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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표 기조연설에서 남측의 서의현 종단협 회장은
정치 영역을 떠나서 불교 교류에 남과 북이 모두 동참하자고 주장을 했지만, 북측의 박태호 조불련 중앙위원장은 “남측에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단순한 남북한의 불교 교류는 의미가 없으며,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 문제 등을 없애야 한다”라고 발언하면서 교류 방향과 방식에 있어 시각차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날 연석회의는 첫째 안건으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불교 상호교류(인적·물적 부문), 둘째로 합동법회 개최(초파일 전후의 통일기원 유등법회 개최, 평양 광법사 준공식
때 남한 불교계
초청과 대구 팔공산 동화사 통일대불 회향식 때 북한 불교계 초청) 사항, 셋째는 불교 교류를 위한 상설기구 설치에 대한 논의가 진행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한강과 대동강 등에서 유등법회 개최를 위한 8개항 의향서를 체결하는 등 남북 교류 물꼬를 여는 첫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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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합동법회>- 월간《해인》(1989년 11월호)에도 개최 소식이 전해졌던 1991년 LA 합동법회는 남북불교계가 서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남측 불교계는 “이제, 우리도 북측과 만날 수 있겠구나” 또 “남북한의 불교는 똑같다”라는 자신감과 동질감을 얻게 됐다. 그리고 북측에서는 같이 교류할 수 있는 남측의 불교조직이나 집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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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름(91년, 남북-LA합동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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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불교 대표단 뉴욕에서

1991년 11월 4일, 남북 불교 대표단이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방문한 기념으로 한 자리에 섰다.
좌로부터
캐나다 한인승려, 조불련 홍화두 고문, 리동철 부원, 박태호 위원장, 송월주 대표,
김도안 관음사
주지, 한분 건너서 조불련 심상련 서기장, 신법타 한불협 부회장. - 사진 제공 이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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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하다>- 그 설렘은 기독교계에 의해서 다가왔다. 1988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던 조계종 승려 신법타는 1987년 2월 27일 미국 LA지역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결성돼,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공식적으로 관계 맺었던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 선우학원 박사와의 인연으로 조불련과 연결을 부탁했고, 그것을
미국 장로회 한인교회협의회(PCA-CKC)가 다시 인연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그의《북한불교연구》(2000)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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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국 장로교 한인교회협의회가 1991년 6월 초, 북측의 한시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초청하며 첫 인연으로 연결됐다.
북조선 미국방문단은 단장 한시해를 비롯한 로철수 영접부 참사, 김구식 사회과학원 통일문제연구소장, 박승덕 주체사상연구소장, 고기준 조선기독교련맹 서기장, 리성봉 평양 봉수교회 목사,
최옥희 평양 신학원 전도사, 김혜옥 통역원 등 8명이 방문을 했다.
이때 김도안 LA 관음사 주지 초청으로 그해 6월 19일 관음사 육화당에서 ‘북부조국 미국방문단 환영 간담회’가 열렸다. 재미불교도의 통일 의지와 종교 간의 대화를 제안하면서 북측의
한시해 단장으로부터
“(초청하면) 조불련 대표단이 미국방문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확약을 받은 일과 대화의 창구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1993년 9월 10일 미국 LA에서 열린<제14차 민족통일 심포지움>의 ‘한국불교계 통일운동과 전망’이란 신법타의 주제발표로 소개됐다.
이처럼 첫 만남의 기별은 1989년 7월 1일~8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平壤祝典)’이 도화선이 됐다.
‘통일의 꽃’으로 불린 임수경 전대협 대표의 방북으로 화제가 된 평양축전에는 177개 국가에서 22,000명이 참가했다. 조국통일북미주협회에서도 미주대표단과 참관단을 평양축전에 파견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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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미국 LA 수도사의 신법타는 같은 해 6월 26일 ~ 7월 18일까지 평양을 단독 방문하여 조불련과의 교류를 가지는 한편, 평양축전의 개막과 폐막식에 참여했던 유일한 조계종 승려로 기록됐다.
북측 조불련에서도 《불교도들의 참다운 삶》(2001)에 기록한 바와 같이 평양축전에 세계청년불교도 대표 1명과 조선청년불교도 대표 2명을 참가시켜 우의와 친선 연대활동을 가졌다. 축전 기간에는 평양 모란봉 용화사에서 축전에 참여한 청년과 학생 불자들을 위한 환영 의식을 개최하는 등 국제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설렘으로 다가온 LA 합동법회는 46년의 낯섦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 번의 가족 여행처럼 끝났다. ‘사상에서의 오염원’과 ‘자본주의 황색 바람’이라고 북측에서
평가된 종교 부문에서의 교류가 제한되면서 남북불교 교류의 오래된 미래로 남았다. <글: 이지범>
# 이지범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 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 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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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기 남북불교의 교류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앞장서신 스님을 그린다.(김형근)--------
본격적인 남북불교계 교류는 1990년 뉴욕에서 제안하여 시작하였다.
