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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들 6대 종교를 별칭하여 ‘지역종교’의 반대개념인 ‘세계종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에서 근간에 조사된 종교별 교세비율을 보면, 불교가 37.4% 개신교가 25.6% 천주교는 4.8% 유교가 17.5% 천도교가 3.6% 원불교가 3.2% 기타종교가 6.8% 비종교 인구 22.3%로 되어 있습니다.

자 새 천년을 설계하는 이 시점에서 본인은 오늘의 주제와 연관하여,
“더 이상 숫자와 종교의 양적 팽창에 신경 쓰지 말자”
는 말로서 본론을 시작하려고합니다.

새 천년에는 질 높은 종교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많은 종교학자들이 주장해 오고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면 질 높은 종교, 질 높은 불교란 무엇일까요?

먼저, 저희 불교의 허물을 먼저 고백해 보겠습니다.

앞의 수치상으로도 한국에서는 10명 중 4명이 불교신자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본인도 한국불교가 충분한 기반이 있다고 생각하여 25년 전에 안심하고 국제포교를 위하여 도미하였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작년에 조계종 교권분쟁이 발생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교세가 높다고 하는 한국불교는 사상 유래 없는 교권분쟁으로 그 실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론의 결정적인 타격을 초래 하였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물욕에 어두운 스님들의 반란’을 주제로 보도 하더군요.


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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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가 아니라는 변명은 본인 자신도 할 수 없겠습니다만,

잠깐의 변명의 기회를 주시다면 분규의 당사자인 스님들의 비춰진 물욕 뒤편에는 승가 가문의 위상에 대한 명분이 있고 또한 올바른 불교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국회의원의 자질이 국민의식의 평가기준이 되듯이 스님들의 재기운동은 우리불자, 크게는우리 조국의 또 다른 반영이라고 양해하시고,

좋은 기회로 미국과 인연을 맺으신 우리 미주동포 여러분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우리 조상들이 믿어왔던 멋진 불교로 반드시 되돌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종교의 사명은 인류사회가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르게 인도하는데 있다 하겠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않도록 막아주고 많은 선을 행하여 사회가 맑고 향기로운 사회가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악을 막기는 고사하고 분쟁을 야기 시키고 인간의 심성을 더 타락되게 하는 종교라면 있는 것 보다는 없는 것이 낫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세기는 종교가 인류사회를 위해 덕을 준 것보다는 해를 끼쳐주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저지른 모든 끔찍한 대규모 죄악상은 99.9%가 종교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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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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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이라크, 이스라엘, 아랍, 코소보, 보스니아, 씨에라 레옹, 라이베리아, 인도, 파키스탄, 도쿄의 지하철 독극물 살인 이러한 종교적 분쟁으로 살상과 전쟁이 끊어지지 않고 종파적 패권 투쟁으로 20세기를 종교분쟁으로 막을 내렸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 종교인들이 하여야 할 덕목은 종교적인 화해 협력을 통한 세계평화를 정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 천년을 향한 종교인의 신앙자세는 세계가 안고 있는 현실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개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 천년의 전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급진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겠습니다.

최첨단의 정보와 전자 산업은 이 지상에 생태계 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 외계에까지 파급을 주어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예상되며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발달은 종교계에도 엄청난 도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실험의 첫 단계에서 나타난 복제 인간은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갖는 시간의 개념도 20세기가 느끼는 그러한 시간적 가치표준이 아니라 21세기에 가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급진적 변화가 시간을 초월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세기를 맞는 우리 종교인의 사명은 종교간의 화해와 협력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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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종교가 지역종교를 뛰어넘고 있으며 종교의 파급은 정치체제나 국책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열려있는 시대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전파도 대중을 찾아서 또는 집회를 통해서 전파하는 시대가 아니라 컴퓨터의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이 들어가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안고 있는 현실의 고통을 모르는 채 내생의 왕생극락을 바라는 불교적 구원관이나 믿음을 통한 내생의 천당을 가기 위한 신앙의 운동은 엄청난 도전과 시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이 전개하여야 신앙운동은 현세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근절시키고 평화와 행복이 보장이 될 수 있도록 인성의 바른 지도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구석기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살기 위한 투쟁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인간은 삶을 위해 도전과 투쟁이 계속 된다고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자는 자연과 더불어 상의 상존 관계에서 먹이사슬을 서로 주고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그 먹이사슬을 독식하려는 욕심 때문에 지구촌 한구석에는 기아자가 생기고 그로 인한 질병과 환경오염이 지구촌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 인간들입니다.

인구밀도가 가장 심한 지역은 그 생존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며 곡물생산이 잘 되지 않은 산야나 사막에 위치한 나라들은 좋은 식량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지하자원과 원유가 생산되지 못한 열악한 나라는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경제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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