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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념적 갈등은 장구한 민족사의 흐름에서 보면 사실상 한 포말에 지나지 않는 찰나에 불과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변하는 사상과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역사가 흐르면 모두가 변한다. 그러나 유형문화재는 그 시대의 사상과 표현을 담은 가장 소중한 민족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분단으로 그리고 전쟁으로 그 오랜 전통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실되었으며 전쟁의 포화로 인하여 파손되어 그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 문화유산이 지하에 묻혀있다 하더라도 발굴에 따른 경비와 전문적인 인력부족으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비무장지대의 역사문화 보존지역은 1600년의 오랜 역사의 불교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이제 남북한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그리고 문화재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발굴조사에 참여하고 그 문화유적의 복원사업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마) 남북한 경제도약과 민생복지를 위해서는 소모적인 군비경쟁에서 탈피하고 국방예산을 전폭 삭감하야야 한다.

미국 CIA 96년도 자료에 나타난 남북한 군사비 비교를 보면 한국의 군사비가 174억불이고 북한은 년간 약 50억불 내지 70억불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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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0년도에는 남북한의 군사비는 96년보다 15%정도 증액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북한 간의 경협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활성화 하자고 남북정상들이 합의하였다.

그러한 결정에 앞서 군비축소회담이 이루어져 국방예산을 절감한다면 민족경제부양은 물론 민생복지사업이 크게 회생되지 않겠는가?

민족공동체로의 공존공영을 위해서도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이루어져야 하며, 과도한 군사비를 요하는 국방 정책의 전환도 검토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바) 남북한 화해협력을 위해서는 종교단체가 제각기 교세확장을 위한 선교차원보다는 민생복지를 위한 협력 대열에 서서 범 종교연합으로 남북화해사업에 적극 나서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 종교인 비율을 보면 불교가 37.4%, 개신교가 25.6%, 천주교가 4.8%, 유교가 17.5%, 천도교가 3.6%, 원불교가 3.2%, 기타 종교가6.8%이고, 비종교인 비율은 전 인구의 22.3%로 되어 있다.

이제 한국은 다종교사회로 전환되었다.
국가정책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느 한 종교에도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종교의 선택이나 종교적 신앙이 국가로부터 지배받지 않으며 정교분리가 보장되어 있는 사회이다. 이제 종교단체는 민족의 통일문제와 민생문제를 함께 걱정하고 남북의 화해운동에 함께 동참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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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천도교가 북한정권의 가장 큰 핵심적 종교집단으로 되어있다. 민족종교로서 항일운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인정받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건국에도 공헌했다고 듣고 있다.

북한 정당 중 노동당 다음으로 청우당이 결성되어 있다. 청우당은 1946년 2월 8일에 창립되었고 당의 기본강령은 외래 제국주의의 침략과 예속을 반대하고 조선을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하자는 것이다.
(조선통신사간-중앙연감 1987년 판)

그리고 조선불교도연맹이 1945년 12월 26일에 결성되었고, 기독교연맹이 1946년 11월 28일에, 조선천주교협의회는 1988년 6월 30일에 각각 결성됨으로써 북한에는 4대종교가 국내 또는 국제적인 종교 활동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껏 그 교세는 미미하기 짝이 없지만(종교인구 약 6만명) 대화창구로서 북한의 종교단체와의 교류협력은 불가결하다.

그간 해외에 거류하는 한인 종교인들의 대북교류사업은 많은 오해와 역경 속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즉, 그들은 국제적인 종교 교류협력사업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화의 모임을 꾸준히 전개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북한사회의 종교의 토착화에도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북한 종교의 교세 확장에도 역량을 발휘하였다고 보아진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선교와 포교 전반사업은 종교인들의 순교를 결심한 살신성인의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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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현재까지 통제와 장막에 가린 북한과의 선교 교류 협력사업을 이끌어온 종교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북한종교가 국제 종교 활동 무대에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외교를 통하여 유엔 무대에 설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그들 사회에서조차 종교의 당위성을 인정받기 어렵지 않았겠는가?

그 동안 실정법을 어기고 방북을 결행했던 문익환 목사나 문규현 신부나 국내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위해 재야권에서 활동하다가 실정법을 어기고 투옥되었던 진관 스님, 지선 스님들과 같은 종교인의 투쟁사가 없었다면 북한사회의 종교집단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간 천도교는 최덕신, 오익제 두 교령이 밀입북을 통해 북한의 통일전선 정책에 동조 또는 동화함으로써 북한 종교로서 그 위상을 더하고 있으며 1988년부터 북미 기독학자들의 북한교류의 시발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이라는 주제를 채택하여 해외 또는 북한에서 기독자와의 대화가 현재까지 연차대회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 후 NCC(미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WCC(세계 기독교 교회협의회), 미국장로교 및 감리교 그리고 세계 기아식량기구와 자선단체가 기독교 단체로서 앞을 다투어 선교와 구호사업을 펼쳐왔다.

천주교는 1987년 천주교 세계 구호재단을 통하여 구호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근자에는 까르타스 선교재단이 중심이 되어 선교와 구호사업을 병행해 왔으며 현재까지 한국계 신부 약 10여명이 북한 장충성당에서 부활미사 및 성탄미사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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