년간 천착해오며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이가 있다. 바로 권영민(64) 단국대 석좌교수다.

“만해 스님이 얼마나 폭넓은 글쓰기를 하고 승려로서 어떻게 대중들에게 접근하려 했는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권 교수는 만해 스님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지난 해 <만해 한용운 문학전집 전6권>(태학사 刊)을 출간했다. 이미 1970년대 초 <만해전집>이 나왔지만 주로 한자(漢字) 위주의 연구원들을 위한 자료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권 교수는 기존의 만해전집과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폐간으로 중단됐던 <삼국지>와 일본 유학 당시 <화융지>에 발표했던 11편의 한시(漢詩) 등을 추가해 어려운 말은 주석을 달아 새로 엮었다.

만해 스님의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권 교수는 “만해 스님은 대중을 끌어안고 함께 가려고 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모든 인간은 살아야 될 가치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주체를 인식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했다”며 “그래서 만해 스님의 작품이 삶과 인간의 존재에 허무를 느끼고 가치기준에서 대혼란을 겪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권영민 교수는 한국문학의 학술연구와 세계화에 진력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국문학자다. 권 교수는 1971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ㆍ박사를 받은 뒤 1981년부터 서울대 인문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근대소설론 연구> <한국계급문학운동사> <서사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현대문학사> 등 수많은 학술서를 저술했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와 버클리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있을 때 한국문학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05년에는 만해축전의 일환으로 개최된 광복 60주년기념 세계평화시인대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사회문화 활동에도 폭넓게 기여하고 있다.

권영민 교수는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활발하게 비평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진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권 교수가 한국문학의 전문가이자 평론가로서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던 것은 만해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만해 스님의 고향과 제가 살던 곳이 가까워서 어릴 적부터 그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막연하긴 하지만 스님과 동향(同鄕)이라는 사실이 제가 문학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만해 스님과 동향(同鄕) 계기로 문학에 눈떠

만해사상 이해하려 禪 관련책 읽고 있어

대중위한 문학콘서트 매월 열 계획

중ㆍ고등학교 시절 권영민 교수는 도서관에 있는 한국문학전집은 모두 섭렵하며 소설가를 꿈꿨다. 이광수의 <무정> <흙>,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김동리의 <무녀도>, 이효석 <메밀꽃 필무렵> 등을 읽으며 문학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한용운과 김소월의 시를 좋아했으며 직접 서예로 ‘님의 침묵’을 써서 미술대회에 출품해 특상을 받는 등 문학 소년으로 성장했다.

이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만해 스님 작품을 공부하면서 어렴풋이 알던 스님의 사상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됐다.

“다른 시들은 시를 위해 틀과 격식에 맞추고 어려운 문구를 사용했지만 만해 스님의 시는 달라요. 독자에게 말하듯이 아주 쉽게 쓴다는 것이죠. 만해 스님은 ‘님의 침묵’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님을 노래합니다.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 모순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은 참나가 있다는 표현을 뜻 하거든요. 한용운은 시를 통해 조국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지금의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생각을 담으려 했습니다.”

올해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권 교수는 단국대로 연구소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한국현대문학과 현대사회’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권 교수의 연구소 내 서재에는 문학연구서적을 비롯해 해방 이전에 나온 책과 잡지, 문학작품 등 1만권 이상의 책이 꽂혀있다.

권 교수는 한국문학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책읽기를 시도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과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으며 현대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파악한다. 최근에는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 인간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해 성공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권 교수는 “우리는 불행한 독서가”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평론가이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도 직업적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평론을 직업으로 삼다보니 즐거운 독서를 못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읽고 있는 책들이 학교ㆍ연구실ㆍ거실 등 곳곳에 있어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꼭 대형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구요. 독서는 제게 생활이고 삶입니다.”

현재 권 교수는 한국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4월 17일 문학의 집 서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첫 문학콘서트를 개최한 것. 권영민 교수는 이날 사회를 맡아 ‘이상과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로 이상의 작품과 사상을 조명하고 문학평론가들이 대담을 나누고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등 대중적인 문학의 장(場)을 만들었다. 권 교수는 “앞으로 매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주제로 토론과 공연을 겸한 문화행사를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불교대사전>과 선(禪)에 관한 책들도 읽고 있다. 불교적 지식과 내공을 쌓아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상을 이해하고 그가 쓴 <불교대전>과 <십현담주해> 등 불교와 관련된 책들을 따로 모아 편찬하기 위해서다.

“<만해 한용운 문학전집>을 출간할 때 불교관련 저술들은 따로 빼 놨습니다. 제가 불교공부가 많이 된 다음에 정리해야겠다 싶었거든요. 앞으로 불교공부를 하면서 한용운의 불교사상을 정리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해불교전집을 만드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