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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의 융화사상으로 본 민족의 화해 협력 방안

민족 화해를 위해서는 신뢰를 위해 정해진 협약은 지켜야 한다.

(1) 동계화경(同戒和敬) - (같이 계품을 가지고 서로 화동 예경한다) / 남북한은 정치회담에서 7.4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남북한 기본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부속합의서도 일부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합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2) 동견화경(同見和敬) _ (같이 견해를 가지고 서로 화동 예경한다) / 남은 파란 안경, 북은 빨간 안경을 쓰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누가 불경하고 있는가? 남과 북은 동질성 회복을 위한 일에 소극적이며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3) 동행화경(同行和敬) _ (같이 행을 닦아 서로 화동 예경한다) / 남북 간에 어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서로 이질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 누가 불경하고 있는가?

(4) 경신자화(敬信慈和) - (자비심이 있는 행동으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 남은 북을 원수처럼, 북은 남을 짐승처럼 보고 있지는 않는가?

(5) 구자화동(口慈和同) _ (자비심이 있는 말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 남북한에 좋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비방, 중상모략, 허위날조를 통한 흑색선전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6) 의자화경(意慈和敬) _ (자비심이 있는 마음으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 식량위기를 맞는 북의 동포를 자비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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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할 생각을 않고, 조건부 지원이나 국제 여론에 의해 성의표시를 하지는 않았는지, 한편 받는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현재 상황을 왜 홍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이상의 내용들은 불교 육화경을 통해 본 남북한 화해 협력이 잘되지 않고 있는 점을 조명한 것이다.

2. 원효의 화쟁이론

우리 민족이 낳은 신라시대 대 사상가 원효 스님(7세기경 617~686년)께서는 분쟁을 종식시키는 화쟁론(和諍論)을 제창하였다. 원효가 생활하였던 삼국사기는 불교의 전성기임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삼국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지닌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불설에 대한 이해에 대한 논의 분쟁도 허다하였고,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통일철학을 요구하였고 원효는 백가의 이론을 화해시켜 화쟁이라는 지고한 이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원효는 수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2권을 남겼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당나라와 일본에 유포되었고, 또한 당나라에 왔던 진나문도(陳那門徒)에 의하여 천축(天竺)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서동화상 비문에서는 십문화쟁론을 종합하여 간략히 기술한 바 있다.
십문화쟁론은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원음(圓音)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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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하였으나 부처가 열반한 후에는 부질없는 공론(空論)이 구름처럼 분분하였다. 혹자는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그르다 하였고, 혹자는 자신의 설은 그럴 듯 하다 하고 타인의 설은 다 그르다 비난하게 되어 각기 다른 이론(異論)이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강물과도 같이 지류를 이루었다.  

원효는 이를 융통시켜 서술하여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이라 하였다. 그 때 이를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를 가리켜 백가지 이론의 극단을 중지시키고 가장 일대의 공론을 정립시킨 대 논사라고 크게 치켜세웠다.

아래에 화쟁사상의 전형적인 몇 가지 예를 소개 드리고자 한다. 원효는 보살계본 지범요기(菩薩戒本 持犯要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들은 바 좁은 견해만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좋다하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아서,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좋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 자라고 말한다.

또한 원효는 세상의 이치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르기만 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곧 비일비이(非一非二)인 것이다. 그는 열반경 종요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가 아니기에 능히 모든 방면이 다 합당하고 다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면이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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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한 인식의 근거를 불도의 기본속성에서 찾고 있다. 불도는 깊고 광활하여 걸림이 없고 범주도 없다. 영원히 의지하는 바가 없기에 타당하지 않음이 없다. 그렇기에 일체의 다른 교의가 모두 다 불교의 뜻이요, 백가의 설이 옳지 않음이 없으며, 팔만의 법문이 모두 이치에 들어간다. (보살계본 지범요기 한국불교전서 1권-p.583).

원효는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백가의 화쟁에 직접 뛰어든다. 그의 대승기신론소는 화쟁사상을 도입한 대표적 저술이다. 대승기신론은 세우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깨뜨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중관론이나 12분론과 같은 것들은 모두 집착을 두루 깨뜨리며 또한 깨뜨린 것도 깨뜨리되, 깨뜨린 것과 깨뜨림을 당한 것을 다시 인정하지 않으니, 이것을 보내기만 하고 두루 미치지 않는 논(論)이라 할 수 있다.  
또 유가론과 섭대승론에서는 깊고 얕은 이론들을 다 세워 법문을 판별했는데, 스스로 세운 법을 모두 버리지 아니하였음으로 이것을 주기만 하고 빼앗지 않는 논(論)이라 한다.

이제, 이 기신론은 지혜롭기도 하고 어질기도 하며 깊기도 하고 넓기도 하여 세우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스스로 버리고 깨뜨리지 않는 바 없으면서 도리어인정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저 가는 자가 가는 것이 다하여 두루 세움을 나타내며, 스스로 버린다는 것은 저 주는 자가 주는 것을 다하여 빼앗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것을 모든 논의 조종(祖宗)이며 모든 쟁론을 평정시키는 주인이라 하겠다.

원효의 화쟁론 중심 내용을 살펴보면 심성 자체를 허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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