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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가져, 어떠한 시비대상이 자기 앞에 닥치더라도 물들지 말고 무념의 세계로 들어가 융통무애하여 크기는 허공처럼 하고, 맑기는 큰 바다와 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허공과 같기에 그 체가 평등하여 차별 사이가 없거늘, 맑고 더러운 것이 어찌 따로 있겠으며 큰 바다와 같기에 그 성이 윤활하여 인연을 쫓아 거슬릴 수 없거늘
어찌 움직일 때와 고요할 때가 달리 있다 하겠는가? (한국불교전서 1권 p544 금강삼매경론)
곧 무념을 얻으면 대립된 상대방과 평등하여지며 더불어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의 이 같은 회통원융(會通圓融)의 입장에서 출발한 상대적인 인식론과
일체를 초월하는 논증방식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녀 화쟁철학으로 정립된다. 화쟁철학을 오늘날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다음과 같이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상과 현실, 목적과 수단이 고도로 통일된 세계관이며
방법론이 된다고 보겠다.
3. 통일의 세계관, 통일의 방법론
오늘날 원효사상의 연구에 있어 원효가 염두에 두었던 화쟁의 대상을 불교 교학의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세상이 모든 대립과 시비분쟁을 화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화 되어 있다.
이는 화쟁사상이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갈등, 더욱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화해 사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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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에 대하여 조국의 통일은 우리 민족의 공통된 염원 또한 우리 민족의 현시점에서의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다. 통일을 이룩하려면 먼저 통일에 대하여 크고 깊은 믿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모든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원효는 그의 대승기신론소에서, 대승기신론은 모든 논의 총체가 되며, 기신론은 그의 능력과 힘이 가장 큰 도리라고 하였다. 통일을 대승에 비유한다면 기신론이야말로 통일을 이룩하는 근본 보장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가? 원효에 따르면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는 진여가 내재되어 있는가 하면 생멸도 내재되어 있어 갖은 현상이 일어난다. 대승기신론에 따르면 심 진여(心 眞如)란 법계 대총상(法界 大總相)의 체(體)이니, 이른바 심성이 생기지 않고 소멸하지도 않지만,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 만약에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의 상이 없어질 것이다.
결국은 평등하게 되고 변하거나 달라진 것도 없으며, 파괴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일심 법이어서 진여라고 이름한다. 우리는 흔히 기존의 이념과 가치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야말로 현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초래하는 시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망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마음의 도리를 알고 깨쳐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믿음을 깊이하고 넓혀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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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야 만이 차별은 사라지고 갈등은 해소되며 대립적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더불어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분열을 초래하기에 마음의 통일이 앞서야만 세계의 통일도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이치에서 원효가 제시하는 통일과 화해 협력은 넉넉한 마음(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따뜻한 마음(민족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깊이에서 일으키는 믿음이야말로 통일과 민족 화해에 따른 힘의 원천인 것이다.
(2) 정치체제의 대립에 대하여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통일론을 살펴보면 대체로 정치체제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근 48년간 북은 사회주의, 남은 자본주의 체제일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은 각자의 이념과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호 비난하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즉 넉넉한 마음과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망념은
쉽게 자취를 감출 것이다.
원효는 그의 화쟁론에서 양극단을 떠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일과 화해의 첫 단계는 먼저 변(邊)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변이란
집착을 떠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양변에 대한 긍정이요, 다른 하나는 양변에 대한 부정이다.
양측이 진리에 대한 편면적인 인식에 집착함이 싸움의 근원이라 할 때, 우리는 양측을 모두 부정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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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록 편면적이기는 하나 진리를 지향하고 통일을 지향한다고 할 때 양변은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양 긍정과 양 부정의 과정에서 우리들의 인식은 새로운 단계로 승화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운데에 이른다. 또 이러한 가운데까지 부정 하였을 때, 우리는 무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정치통일은 자연스러이 이루어지는 것이아닐까?
(3) 경제협력과 문화교류에 대하여 앞에서 우리는 원효의 화쟁논리에 입각하여 통일과 민족화해에 대한 좋은 신념과 정치체제의 대립을 초월할 때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원효의 화쟁논리에는 긍정과 부정의 논리 외에, 대립된 상황을 타개하여 공동 발전하는 방법으로 상호 접촉에 의하여 상대방의 장점을 취하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대립된 상대와 더불어 초월하는 논리도 있다.
사실상 이러한 사상은 인류 사유의 보편적인 인식 방식중의 하나로서, 인류 문명의 발전사 역시 상호 교류와 학습을 통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사유 방식에 대한 역사적, 현실적 이론의 총화이며 철학적 승화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남북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인들이 이념의
대립을 고집하여 모든 교류가 유보 또는 중단 되어있다. 인류 발전사와 기본적인 인도주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분명 통일을 저해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흐름은 국경도 초월한지 오래다. 노동자, 금융자본, 경영방식 등 경제 기본요소는 인류 공유의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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