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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3대 종교를 비롯한 신흥종교인들까지도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정착의 대열에 함께할 때 민족고인 분단과
이별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인들은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에게 부모, 형제, 처자, 자기 자신과 같이 생각을 하는’(승사유범천소문경) 통일보살, 대승보살이 될 때 이 땅에 평화는
안착된다고 본다.
본론 1. 남북간의 평화 행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는 소위 햇볕정책- (Sunshine Policy)으로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선언”을 이끌어냄으로 하여 남북평화정착지평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하였다.
평화공존과 화해 협력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한 결과 남북관계 전반에서 진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총 76회의 남북대화를 진행하였다.
이제 반세기만에 동해선 임시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실현되고 있으며,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도 눈앞에 두고 있다.
50여년이 넘도록 생사조차 알지 못하던 이산가족 중 6,000여명이 혈육을 만났으며, 앞으로 상설 면회소를 통한 정례적인 상봉도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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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에 열린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는 남북의 선수단이 함께 입장하였으며, 북측 응원단도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함으로써 전 세계에 민족화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 5년 동안, 50만명이 넘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4만여명의 남북 주민이 서로 오고 갔으며, 남북교역액도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와 병행하여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도 진행되었다. 남북 군사당국자간 회담이 개최되었고, 남북 경협사업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일부구간에서철조망과
지뢰가 제거되었으며, 군사실무자간 직통전화가 설치되는 등 초보적이나마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길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999년과 2002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서해교전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001년 미국 내 9.11테러사건과 대테러전쟁 등으로 조성된 국제정세 또한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02년 말에 대두된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있다. (2003 통일백서발간사 일부인용. 통일원)
2.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정착 통일은 과거로 회귀하거나 단순히 체제나 영토를 통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인권 등 인류의 보편가치가 구현되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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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통일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여건을 꾸준히 마련해 가는 긴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더욱이 남과 북은 반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대결하고 반목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상호 이질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느 일방이 타방을 일방적으로 흡수하거나, 점진적인 준비과정이 없는 급작스런 통일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으며, 실현된다 해도 그 충격과 부작용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에서 당장 법적, 제도적 통일을 서두르기보다는 평화를 바탕으로 단계적 점진적으로 통일을 실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선 남북간 평화공존의
관계를 정착시키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해협력을 통해 통일을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다.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보다 많은 대화와 접촉, 그리고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남북 쌍방이 필요로 하고 가능한 분야부터 교류협력을 활성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간 화해협력은
상호이익과 민족의 복리를 도모할 수 있음은 물론, 남북간에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을 근원적으로 약화, 해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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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으로 남북한 왕래도표를 보면 남북간에 인적교류가 얼마나 많이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다.
1998년 이후 2002년 12월말까지 북한을 방문한 남한주민은 총 37,572명으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9년간 방북인원 2,405명의 15배를 넘어서고 있어 남북한
인적교류 활성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2002년 북한방문은 신청 802건(13,502명), 승인 774건(12,979명), 성사 753건(12,825명)으로 1989년 방북이 허용된 이래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왔다.
1990년 이후 2002년까지 남한을 방문한 북한주민은 총 2,586명 이다. 연도별로 보면, 1990년에는 291명이 방문하였으나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남한방문이
없었다.1999년에는 62명이 방문하였고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706명으로 증가하였다. 2001년에는 이산가족 상봉의 부진 등으로 인해 191명으로 다소 감소하였으나 2002년에는 남북 당국간 회담 및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등 1,052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또한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을 증가시켜 왔다. 정부차원에서는 2002년 비료 20만톤을 비롯하여 쌀 40만톤, 비료10만톤을 비롯하여 8,375만달러(약1,075억원)를 북한에 지원하였다.
민간차원에서 2002년 한국적십자사와 독자창구를 가진 종교, 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아주 다양하게 3,513만달러(421억원)어치를 북한에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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