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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최근에 발표한 대로 남조선에서도 모든 핵무기 철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유엔군의 모자를 쓰고 남조선에 와있는 미군도 철수되어야 하며 팀스피리트와 같은 핵전쟁 연습도 당장 중지되어야 합니다.
북, 남 사이의 불가침선언 채택이 하루빨리 실현되어야 하며 전면적인 군축이 실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요구는 인간이 투쟁과 폭력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전쟁은 인간에 대한 최대의 악행이고
평화는 최대의
자비라고 하신 부처님의 사상에도 전적으로 맞는 요구라고 보면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도들도 뜻을 같이 하리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법우들! 나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도들이 우리 조국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보살도의 실천행을 다스쳐 나갈 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북부조국의 동포형제를 반국가 단체 구성원으로 낙인하고 적대시하는 남쪽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반통일적인 “법률”이 있는 이상 우리들이
염원하는
교류와 협조의 실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조국통일을 위하여 의로운 활동을 한 것이 죄로 되어 옥살이를 하고 있는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학생을 비롯한 친북인사들을 당장 석방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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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장애물의 제거를 위하여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조직과 불교도들이 각각 자기 지역에서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실천활동을 벌이는 것이 교류에 앞서 해야할 선차적 과업이라고 보면서 1990년대에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겨레의 힘찬 통일 대행진에 합세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 나아갑시다.
3보에 귀의하여 불법을 받들고 지켜나가는 우리들의 선행은 반드시 백두로부터 한라에 이르는 3천리 조국땅 위에 통일조국, 현세의 지상정토를 일으켜 세우고야
말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1년 10월 29일
조불련 중앙위원회 / 위원장 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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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지도자 합동법회 회향만찬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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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보도 기사
남/북 불교대표단 LA도착
남.북한 및 해외교포 불교지도자들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민족불교지도자 연석회의"를 갖기 위해 28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서의현스님(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을
단장으로, 송월주스님(조계종 남.북불교 교류 특별추진위원회 위원장), 전운덕스님(종단협의회 부회장. 천태종), 박해륜스님(종단협의회 부회장. 태고종)등 대표 4명과 20여명의 불교계 지도자들이 이날
상오 9시(이하 현지시간) 대한항공편으로 LA에 도착했다.
북한 불교계에서는 박태호스님(72.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홍화두(75. 동 고문), 심상련(47. 동 서기장), 이동철스님(51. 동 평양시위원회 회장) 등 4명이 하와이를 거쳐 이날 하오 9시 30분 LA에 도착했다.
남, 북 불교대표단 LA도착 일정
이들은 29일과 30일 LA에서 한민족 불교교류추진 미주협의회(회장
도안스님)가 주최하는 "한민족 불교지도자 연석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북한불교계 지도자 4명은 지난 23일 하와이에 도착, 환영회와
합동법회를 갖고 이날 LA에 도착했으며 29일과 30일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뉴욕과 워싱턴을 거쳐 내달 12일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경 뉴스> 91년 10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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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만찬장에서 도안스님 박태호선사께 기념선물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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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불교회의 합의 없이 종결
남북한 불교계 최고 지도자들이 분단후 처음 자리를 같이 했던 "조국 통일기원 불교도 합동법회"가 3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하이야트 윌셔호텔에서 법회와 회향만찬을 갖고 6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남북한의 불교계 지도자들은 이번 법회기간 중 각자의 주장만 제기하고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했으며 이번 법회를 주관한 미국의 한민족 불교교류추진 미주불교협의회와 재일본조선불교도협회(조총련계), 재일본 한민족 불교도 총연합회(민단계)등 해외불교 지도자들만 내년 11월말까지 가칭 "조국 평화통일 해외동포 불교도 연합회 -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북한과
일본 불교계
지도자들은 4일 뉴욕을 방문한 뒤 워싱턴을 거쳐 오는 11일 미국을 떠날 예정이다.
<한경 뉴스> 91년 1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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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 보도 되었던,
김도안 스님의 조국통일
염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회의」(미국 LA 관음사, 1991.10.29-30)에는 남한의 불교대표로 서의현, 송월주,
전운덕, 박해륜 등 21명이 참석하였고, 북한의 조선불교도련맹 대표인 박태호, 홍화두, 심상련, 리동철 등 4명이 참석하였다. 한민족불교교류 미주불교협의회(회장 김도안)가 주최하여 민족통일문제에 있어서의 불교의 역할과 상호교류 등을 논의하였다. 남한의 불교대표들은 남북
상호교환 방문을 통한 공동법회, 불교유적지 공동 발굴, 세미나 개최 등을 제의하였으나, 북한의 불교 대표들은 남한 주둔 미군철수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을 내지 못하였다.
