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면

 

국제불교도협의회에 78년 7월 취임했던 최세경(마지막 국회의원 시절)회장은 78년 마지막 후반을 보내던 때, 당시 경남 사천-삼천포 지역구 출신 공화당 71년부터 8, 9대 의원으로, 계속해서 10대 국회의원으로 나가려면 공화당 공천이 있어야 할 텐데, 그때에 이르러 최세경 의원 해당 지역구에 대한 공천이 갑자기 구태회 의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유신정우회 내정자 명단 발표에서도 누락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10대 국회의원선거는 1978년 12월 12일 실시되었다.

위와 같은 상황의 변화에, 지역구도 뺏기고 유신정우회에도 빠졌다면 최세경 회장의 정치생명은 어찌되는 것일까. 그때에 이상훈(보안사-잠시근무, 이후)선배님은 미국으로 78년 12월말 떠나기 전까지는 매일 국제불교도협의회 사무실에 나오셨다. 그리고 최세경 의원의 갈 곳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서 나를 위해, 최세경 의원의 갈 곳은 어디일까를 매우 유심히 살펴주었다. 처음은 서울신문 아니면 문화방송 등으로 추측했었다. 12월말이 다되어 공화당 길전식 사무총장 측근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최세경 의원이 KBS사장에 내정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확실하냐고 되물었더니,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곧바로 최세경 회장님을 댁으로 찾아뵙고, 그 반가운 소식을 확인하려고 들렸던 것인데, 본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디서 들었나. 나도 모르는 소리를.” 하시는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제가 알아본 소식이니, 기다려 보시죠.”하고 누굴 통해 들은 것은 함구하고 나온 일이 있었다. 그야 윗선에서 결심한 뜻이 내려진 하명인지, 아니면 내정자로 보고한 측에서 알려온 소식인지는 나로서도 확인한 바 없었기에 함구할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그 뒤, 좀 지나서 최세경 회장님으로부터 집에서 아침식사나 함께 하자는 전갈을 받고 들렸더니, KBS사장에 임명이 난 듯 했다.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셨다. 그 후로는 나는 국제불교도협의회 결재판을 가끔 KBS사장실에 들리어 대기하다가 받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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