대원스님과 법타스님의 개인적인 방북이 있었지만 미주한국불교계 차원에서 북한 불교계 인사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교류하는 문제는 당시의 미주한국불교계 역량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과 미국과는 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북한 불교계 인사를 초청하는 문제는 북한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미국 입국비자는 미 국무성의 사전 허락을 받아 중국의 북경 미 대사관에서 받아야 하는데, 북한 정부와 국무성에 연락망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불교계에서는
없었던 때다. 그래서 나(김형근)는 이 일을 불교인이 아닌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며 추진하였다. 미주현대불교(월간잡지) 주변사람들과 필라델피아 거주 황규식씨(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등이 조직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미주불교인협의회"는 LA에 있던 법타스님을 회장으로 발족된 단체로 조불련에 남북불교계가 미국에서 한데 모여 회의를 하자는 '조국의 평화통일 기원 남북재미동포 불교인합동법회' 제안을 1990년11월에 하였다. 이 제안을 하기 전에 나(김형근)는 미국에서 북한과 교류활동을 하던 여러 단체와 사람들을
통해 '조불련'에 의사를 타진하였는데 그때 케이커 교도인 이행우씨로부터 북한 조불련이 "당신이 하는 행사라면 참석 하겠다"라는 언질을 전해 들은 후에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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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케이커라는 단체를 신뢰를 하기 때문에 케이커교도들이 보증을 서면서 추천한 나(김형근)의 제안을 북한 정부당국자들이 승인을 한 것이다. 케이커가 보증을 하지 않았다면 성사될 수 없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하면서, 우선 1970년대에 방북경험이 있는 뉴욕 롱아일랜드 대학교 지창보 교수를 통해 미 국무성으로부터 북한 스님들의 미국 방문 비자발급을 협조해 준다는 서신을 1990년12월5일에 받았다. 위와 같은 사전 준비작업을 하면서 조불련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미주불교인협의회' 단체의 회장 신법타, 사무국장 김형근 이름으로 남북불교 모임행사를 1990년 11월15일에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불련이 보낸 전보를 1991년 1월22일 먼저 받은 후에 1991년 1월10일자로 평양에서 보낸 편지를 뉴욕에서 1991년 2월15일 받았다. - 이 제안을 시작으로 출발한 행사가 1991년10월29일 LA관음사에서 [조국통일 기원 불교도 합동법회]로 막을 올리며 내린 결과였다. 이 행사는 뉴욕의 재가 신자들이 구상하고 중요한 준비는 하였지만 행사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서, 부득이 이에 따른 재정조달의 원활을 확보하기 위해서 본국 종단의 참여가 불가피 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국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하게 되는 형식으로 막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행사에는 한국의 대부분의 종단이 참석하였고 재일본 조선불교도연맹도 참가하였다. 원래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행사를 열 예정이었지만 서부에서만 하였다. - 남북불교가 서울이나 평양에서 만나지 못하고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만난 것은 당시에 남한의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북한과 접촉이 안되고 대화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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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이나 중국에도 이를 추진할 불교계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1991년 '조국통일 기원 불교도 합동법회' 이후에는 중국을 통해 북경에서 남북불교계가 직접 만나 회의를 많이 하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남북불교 교류가 이루어졌고 조계종은 금강산에 목조로 신계사를 복원하였고, 천태종은 개성에 시멘트로 영통사를 복원하였다.
그러나 남북불교 교류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권부터 다시 남북 교류가 막히면서 남북불교 교류도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이후 금강산에서 신계사 건립 기념행사를 조계종과 조불련이 공동으로 몇차례 하고 있다. 불교계 인사가 금강산이 아닌 평양을 가장 마지막
방문한 것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2011년 여러 종교인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자승 스님이 조불련에 버스 한 대를
기증했다고 한다. 도안스님은 1991년 이후 2005년까지 총 16번 북한을 다녀왔다. 2005년 스님이 미주현대불교에서 모집한 참가단 22명을 이끌고 간 북한 방문이 막지막 활동이 되었다.