미주통일운동 원로 김도안 스님(6.15공동위 미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미주본부 회장)이 06년 8월 28일 오후6시 지병을 치료 받던중 향년70세 일기로 타계했다.
입관식은 9월1일(금요일) 오후8시 한국장의사에서 열리고, 장례식은 다음 날인 2일(토) 오전10시 관음사에서
남가주사원연합회장으로 열린다. 현재 관음사에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 고인은 1937년 4월7일생으로 전라남도 장성읍에서 부친 김기욱, 모친 강오순 여사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포교활동차
1975년에 떠나 30여년 동안 관음사 주지스님으로 재직하면서 특히 북부조국 불교계와 교류하면서 남북 해외 불자들의 3자연대 운동과 민족의 화해협력,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했다. 그는 또 남가주사원연합회 5대, 6대, 7대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에 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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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은 ● 52년(당시 14세)에 경남 동래 범어사에 출가 득도 ● 63년 서라벌예술학교 문예창작학과와 66년 동국대학 불교학과 수학 ● 62년 서울
돈암동 적조암 주지, ● 71~75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 재무국 활동 ● 75년 포교위해 도미, ● 90~92년 미서부 승가협회장 역임, ● 82~96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위원역임, ● 96~2000년 한반도 통일연구회 연구위원 역임, ● 인권문제연구소 미국중앙이사회 활동, ● 타계할 때까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미주본부 회장으로 활약하며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불교인으로 미주동포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다. 김도안스님(6.15공동위 미국지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미주평불협 회장)은 통일맞이 나성포럼 창립 5돌 기념식에서- "2006년
통일운동 원로"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법타스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91년 이북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스스로 그 전에는 무척
보수적 인물였다고 말한다. 그는 불교인이지만 남북문제, 평화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승만 목사, 윤길상 목사, 선우학원 박사가 관계하시던 북미주기독학자회 관계자들과 교제하면서도 영항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북을 방문하여 불교사찰을 돌아보며 느낀 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1950년 전쟁을 치르고 완전 폐허가 되었던 평양시가 새롭게 건설된 것을 보고 느낀점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60년 세월 남이나 북이나 너무나 변화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데오로기 같은 사상이나 이념 갈등에 연연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어
분쟁을 야기시키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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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평화정책으로 바뀔 수 있도록 우리 미주동포들이 노력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도안 스님은 미주청년들을 향해서 민족사 공부를 하여
시각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미주내 청년단체들이 통일운동하는 숫자가 별로 많지 않다고 상기시키면서 앞으로는 양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분단이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우리 민족구성원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 많다고 꼬집는다. 우리 민족은 각기 성들이 달라 지금 남북에 약 373개의 성(김씨 ,박씨, 최씨 등 다양한 성들)이 있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다들 10촌 미만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즉"우리 미주동포들만이라도 이데오로기 싸움을 초월하여 우리들은 남에 있건, 북에 있건, 해외에 있건 우리 모두가 한 민족, 한 형제자매, 한 친족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식구처럼 생각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자세로 정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도안 스님은 강연을 마치면서 2000년 8월13일 남북해외 공동행사에서 자신이 써 발표한 시를 소개하며 이 내용을 당시 남과 북에 모두 전달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마음에 와 닿는 민족적 시이며 동시에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 하고 있다. 김도안 스님은 그 시를 읽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만남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백두산에서 한라에 이르는 동해, 압록강에서 한라에 이르는 서해, 무엇이 두려워 만남을 마다하는가, 만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
많은 세월 수십년을 기다렸는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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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안 스님(6.15공동위 미국지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평불협 회장)은 또한 지난 해 6.15공동위 결성식 이후 미주에서 가진 보고회 자리에서 역사적인 결성식을
치룬소감에 대해 / "1948년 남북연석회의의 의의를 되새기며 그 의지가 꽃피우지 못하고 남북 좌우대결구도에서 우리 민족문제를 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한편, 2000년 6.15공동언을 통해 남북최고 지도자들이 우리민족끼리 손잡고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합의하여 선포한 것은 정부간의 선언이었기에 우리
민족이 반드시 풀어갈 과제"라고 지적하는 한편,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근본적 문제-평화가 정착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쟁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 미군이 주둔해 있고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 선언만 가지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군사적 대결구도가 바뀌어야 한다. 해외동포들은 남북 동포들과 함께 이 일에 앞장서 나서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념갈등을 과감히 극복하고
폭넓게 대중운동을 벌여야 한다. 대중 속에서 민중 속에서 그 해결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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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55주년 기념
평화통일 기원법회 법어
<관음사 대강당-불기2544년(2000년) 8월 13일 김도안>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도사 아미타부처님께 귀명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좌우보처 관음세지 양대 보살님께 귀명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대성 인로왕 보살님께 귀명합니다.
