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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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하여 페이지별 내용을 오늘에 간추려 본다.(이미 회고록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편집인 김안수)
국제불교도협의회는 80년 5월 중순 탄허스님을 모시고 지역 대규모의 설법대회를 주도하게 된다. 주최는 국제불교도협의회 한마음운동본부로 하고 집행준비에 관련된 모든 일은 박재원 본부장 휘하에 있던 익성회 멤버들이 도맡아 했다. 대전, 대구, 부산에서 각기 거행할 동 법회를 기획했다. 부산 구덕체육관 법회에서는 행사장을 입추여지 없이 가득 메웠고, 대구에서도 성황리에 마쳤다. 그때 익성회 30여 명 회원들은 대불련 관계, 천태종 관계 등 각종 조직을 동원하는 활동을 해서 그런 인파가 모였다고 박재원 부회장은 술회한바 있다. 부산 구덕체육관 행사에서는 2만 명은 체육관에 들어오고, 3만 명은 바깥에서 들었다고 했다. 익성회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행사를 준비한 것이었다. 이때 탄허스님 강연내용은 불교 중심사상으로 선과 교, 화엄법계에 관한 설명이었다. 탄허스님의 법문집 〈부처님이 계신다면〉으로 설법요지를 집약 정리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의 출간은 우담거사가 만들 때에 박재원 본부장 종친회 사무실에서 했다. 그때 사무실이 허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원빌딩 314호실이었는데, 거기에서 작업을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대외활동이 전혀 없었던 국제불교도협의회는 박재원 수석부회장이 진두지휘해주는 원력으로 새롭게 불교계 기반을 확충해 나가던 때였다. 그러던 중 80년 5월엔 국내 정기간행물 보도검열이 실시됨으로 인해, 국제불교회보 역시 발행배포 이전 편집기사 사전검열을 받던 일이 있었다. 검열은 당시 서울시청 보도검열반에서 하고 있던 때다. 나는 국제불교회보 발행원본 복사본(스릴)을 가지고 검열을 받던 중, 사회시사 풍자 자유시상 형식의 <5월은 슬프다>는 제하의 글을 통해 우리사회의 그늘진 곳들의 주변을 나열한 바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붉은 줄로 지적된 것이 도저히 문맥을 이을 수가 없어 결국 모두 삭제하라는 검열지시를 받고, 그 자리에 다른 글로 그 공백을 메운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언론보도 사전검열은 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 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다. 계엄사령관 이희성 명의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면서 정치활동 금지, 대학교 휴교령, 언론보도 사전검열 강화, 집회 및 시위 금지 등의 조치를 내린 때였다. 5월 18일 새벽 2시 신군부는 국회를 점령 봉쇄했고, 헌정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서울의 봄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던 때다.
80년 5월 내가 이러한 처지에 있을 때, LA관음사는 무슨 일을 해왔나 살펴보기로 한다.(관음사 20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간추린다.) 80년 5월 22일 - 한국문화원 강당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학술세미나; 이능가대선사, 박성배교수, 김하태박사의 ‘종교의 사회 참여’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함.(이당시 고암대종사, 무진장스님, 성진스님, 이종익박사, 김구산교수, 김철교수, 라귀만거사도 관음사 방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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