2017년 11월 4일, 불교교류현황 과제(세미나 자료)
* [미주현대불교]북한사찰순례단은 1차로 2005년에 도안스님을 단장으로하여 22명 참가했고, 2차 2013년, 3차로는 2015년, 2016년에 4차 순례를 끝으로 2017년부터 미국의 북한여행금지령으로 중단, 그 뒤를 잇지 못했다. <사진-2016년 개심사(칠관음변신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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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는 길
1991년 한해는 7천만 모든 동포가 함께 통일을 부르짖고 나섰다. 남북한 최고 책임자는 물론 각계각층 해외 동포 너나 할 것 없이 한반도의 통일이 어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구동성 함성을 부르짖고 나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을 하여야 하는가?
7.4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삼대원칙에 의하여 통일을 하여야 한다고 그 명분을 걸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골이 깊은 이념적 갈등은
가시지
않고 있으며 불신의 벽은 이념적 촌보도 옮기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금번 남북불교 대표자와 해외불교지도자들의 만남이 있었으나 종교적 이해나 교류와 협력을 상호 접근도 못한채 원론적인 이념적 갈등으로 만남의 그 자체로
끝을 맺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 통일은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항상 입으로만 부르짖는 통일보다는 실지 우리가 통일을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가면서 종교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일천만 이산가족이 서로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범국민적 운동이라든지 국민적 화합을 위한 신뢰회복운동
이라든지 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민족문화
복구운동 이라든지, 빈부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복지운동 이라든지, 상호 통행과 통신을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교류협력문제를 종교인이 앞장서서 전개하여야 통일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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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교인은 서투른 정치적 이념논쟁에 휩싸여 통일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그러한 논쟁은 통일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을 우리 스스로 판단하여 상호 종교적 교류를 통하여 남북불교인이 통일에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협력의
동반자로서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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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후 최초 남북불교대표자 회의
한민족불교지도자연석회의에 부쳐(환영사-김도안)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맺기 위해 불교인들에 노력이 필요한때 - 존경하는 조국의 남과 북 불교대표단 여러분! 그리고 재일본 불교대표단 여러분!
국내외의 한민족 불교대표자들께서 상호교류 및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고 나아가 조국의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여하여 주신데
대하여
전 미주의 불교인들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특히 반세기만에 남과 북의 불교대표자가 자리를 같이하여 남북간의 불교교류 문제와 민족의 현실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됨은 분단이후 유례없는
일로서,
비단 불교도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전국민과 세계인이 주목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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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건데 그간 남과 북 불교당국자들의 진지한 노력과, 그리고 교량역을 해온 기대원스님과 신법타스님 등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오늘 이러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단절된 남북 불교교류를 돕기 위해 연초에 결성된 미주한불협에서 이러한 일을 준비하여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됨은 바야흐로 시절인연이 도래했음이요, 불보살의 가피라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이러한 뜻깊은 자리가 어려운 조국의 여건으로 말미암아 국내에서 열리지 못하고 태평양 건너 미주땅에서 열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우리들
불교인에게 새삼 무거운 책임감을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토가 아무리 표면적으로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분단되어 있더라도, 도도히 이어진 산맥과 면면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민족의 정기는 결코 나눠 놓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분단된 민족을 하나되게 하려는 불교도의 불법에 동서가 어디이며 남북이 어디에 따로 있겠습니까?
불교의 원융-회통 정신으로써 나눠진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맺도록 우리 불교인들이 진지한 노력을 서슴없이 기울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번에 “한민족 불교지도자 연석회의”가 크나큰 성과를 거두어 불교사와 민족사에 전기를 이룰 수 있도록 부처님전에 간절히 기원드리면서 오늘연석회의 환영인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 1991년 10월 29일 한민족불교지도자 연석회의 환영사(김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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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불은의
향기를
조국의 강토에
남북불교대표자회의 기조연설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서의현스님)
친애하는 조선불교도연맹의 박태호 원장님! 그리고 북한불교를 대표하여 이곳까지 왕림하여 주신 여러분들! 오늘 우리는 남북한의 불교대표자로서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분단의 아픈 상처가 조국의 산하를 갈라 놓은지 어언 4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같은 핏줄, 비슷한
생김새 였으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경원시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척을 사이에 둔 채 오갈수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는 통한의 아픈 세월을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의 기류는 변해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無常의 섭리는, 이제 더 이상 동과 서의 대립을 지속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제 세계는 "힘의 倫理"가 아니라 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세계를 수립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정치적 변혁,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 등은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핏줄을 나눈 형제, 더구나 부처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공존하는 이 자리의 우리들에게 무슨 걸림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겸허하고 진지하게 남북불교의 교류를
논의해야 합니다. 佛子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그 공감대를 확산시킴으로써 통일을 향한 민족적 여망에 부응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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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는 평양에서 남북총리회담이 있었습니다.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어도 남북의 고위당국자들이 평양과 서울을 오갈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금년 봄에는 남북한 탁구 단일팀이 세계의 정상에 올라 우리 7천만 민족에게 자부와 긍지를 안겨 주었습니다.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가슴에 우리 한반도
지도를 새기고 우승대에 서있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정치와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이와같은 <만남>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남북대화가 이렇게 늦어진 점에 대해서 우리는 부끄러운 감정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도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가장 원만하고 보람찬 결과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돌이켜 보면 불교는 우리 민족과 그 운명을 함께하여 왔습니다. 4세기 후반 북녘땅에서부터 스며들기 시작한 佛恩의 향기는 1천6백여 성상을 거치면서 山河의
곳곳에 그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때로는 국난극복의 현장에서, 혹은 민족화합의 지렛대로서, 또 어떤 때는 인류양심의 대변자로서 불교는 꿋꿋히 이어져 왔습니다.
