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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과 북이 각각 IMF체제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이 오늘날 정치인들의 작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화교류 또한 절실하다. 문화교류야말로 남북한의 민족의 동질성 확인과 회복 및 민족 정체성 구축을 가능케 한다.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는 통일과 화해협력을 이룩하는 기초 작업으로서 남북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보완체제를 구축하여 민족문화의 건전한 발전과 더불어 경제입국을 실현하는 보장이 될 것이요, 나아가서 통일입국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4. 맺는 말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복잡하고도 극히 어려운 종합적인 긍정이다.

어렵기에 우리들의 지성어린 노력과 지혜의 집결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원효의 화쟁철학에 입각하여 남북통일과 화해협력에 관한 문제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은 통일의 원동력이 될 것이요, 화쟁사상은 통일의 세계관과 화해의 방법론이 되어 이념의 장벽을 넘고 경제협력의 길을 열며 문화 동질성 확인과 회복의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통일조국의 철학이 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이상>

  

 


셋째가름(한반도 평화구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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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족통일의

전망과 앞으로의 과제

주최: 한반도통일연구회 주최 제5차 국제학술대회
일자: 1999년 8월 10일 ~ 8월 12일
장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제자: 김도안 스님(평불협 미주회장)

한반도의 분단극복을 위한 평화적인 노력은 1972년 7월 4일을 기하여 남과 북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불신과 오해를 씻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3대 원칙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7.4공동선언입니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남북간 당국자간의 약속이며, 전 민족이 바라는 통일의 기조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남북 사이에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제4장 제25조에 의해 1991년 12월 13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양국 총리의 서명으로 체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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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름(21세기 통일전망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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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분야별 3개 부속 합의서에서
제1장: 체제 인정 존중
제2장: 내부 문제 불간섭
제3장: 비방, 중상 중지
제4장: 파괴, 전복 행위 금지
제5장: 정전 상태의 평화 상태로의 전환
제6장: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제7장: 이행 기구 제28조항에 의한 합의서가 채택되었으며

이어서 남북 불가침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에서는
제1장: 무력 불사용
제2장: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제3장: 불가침 경계선 및 구역
제4장: 군사 직통전화의 설치, 운영
제5장: 협의 이행기구
제6장: 수정 및 발효로 제19조항에 의한 부속 합의서가 체결되고

남북교류 협력 이행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에서는 다시
제1장: 경제교류 협력
제2장: 사회문화 교류 협력
제3장: 인도적 문제의 해결
제4장: 수정 및 발효로 제20조항에 의한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다시 남북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1992년 9월 17일을 기하여,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총리가 합의 서명하고 남북 군사 공동위원회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를 발효시


셋째가름(21세기 통일전망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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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으로써, 그 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발효됨에 따라 남과 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나,

남한 간첩단 사건 및 팀스피리트 훈련의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연형묵 정무원 총리의 대남 서한을 통한 감정의 골은 결국 준 전시상태가 선포되게 되었고 드디어 북은 핵확산 금지조약기구(NPT)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 주변국들에 의한 통일방안, 이대로 좋은가?

93년 6월에 북미 1차 고위급 회담이 뉴욕에서 개최되면서 북미간에 접촉은 긴밀히 추진되고 남북간의 대화는 간헐적이나마 추진되어 오다가 미국 전 카터 대통령의 평화 중재로 남북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드려 남북의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실현되면서 남과 북의 정상들(북 김일성 주석과 남 김영삼 대통령간)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가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북 정상회담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김일성 주석 서거는 남북간 평화공존과 화해 협력 시대를 열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서광을 여는 좋은 계기를 잃고 말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후 남과 북은 김일성 주석 조문 파문과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으로 말미암아 급기야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북의 교류 협력만이 아니라 일체의 정치회담까지 중단되는 사태를 낳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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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름(21세기 통일전망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