사바세계 남섬부주 서양 미주 로스엔젤레스 관음사 청정도량에서 우리 모두 관음사 삼존불 앞에 엎드려 3칠일간 지장 백중천도기도법회를
봉행하여 왔사옵니다.
오늘은 바로 우란분제가 되는 일요법회일이 됩니다.
그간 나라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국하신 영령들과 육해공군 전몰장병과 상세선망 사존부모와 누세종친 제형숙백 일체권속과 허공에 떠도는 수많은 고혼들의
왕생극락을 삼가 기원합니다.
모든 영가들은 화엄회상 불보살님들을 친견하옵고 항상 제불보살들의 광명 속에 있으면서 그간 지었던 일체 중죄를 말끔히 소멸하옵고 무량한 대 지혜를 터득하여
최상의 정각을 성취하고 법계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부처님의 대 가피력으로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여 구경에는 성불하기를 기원하나이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자비에 문을 열고 구원에 실상을 밝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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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과 지옥이 본래 없는 것이오나 중생들은 스스로 짓고 받는 인과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와 험악한 악몽에 사로잡혀 갈 길을 몰라 헤맸나이다.
고뇌의 업보에 무거운 짐을 벗고 희망에 가득 찬 구원에 밝은 빛을 찾아 슬기로운 부처님 품안으로 돌아 가옵나니 감응하여 주옵소서. 부처님 우리들은 언제나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어서 자라서 부처님에 큰 일꾼이 되게 하소서.
오늘 이와 같이 백중 천도법회를 거행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영령들을 이고득락케 하여 영세불멸토록 우리 조국땅을 지켜주십사 하는 기원이 담겨있으며
해외 600만 우리 동포들의 가정에도 선조들의 보살핌을 내려달라는 우리 모두의 기원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얼마나 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살아 왔습니까? 또한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 식민통치에서 해방을 맞이한 지 5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8월15일을 2일 앞두고 일요일인 백중제를 맞아 함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대법회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불자님들이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이 5천년 역사를 가지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 땅을 지켜 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우국충정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에는 1,000회에 걸쳐 외세의 침범이 있었고 그로 인한 인명과 재산을 노략질 당하는 슬픈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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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대동아 전쟁에서 패전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36년간 식민지 국가로부터 영구 독립을 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좌우익대결은
급기야는 강대국의 입지에 의하여 38선을 사이로 분단 점령을 당하고 미소양군은 군정통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을 하였다고는 하나 통일된 광복은 성취를 못한 채, 55년을 분단 민족으로 동족간에 피 비린내 나는 전쟁과 살상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6.25전쟁은 유엔군과 한국군이 총 18만명이 사망하였으며 북한군은 52만명이라는 인민군대가 사망하였습니다. 중공군은 90만명이 떼죽음을 당하였으며 남북의 민간인 99만명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남쪽에서 85,000명이 북으로 끌려갔으며 북한에서 남쪽으로는 300만 동포의 대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과 북은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전쟁의 전범이 누구인지 그 배경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참혹한 결과는 선조 선배들의 파벌과 분열의 소산이 아닌지 판가름하지 못한 채 2000년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남북의 정상들은 6.15를 기하여 화해와 협력, 민족 대단결이라는 기치 하에 4개항을 합의하고 민족공동체의 협력과 평화공존으로 정치권과 경제 문화분야까지
활발한 교류와 실천사항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 이제 우리 불자들은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두 정상들이 서로 합의한 4개항이 실천되어 갈 수 있도록 국민 총화를 다지는 민족 화합과 단결을 위한 대열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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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간 전쟁과 분쟁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원혼과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선망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비명에 간 수많은 원혼들을 부처님 가피 속에 왕생토록
기원하여야 합니다. -
또한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원한에 사무친 수많은 고혼들을 살풀이 해서라도 모든 것을 용서하는 선영들이 되도록 천도하여야만 합니다.
