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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한 좋은 환경을 선취하고 있는 강대국들은 오히려 그 부를 누리려고 오히려 약소민족을 탄압하고 자국에 경제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 주느냐 하는 것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종교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인도의 고질적인 카스트제도를 타파하는데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카스트제도란 인간의 성분을 4성계급으로 나누어 우열 성분으로 분류하고 신분에 따라 사회적 예우가 달라지므로 천민들은 일생동안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사회계급 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은 다 불성을 가진 동등한 생명이며 인간에 본성은 다 평등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인간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차별이 나타나니 그 차별의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착한 행을 받들어 행하게 되면 깨달음 세계,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 부처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래부터 신분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본인의 인성개발과 함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현재의 삶과 미래가 주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요즈음 종교간에도 우열을 논하고 자기 종교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그러한 태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인간은 무수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면서 자기 스스로 정신적인 면을 담는 밥그릇들을 마련합니다.


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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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람은 일생동안 쌀밥만 먹고 그 배를 채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사람은 일생동안 보리밥만 먹고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사람이 너는 왜 보리밥만 먹느냐 또한 어떤 사람은 왜 쌀밥만 먹느냐고 시비한다면 그 시비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시비를 받지 않고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종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메뉴입니다. 그 메뉴에 오랫동안 체질화된 사람은 다른 음식을 선호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소화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처음부터 골고루 혼합하여 먹고사는 사람은 한 가지 음식만을 편식하는 것 보다는 여러 음식에서 오는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함으로 건강을 오래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도 자기 틀 속에 가둬버리고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자기 종교만을 제일이라고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보아집니다. 내 종교가 중요하듯이 남의 종교도중요하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버려도 됩니다. 근본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고 항상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이 지구촌에는 무수한 종교가 같이 존재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 인류사회에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종교,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종교는 살아남을 수가 있을 것이며, 인류사회에서 해를 끼치는 종교집단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선택은 인류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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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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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이제 배타적 전도주의를 하루속히 포기하여야만 합니다. 나의 믿음의 방식만이 오직 인류를 구원한다는 좁은 편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종교의 공존,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사이비 종교이든 신흥종교이든 저등 종교이든 간에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러한 눈을 뜨게 하는 일은 올바른 종교 지도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이것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종교지도자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가깝게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이 지도자라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어떻게 우열을 가릴 수가 있겠습니까?!

21세기를 맞이하는 종교의 형태는 물적 팽창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질적인 성장이란 교회수가 몇 개냐가 아니고 목사, 신부, 스님이 몇 명이냐도 아니며, 오직 사회병리 현상이 어떻게 퇴치되고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맑아져서 사회가 안정되었냐가 바로 종교의 질적인 성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지식의 범람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지식의 경쟁, 지식의 투쟁 시대가 도래 된다고 보여 집니다.

인간의 지식은 삶의 질을 높이고 환경을 보다 밝게 하여 인간의 복리 진작을 위한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 반대로 삶의 질을 높인다고 하여 인성을 마비시키고 말초적인 신경만 들뜨게하는 기계문화나 전자문화에 종속되는 그러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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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하는 일이란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일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조화를 깨서는 안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식사란 자기 위장에 맞춰서 적당히 섭취 하여야 합니다. 음식의 영양분도 골고루 먹어 신체적 발육과 신진대사가 잘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편식을 한다든가 과식을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배설하여야 할 배설이 되지 않는다든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섭취한 영양과 단백질이 도로 다 배설되어 버린다면 건강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휴식이 필요한데 제 시간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조화가 깨지고 맙니다.

그런데 기계문화와 전자문화는 인간의 신경을 최대한 자극시키고 폭넓은 시야를 통한 정보유입으로, 인간 인간과의 정보경쟁이 삶의 질을 파괴하는 결과가 초래될 뿐만 아니라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도 막대한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에도 종교는 기계문화의 발전과 전자문화의 발전을 그렇게 좋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욕망을 잠재우고 우리 육체적 기능과 감각을 통한 그 순수 자체를 지켜가는 것이 또한 종교인들이 하여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인간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과 의식의 활동을 기계에 의존하고 또한 전자매체에 의존하고 산다면 인간의 사고와 감각적 의식은 점진적으로 퇴화가 될 뿐 아니라 육체적 기능저하로 막대한 손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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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