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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술로 밤을 지새운 사람, 인간 사행심에 들떠 도박에 빠져있는 사람,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될 대로 되어라하며 방황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보니 함께 어울리고 또한 한번의 잘못한 선택이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여 악의 구렁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그러나 사실, 환경 탓만 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스스로 그러한 환경에 빠져들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치는 그렇지만 그 일이 꼭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사회의 병리 현상이 도처에 잠복되어 있고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경쟁사회가 우리환경을 그렇게 만들고 있기에 이만 저만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도 있고 또한 우리 스스로 억제하고 통제하여야 할 우리 자신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책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타운은 가장 소수민족이 밀집되어 있고 소외계층과 마약사범, 알코올 중독자들이 범람하는지역에 살고 있어서 항상 범죄다발지역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들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인들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또한 그들의 생활의식을 일깨워 주면서 환경자체를 개선함으로써 깨끗한 환경이 주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인생이란 연습게임이 없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주변 환경이 아무리 혼탁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정신을 차려서 이에 물들지 않는 인격을 갖출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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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불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불교의 꽃입니다.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돋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앉아 계시는 좌대에도 한결같이 연꽃이 등장하고 또한 “묘법연화경”은 연꽃을 경의 이름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절 이름 가운데서도 연화사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이처럼 연꽃은 불교의 꽃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연꽃이 상징하는 의미가 아주 깊기 때문입니다. 연꽃이 상징하는 큰 의미는 앞에 인용한 경구에서 이미 설명을 드린바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첫째,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아함경에 부처님이 세상에 계심은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되 진흙에 물들지 않음과 같으니 온갖 번뇌를 깨고 마지막 깨달음에 도달하사 생사에 한계를 떠나셨으므로 부처님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이는 연꽃이 진흙이라는 깨끗하지 못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잎과 꽃이 깨끗한 점이 마치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계시면서도 번뇌에 물들지 않고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신 것과 비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진흙은 번뇌, 부처님은 연꽃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흙탕물 속에서 살지만 물들지 않음과, 부처님이 중생이라는 진흙 속에 태어나 사바세계라는 공간에 계시면서도 온갖 탐욕에 물들지 않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시어 중생을 제도하심을 연꽃에 비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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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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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꽃은 마음의 본성을 상징합니다.
우리 마음에 본성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후에도 우리 중생들의 마음을 천안통으로 살펴보시니까 모든 사람들의 본래 마음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것은 더럽다고 하는 말의 반대말이 아니고,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는 본래의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정심은 달리 말하면 바른 마음이요, 가짜가 아닌 참 마음이요, 착한 마음인데, 이런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 즉 불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본성은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성내고 욕심내고 시기 질투하는 온갖 나쁜 생각을 도맡아 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맛보는 데에 따라서 욕심이 생기고, 이 탐욕심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부처님과 똑같은 마음의 본성을 가지고도 중생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마음의 본성마저 더럽히거나 파괴된다면우리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부처님처럼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상하기 시작한 사과를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 하여도, 사과나무에서 갓 따낸 싱싱한 사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본성마저 더럽혀져 버렸다면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태어나 자라나지만 오염되지 않은 눈부신 연꽃을 피어내듯이 마음의 본성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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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에 이르시기를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여 더러움에 물드는 일이 없다. 마치, 하늘의 연기나 먼지 구름들이 뒤덮여 밝고 깨끗하지 못한 경우에도 허공의 본성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온갖 중생도 바르지 않은 생각 탓으로 여러 번뇌를 일으키고 있으나 그 마음의 자성은 청정하여 더럽혀지지 않는다.
이같이 더럽힘이 없으므로 그 마음의 자성은 청정하여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번뇌와 망상은 흙탕물에 해당하고 마음의 본성은 연꽃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연꽃은 마음의 본성, 즉 불성을 상징하는데 마음의 본성이니 불성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여러분이나 저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빨리 나의 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밖에도 연꽃이 상징하는 의미가 다양합니다.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여러 꽃 가운데 으뜸이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모든 사상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다는 뜻도 있고, 꽃과 열매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어 원인과 결과를 상징하는 등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등불과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등불은 왜 켜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등불은 어느 때 필요합니까? 어둠을 밝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습니까?

캄캄한 방안이라도 전등을 켜면 밝아지고 밤이라도 대형 전광판에 불을 켜면 대낮처럼 밝아져서 운동경기나 신바람나는 쇼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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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