원한은 원한으로는 진정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원한을 풀어 없애야만 소멸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국토를 정화하는 일이며
미움을 자비로서 갱생하는 길이 됩니다. 또한 살아있는 우리 구성원은 서로가 용서하고 서로 협력하여 남북이 화해하여 민족 번영을 위하여 함께 힘써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한 생각 일으키어 풀끝에 이슬이 되어 잠시 보여주는 것이요, 죽음이라는 것은 잠시 햇빛을 받아 맺힌 물방울이
사라지는 모습이 그게 죽음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하여 불사약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도 인간수명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불사약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인간이 사고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갈구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종교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진시왕처럼 불사약을 찾아 천하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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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생사 일대사를 해결하시고자 출가수도하여깨달아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오랜 세월 해결치 못한 생로병사의 해탈의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 불교인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과거 선지식도 이 길을 닦아 오셨고 오늘도 이 길을 닦기 위하여 우리 모두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사해탈은 단순한 육체적 현상태로 영속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님은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지수화풍의 사대의 인연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결국은 부서지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여기에 불교의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닙니다. 죽음은 이생의 종결과 아울러 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윤회라고 부르며 우리의 노력은 윤회의 무한반복을 뛰어넘는 것이지 일회성의 생명의 유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왕림하셔서 천도제를 받고있는 수많은 혼령들은 이 소식을 깨달아 윤회의 고달픔을 이제 쉬고 이고득락하여 이 민족의 영토를 지켜주는 호법신장이
되소서.
그리고 원한과 슬픔을 다 잊고 선신의 영령들로 길이 안락하소서. 백겁으로 지은 죄를 일념으로 소멸하여 마른 풀이 불타듯 남김없이 태워서 영겁으로 향하는 부처세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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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부대중들이시여, 우리 모두 죽음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한생의 생이 아니라 다음 생이 이어진다고 할때 어떻게 남은 생을
바르고 옳게 사느냐 하는 것이 미래의 생을 약속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제행은 무상이라, 나고 죽음이 이 모두 이 법 속에 있도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모두 멸해지면 비로소 열반의 즐거움을 가져오리. - 귀의 불타께, 귀의 달마께, 귀의 승가께, 과거의 보승여래시여, 마땅히 공양 받을 성인이시며 모든 것을 바르게 다 아는 성인이시며 밝은 지혜와 바른 행을
고루 갖추셨으며 거룩한 열반에 드셨으며 세상사 모든 일을 아시며 인간 중 가장 높으시며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대장부이시며 하늘과
땅의 스승이신 불세존께 귀의하소서.
수많은 영가들이시여, 심신의 껍질을 벗어나사 밝은 심령이 오릇하야 부처님으로부터 무상의 깨끗한 계를 받으셨으니 기쁘고 기쁘지 않습니까? - 천당의 극락정토 마음 따라 왕생하소서. 그리고 환희롭고 환희롭게 이 게송을 들으소서.
서쪽에서 조사오니 그 뜻이 당당해서 마음을 맑게 하니 성품이 고향일세. 오묘한 본체 해맑아 머무는 바 없을 새, 산하대지가 모든 것이 참
모습으로 보이네.
원멸 사생 육도 법계 유정 다겁생래 제업장 아금참회 개수례 원제 죄장 실소제 세세상행 보살도 원 이차공덕 보급어 일체 아등 여중생 당생
극락국 동견 무량수 개공 성불도.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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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가름
남북 분단 평화 정착
학술 포럼 - 김 도 안
무엇을 살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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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불교인이 한반도통일에 기여하여야
할 역할과 한민족의 화해 협력문제
한민족통일방안 모색을 위한 국제 불교학술포럼
주최:사단법인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1997년 10월 15일(수요일) / 한국 온양 그랜드파크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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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 불교중앙협의회 창립 12주년을 기념하는 국제불교 통일문제 학술포럼에 별로 통일문제에 식견도 없고 학문적인 기초도 되어 있지 않은 저와 같은 사람을
초청해 주시고 또한 발표회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을 먼저 주최측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간 사단법인 민족통일 불교중앙협의회가 창립을 본 후 국내에서 많은 활동과 또한 연구에 업적을 쌓아 오셨다는 것을 관계 요로 신문방송을 통하여 듣고 법혜스님께서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해외에서나마 마음속으로 격려를 보낸 바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이 불교가 이 시대에 있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이며 불교인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본 포럼에 기조를
삼아 발표를 가질까 합니다.