실로 불교는 한민족의 주체성 확립과 문화적 자존심을 대변해 온 민족의 종교인 것입니다. 지금 남한에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이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교는 가장 많은 敎勢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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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록 불교를 내세우지는 않아도 그들 내면의 情緖는 불교적 체취를 지니고 있습니다. 日常의 질곡을 거치면서 불교는 다소 위축되는 듯한 위기를 맞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불교현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활발한 포교활동을 재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출가수행승들의 청정성확립, 재가불자들의 지성화 경향 등이 두드러졌으며, 명실공히 한국 최대의 종교로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불교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북한의 절이나 스님들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습니다. 또 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등 불교학의 연구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해마다 5백종이 넘는 불교관계 도서들을 간행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불교학 연구도 다양해서 불교교리연구, 불교사연구, 비교종교 등의 다방면으로 중요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남북의 불교교류를 원만히 추진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상호 교환방문을 통한 공동법회 주최라든지, 불교유적지 발굴에 양측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 또는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세미나 개최 등,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류논의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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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이상이 무엇일까요? 저는 한마디로 "화합과 자비의 실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라지고 헤어진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불자들의 願力입니다.
화해를 위한 원리가 四攝이며 四無量이고 六和敬입니다.
어느 한쪽을 무시하는 정복자세가 아니라, 서로 존재당위를 인식하고 공존의 지혜를 키워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반면 그 화해의 실천은 "자비"로서
나타나집니다.
이웃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씨, 보시를 생활화하는 폭넓은 인간방생이야말로 우리 불교의 지향점입니다.
극락은 결코 저 하늘나라의 먼 세계가 아닙니다. 이와같은 각오를 지닌 이들이 모여사는 곳, 착하고 바른 삶이 존경받는 사회야말로 우리들의 이상향입니다.
"유마경"에서 부처님이 가르치신대로 “心淨卽佛土淨” 마음이 맑은 즉 우리의 대지가 맑아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대상은 결코 이데올로기나
국가권력의 相異性에 있지 않습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그 三者의 비뚤어진 마음씨들이야말로 우리가 調伏받아야 할 중생계의 병입니다.
친애하는 남북한 불교지도자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는 두가지 선택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서로를 질시하고 반목하여 파멸의 길을 걷느냐, 아니면 서로 돕고 이해하며 화합의 새 질서를 펼쳐 나가느냐 하는 극단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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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불조의 慧命을 잇는다는 긍지로서 오늘의 후손들 앞에서 떳떳한 "보살"로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자그마한 불편과 견해차이는 접어두어야 합니다.
말그대로 大乘的 원융성으로 이 만남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승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 모임을 주선하여 주신 미국 한국불자 여러분들, 특히 대원스님, 도안스님, 법타스님 등의 노고에 격려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다음번 회의는 우리 조국의 한 모퉁이에서 열려질 것을 확신하면서 거듭 회의의 원만한 회향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남북한 불교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7천만 겨레의 앞날에 부처님의 크신 자비광명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두손모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불기 2535년(1991) 10월 29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서의현 분향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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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기본 발언문
조국을 위한 불교도의
자세
북과 남, 해외동포 범불교도 연석회의 (조불련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태호)
존경하는 법우들! / 나는 연설에 앞서 조국통일의 일념으로 오늘의 이 법회를 마련하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여 오신 김도안스님과 기대원스님, 신법타스님, 김형근선생을 비롯한 한불협과 평불협의 모든 법우들, 그리고 미주지역의 모든 불자들과 동포 여러분들에게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특히 기대원 스님은 이 화합의 성사를 위하여 여러해 전부터 노력 하였습니다. 아울러 나는 이 회합에 참가한 남조선의 서의현 스님과 대표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재일본조선불교도협의회
홍봉수 회장과 서태식 부회장 이하그 밖의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조국땅에서 수억만리 떨어진 여기 미국땅에서 회합을 가지게 되었지만은 겨레의 통일열망에 합세하여 우리 불교도들도 조국통일에 떨쳐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분열된 이래 처음으로 여는 우리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화합으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의 법회가 부처님의 보살피심과 그리고 조국통일을 절실히 바라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도들의 일치한 염원이 마침내 열매를
맺어 실현될 수 있었다고 보면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불교도들의 자세”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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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삼천리 조국땅 위에서 밝게 비치고 민족의 통일염원이 현실로 펼쳐질 통일조국에서 만복을 누리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는
것은 우리 불교도들과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우리의 민족적 요구입니다.
