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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국 장로교 한인교회협의회가 1991년 6월 초, 북측의 한시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초청하며 첫 인연으로 연결됐다.

북조선 미국방문단은 단장 한시해를 비롯한 로철수 영접부 참사, 김구식 사회과학원 통일문제연구소장, 박승덕 주체사상연구소장, 고기준 조선기독교련맹 서기장, 리성봉 평양 봉수교회 목사, 최옥희 평양 신학원 전도사, 김혜옥 통역원 등 8명이 방문을 했다.

이때 김도안 LA 관음사 주지 초청으로 그해 6월 19일 관음사 육화당에서 ‘북부조국 미국방문단 환영 간담회’가 열렸다. 재미불교도의 통일 의지와 종교 간의 대화를 제안하면서 북측의 한시해 단장으로부터 “(초청하면) 조불련 대표단이 미국방문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확약을 받은 일과 대화의 창구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1993년 9월 10일 미국 LA에서 열린<제14차 민족통일 심포지움>의 ‘한국불교계 통일운동과 전망’이란 신법타의 주제발표로 소개됐다.

이처럼 첫 만남의 기별은 1989년 7월 1일~8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平壤祝典)’이 도화선이 됐다.

‘통일의 꽃’으로 불린 임수경 전대협 대표의 방북으로 화제가 된 평양축전에는 177개 국가에서 22,000명이 참가했다.
조국통일북미주협회에서도 미주대표단과 참관단을 평양축전에 파견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가름(91년, 남북-LA합동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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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미국 LA 수도사의 신법타는 같은 해 6월 26일 ~ 7월 18일까지 평양을 단독 방문하여 조불련과의 교류를 가지는 한편, 평양축전의 개막과 폐막식에 참여했던 유일한 조계종 승려로 기록됐다.

북측 조불련에서도 《불교도들의 참다운 삶》(2001)에 기록한 바와 같이 평양축전에 세계청년불교도 대표 1명과 조선청년불교도 대표 2명을 참가시켜 우의와 친선 연대활동을 가졌다.  
축전 기간에는 평양 모란봉 용화사에서 축전에 참여한 청년과 학생 불자들을 위한 환영 의식을 개최하는 등 국제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설렘으로 다가온 LA 합동법회는 46년의 낯섦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 번의 가족 여행처럼 끝났다. ‘사상에서의 오염원’과 ‘자본주의 황색 바람’이라고 북측에서 평가된 종교 부문에서의 교류가 제한되면서 남북불교 교류의 오래된 미래로 남았다. <글: 이지범>

# 이지범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 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 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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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름(91년, 남북-LA합동법회)

 

 



 

 

 

통일로 가는 길

 

1991년 한해는 7천만 모든 동포가 함께 통일을 부르짖고 나섰다. 남북한 최고 책임자는 물론 각계각층 해외 동포 너나 할 것 없이 한반도의 통일이 어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구동성 함성을 부르짖고 나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을 하여야 하는가?

7.4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삼대원칙에 의하여 통일을 하여야 한다고 그 명분을 걸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골이 깊은 이념적 갈등은 가시지 않고 있으며 불신의 벽은 이념적 촌보도 옮기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금번 남북불교 대표자와 해외불교지도자들의 만남이 있었으나 종교적 이해나 교류와 협력을 상호 접근도 못한채 원론적인 이념적 갈등으로 만남의 그 자체로 끝을 맺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 통일은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항상 입으로만 부르짖는 통일보다는 실지 우리가 통일을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가면서 종교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일천만 이산가족이 서로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범국민적 운동이라든지 국민적 화합을 위한 신뢰회복운동 이라든지 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민족문화 복구운동 이라든지, 빈부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복지운동 이라든지, 상호 통행과 통신을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교류협력문제를 종교인이 앞장서서 전개하여야 통일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가름(통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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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교인은 서투른 정치적 이념논쟁에 휩싸여 통일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그러한 논쟁은 통일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을 우리 스스로 판단하여 상호 종교적 교류를 통하여 남북불교인이 통일에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협력의 동반자로서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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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후 최초 남북불교대표자 회의

한민족불교지도자연석회의에 부쳐(환영사-김도안)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맺기 위해 불교인들에 노력이 필요한때 - 존경하는 조국의 남과 북 불교대표단 여러분! 그리고 재일본 불교대표단 여러분!

국내외의 한민족 불교대표자들께서 상호교류 및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고 나아가 조국의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여하여 주신데 대하여 전 미주의 불교인들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특히 반세기만에 남과 북의 불교대표자가 자리를 같이하여 남북간의 불교교류 문제와 민족의 현실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됨은 분단이후 유례없는 일로서, 비단 불교도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전국민과 세계인이 주목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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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름(대표자회의-환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