1. 우리나라 역대 통치 흥망성쇠와 종교의 역할이 어떠한 관계로 이어져 왔는가?
고대 고조선 왕조시대는 종교의 성립과정이 그랬듯이 천신을 숭상하는 시대였고 왕조는 바로 천신의 아들이므로 절대복종하는 왕권시대였다고
보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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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종교가 사상적 배경과 이론적 체계가 확립됨으로 해서 외래 종교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또한 발전된 문화적 유입도 그 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특출한 문화가 함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가히 토착된 문화를 배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존하며 또한 협력하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바탕이 되고 얼이 되어 현재까지 사상적 배경으로
전승하고 있습니다.
신라는 992년간 56세왕을 재위시키면서 그 통치 이념을 불교가 해왔으며 고구려도 705년간 28세왕을 재위시키면서 역시 그 사상적 바탕은 불교의 역할 이었습니다.
백제는 678년간 31세왕을 재위시켰으며 통치이념 역시 불교가 사상적 근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통일신라 이후도 그 사상적 배경이 불교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발해가 227년간 13세왕을 재위시켰고 그 또한 통치이념을 불교가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는 474년간 36세왕을 두고 불교를 국교로 하고 국사와 왕사를 배출하고 권세집 양반과 귀족계급들을 출가시켜 천민을 노예화하여 부리며 갖은 폐단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왕가의 특별한 보호령이 인민과 천민들에 미움을 사고 또한 불교지도자들의 타락상은 땅에 떨어져 1300여년간 지켜오던 불교의 사상적 통치이념이 무너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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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선왕조는 518년간 27대왕을 재위시키면서 승유억불정책을 기조로 하여 통치를 해왔으며 철저한 쇄국정치로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국위는 땅에 떨어져 급기야 일본의 강제
침략 야욕에 의하여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36년간을 왜정의 치하에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성덕태자시절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그들의 천조대신과 부처는 신불 일치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불교를 이념사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당시 전국 31본사 주지는 총독부의 사령을 받아 주지 취임을 승인하였고 그 격상도 도지사와 맞먹는 위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세계 2차대전은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한반도는 다시 연합군의 진주로 남한은 미군이 북한은 소련군이 점령하여 양 군정이 신탁통치를 결행했습니다.
우리들의 민족 지도자들은 좌우익으로 나누어져 남쪽은 이승만 대통령을 선출하여 단독 민주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북쪽은 김일성을 주석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산 정권을 수립함으로 해서 그렇게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민족 지도자는 양파로 갈라져 민족 분단의 서막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간 우리 한반도는 그 이념적 벽을 허물지 못하고 50여년간을 원수가 되어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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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남북문제는, 북은 기아와 질병으로 회생 불능의 참혹한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까지 김일성 유일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구권이 한꺼번에 몰락한 현실에도 개방과 시장경제 도입을 미뤄둔 채 공산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사치와 낭비로 국민의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범죄와 정치 부재의 난맥상이 어어지고 있어 과연 조국의 통일의 기반 조성이 확립될 수 있을까 심히 우려한 바가 큽니다.
남북에 종교현황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남한은 서구 민주주의 도입 과정에서 정치 이념을 기독교적인 이념으로 통치자들이 정책 비중을 지켜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승만 정권 12년도 서구 민주주의 토착이라는 미명하에 기독교 교세가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그 인적 자원이 모두가 기독교의
일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허정의 과도정부와 윤보선 대통령의 임기라야 1년 4개월에 그쳤고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이 수립 되면서 민족문화 보존과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명목
하에 사찰을 보호한다는 빌미로 불교재산관리법, 문화재보호법과 같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반 국유화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지임명 동의권, 그리고 재산 처분권도 주무부 장관에 사전 승인 없이는 처분할 수 없는 관제불교로서 불교의 독립성을 갖지 못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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