우리의 이 원과 요구는 나라와 민족의 분열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며 우리나라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평화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야말로 자기의 주인이다. 그 다른 누가 주인이 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도, 조국땅의 평화보장문제도 우리민족이 주인이 되어 풀어야 할 문제이며 그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풀려해서는 안되며 또 풀수
없는 문제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는 불법의 진리입니다.
조국땅에 태를 묻고 태어난 조선민족이라면 그 누구나 할것없이 조국통일과 조선반도의 평화보장문제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며 우리민족의
구성원인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도들도 이 길에서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과 나아가서 모든 중생을 온갖 고로부터 해탈시키는 것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이며 대승보살의 기본 실천행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불교도들은 발고여락을 기본이념으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하여 수도정진하고 있습니다. 외세에 의한 나라와 민족의 분열은 7천만 우리 민족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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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불행을 가져다주고 있으며이런 까닭에 우리민족은 고통중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분열의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해탈의 궁극적 목표도, 발고여락의 이념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분단 조국으로 남아 있으며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우리민족의 수치로 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민족의 분열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 참여행을 하는 것이 우리 불교도들 앞에 나서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당면과업 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기도를 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반드시 현실참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는 인위적으로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곧 겨레의 운명, 민족의 생명에 관한 문제인 것 만큼 더는 미룰 수도 없고 미루어서도 안될 절박한 과업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교도들은 이것부터 똑똑히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온 겨레는 조국 해방 50돌이자 민족분열 50돌이 되는 19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통일대행진을 힘차게 벌리고 있으며 우리민족의
이러한 의로운 활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8월 15일 판문점과 서울, 도꾜에서 진행된 제2차 범민족대회에서 다시한번 과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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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의 원칙과 방도를 확장하는 문제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나서는 필수적 요구입니다.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조국통일의 근본적 원칙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원칙이 오늘도 변함없는 조국통일의 3대 원칙에 따라 실현되어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조국통일의 방도에 대하여 말할 때 북과 남이 서로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양보하려 하지않는 조건에서 누가 누구를 먹거나 또 누가 누구에게
먹혀오지도
않는 적화통일도 승공통일도 아닌 연방제 방식에 따라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의 방도라고 인정합니다.
조국통일 문제의 본질과 근본원칙, 방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가진 기초위에서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족대단결의 실천행을 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조선민족이며 따라서 전체 조선민족은 단합하여야 통일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화합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그것은 곧 민족의 화합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불교도들과 각 계층 동포들은 화해, 화합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상과 제도,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공동의 이익을 앞세우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 것을 복종시켜야 할 것입니다.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벌이는데서 중요한 문제는 조선반도를 비핵평화지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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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평화이념과 불살생의 계율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4만여명의 미군과 천여개의 핵무기는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협하고 핵전쟁 위험을 가져오는 근본조건으로 되고 있습니다.
보통의 살생이 아니라 순간에 다량의 살생을 가져올 핵무기가 남조선에 남아있는 조건에서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바랄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북과 남,
해외 모든 불교도들은 이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남측 당국자들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또 개발의사도 능력도 없는 공화국에 대한 일방적인 핵사찰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끌어가고 동시 핵사찰을 한다면 공화국의 핵담보 협정체결의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불교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신성하게 보호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우리민족에게 무서운 핵참화를 들씌울
오늘의 이 현실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며 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를 위한 여러 가지 실천활동을 적극 벌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냉전으로부터 완화의 시대로 급변 하고 있고 북과 남이 유엔에 가입한 조건에서 남조선에 미군과 핵무기가 남아 있어야 할 근거가
없으며, 팀스피리트와 같은 핵-전쟁 연습이 계속되고 군비가 증강되어야 할 이유와 구실도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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