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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전에 있었던 월남전은 전쟁이 결코 분쟁의 해결방법이 아님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라크 다음엔 북한과 이란 그리고 시리아, 나중엔 러시아까지 손봐주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모한 생각일 뿐입니다.

자기의 이념과 다르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려는 이분법적인 잣대는 인간의 영혼과 역사를 황폐케 만드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것입니다.
전쟁은 오늘의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테러와 비인간화를 양산합니다. 이것은 평화로워야할 세상을 증오와 고통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바로 그 자체가 악인 것입니다.

작금에 부시정부는 94년 북한과 맺은 협정을 깨고, 중수로를 경수로로 바꾸는 과정에서 북한에 공급하던 중유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북한 정부가 다시 핵개발이라는 위험한 현실로 되돌아가도록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이유로 전쟁의 가능성까지 운운하고 위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의 길을 통해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을 믿습니다.

또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흑백차별의 환경을 깨뜨리고 인간의 존엄을 획득한 마틴루터 킹의 꿈을 믿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인간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도 무력이 아닌 대화와 합의를 통한 평화적 방법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넷째가름(특별기조 연설-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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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에 의해 억지로 봉합해놓은 통일은 결코 진정한 통일이 아닙니다. 한 편의 승리와 다른 편의 패배로 이루어지는 통일은 결코 온전한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승자의 자만과 패자의 분노로 이루어 놓은 통일은 언젠가는 더 큰 불행을 기르는 무모한 수고일 뿐입니다.

아직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분쟁들은 상대와의 합의를 무시한 채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인 것입니다.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80여년을 지배하던 볼셰비즘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금 단지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화와 합의의 가능성을 모두 거부한 채 무력에 의한 해결만을 도모한다면 이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은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케 하고 인간의 내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 삶이 외적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현실 속에서 구현돼야 하기에, 미움과 이기심으로 시작되어 전쟁과 보복이라는 거대한 인명살상으로 번져 인간의 존엄이 멸시되는 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구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적극적인 평화운동과 전쟁억제 운동이 곧 우리의 생명존중의 표현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국가이익이란 본래 종교인의 영역이 아니므로 관여할 수도 또 관여할 일도 아니라는 현실 외면의 자세로는 더 이상 생명존중의 종교인의 사명을 감당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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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가름(특별기조 연설-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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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우리 조국의 현실이 이제 그 실험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교인들의 이름으로 조국의 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참여와 역할을 수행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종교인들이 어떻게 조국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종교인들이 종교본연의 가르침인 인간사랑과 생명사랑이라는 평화의 가르침을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인지하고 가르치고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종교가 특정그룹의 전쟁논리를 지지하거나 용인해 온 예도 많습니다. 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혹은 국익을 위해서, 아니면 더 큰 악을 막기 위한 필요악으로서 전쟁을 지지하거나 용인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아닌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없는 인간 간의 관계란 본래 없습니다. 국가 간의 문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전쟁논리도 정당화 해주지 않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각 종교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리적 신학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토대를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사상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정책은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평화를 기반으로 세워진 사상적 노력은 분명 이 땅에 평화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넷째가름(특별기조 연설-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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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각 종교간의 관심과 사업들을 하나로 묶어 한 뜻과 한 목소리를 내는, 일치된 행동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해외 종교단체들이 행해온 인도적인 지원활동과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과 노력들이 각 종교단체별로 각개 약진을 해온 실정이라서 그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또 산발적이라서 노력에 비해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또 지속적인 사업이 되지 못하고 시류에 따라 일회성으로 그치는 자기 만족식의 행사로 그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뜨거운 인도주의적 사랑과 그 수고가 좀 더 효과적인 사업이 되도록 서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교인들의 연합체가 조국의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이와 같은 해외의 종교협의체가 남과 북의 종교단체들과 협력하여 종교 활동의 활성화에 크게 공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평양에는 10여년 전 개신교 교회, 천주교 성당, 불교 사찰이 각각 세워지고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종교는 사회주의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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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가름(특별기조 연설-이승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