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가시는 길 마지막 뵈옵니다"
도안스님 입적소식 LA 한인신문 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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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관음사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영정앞에서 애도하고 있다. (중앙일보 임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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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커뮤니티 활동 앞장 '불교계 큰별'
불교계의 큰별인 관음사주지 홍엽당 도안스님이 지난 8월 28일 6시에 세수 70세(법랍54세)로 입적했다. 9월 2일 오전 10시 영결식이 거행된
관음사 강당에는 80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모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52년 경남 동래 범어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71년부터 5년동안 조계종 총무원 재정국장 및 사회국장을 맡다 75년에 도미, LA관음사(74년 3월 개원)의 주지로 부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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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86년부터 95년까지 미국불교협회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몇차례 불교사원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한국불교가 미국에 뿌리내리는데 앞장섰다.
타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식량돕기에
나서는 등 각종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하는 불교전파에 힘을 기울였고, 종교평화협회를 창설하여 미주지역 타종교의 지대한 동참세력과 함께 역량을 키워 나갈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지난 2002년 12월 대장암 초기 수술 끝에 재활에 성공했던 스님은 작년(2005년)에 북한 사찰순례를 마친 후, 3월경 암종양이 간으로 전이되어, 식이요법 치료를 해오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듯 하였으나, 끝내 간에 종양이 커져 관음사 주지 방에서 가료를 해오던 중, 결국 8월 28일 오후 6시 6분 굳사마리탄 병원에서 임종하셨다.
그간 간병 해온 친동생 김안수 포교사는 "스님은 8월 28일 오후 5시 30분 의식이 분명한 가운데 서울의 도문스님으로부터 전화 목소리로 열반송 법문을 들으면서, 관음사 임직 재가불자 6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6시 6분 임종을 보이셨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도안스님은 관음사 재단은 재가신도 중심으로 계속 유지발전을 기약하셨고, 승단은 오직 조계종단의 종지와 승풍을 이어 받는 미국에서 반듯한 조계종 가람의 터전이 세워질 수 있도록, 언제나 재가신도는 승단의 외호세력으로 성장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신문 박애영 종교담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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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조문객 줄이어
도안스님 장례식 - 남가주 사원연합회장으로
도안스님의 장례식이 남가주사원연합회장으로 치뤄진다. 남가주사원연합회(회장 현철스님) 회원 및 관음사 신도회 임원진 등 20여명은 29일 관음사 대강당에서 임시 회의를 열고 입관식은 오는 1일 오후 7시 한국장의사에서, 영결식은 2일 오전 10시 관음사에서 진행키로 했다. 또 장례위원장에는 남가주사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반야사 주지 현철스님을, 집행위원장은 이철우 관음사 전 신도회 회장을 각각
선정했다. 현철스님은 "정신적인 기둥역할을 하신 도안스님 입적은 LA한인 불교계의 커다란 손실"이며 "미주 한인사회의 불교계 발전에 남은 이들의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관음사를 방문한 양현승 목사(미주종교평화협의회)도 "몇일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만세'까지 외치셨다"며 착찹한 표정을 지었다. 양 목사는 "종교를 떠나 도안스님은 * 한인사회와 민족을 위해 봉사헌신하신
분"이라며, "그분의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종교계가 한마음으로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관음사는 29일 오전부터 도안스님의 입적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신도들과 조문객 행렬이 이어졌다. 김목응(72) 신도회장은 "지난 30여년간 공양주 없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며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준 진짜스님이었다"며, "좀더 남아 일하실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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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포교 헌신... 북한지원 앞장
미주불교 산 증인··방북 15차례, 국수공장 설립 등
28일 입적한 도안 스님은 LA한인사회에 불교를 뿌리내린 개척자였다. 특히 불교계를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다른 종교계와 잇는 다리역할에 앞장서 왔다.
그가 조실로 주석했던 관음사는 올해 개원 32주년으로 한인들에게 불교문화를 제도하는 사찰로 우뚝 섰다.
지난 75년 LA에 온 후 선방 및 도서관을 세우고 동산불교대학(현 로메리카 불교대학)을 설립해 젊은 불교학도를 양성하는데 주력한 고인은 한미불교봉사회를 만들어 노인들을 위한 영어교육과 사회보장 세미나 등 저소득층 이민자를 지원하는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열어 한국불교가 이민 생활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신도들에게 항상 공동체의식을 갖고 살아갈 것을 강조했던 고인은 그의 생활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창기 사찰 구입 기금이 부족하자 작업복을 갈아입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밤에는 청소를 다니며 사찰구입비 마련에 동참했던 일화는 지금도 신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고인의 공동체의식은 이뿐만 아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를 창설해 이승만 전 미국장로교 총회장과 박창덕 신부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으며 종교간의 화합 무드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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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국통일불교평화협의회 미주본부 회장으로 북한을 15차례나 오고가면서 결국 금강국수공장을 건설,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암투병중이던 지난 해에는 관음사 수행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LA에서 1시간 여 떨어진 LA카운티 펀치볼 국립산림공원 접경지대에 40에이커의 땅을
구입해 산중 사찰을 짓는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커뮤니티의 활발한 활동과 달리 고인은 시간이 날 때면 시를 짓고, 행사 때면 직접 새벽 꽃시장을 찾아 꽃을 구비하여 꽃꽂이를 직접하는 등 정적인 모습도 갖고 있었다. 또 어린 시절 모친의 부주의로 머리에 화상을 입힌 흉터 흔적이 남아, 그 부분을 출가 이후 모자로 커버하는 센스를 가졌던 고인은 외출할 때마다
즐겨썼던 검은 통모자를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 줄 아는 멋쟁이었다.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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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 지다" ... 애도 물결<각계 반응>
양현승(목사-미적집사사 전국다양성위원)/ 도안스님은 한마디로 "말려도 안되던 양반"이다. 그 정도로 종교계와 한인사회를 위한 일을 많이 했다. 종교인이 아닌 '봉사자'로서 그의 열정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30년간 종교를 초월,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한 형제처럼 지냈다. 현장에서 함께 뛰던, 우리 민족의 장래와 미주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의견을 논하던 그가
벌써부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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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엄(LA한인회 이사장)/ 불교계의 큰 별이 졌다. 불교지도자 였지만 종교를 떠나 한인들의 한단계 나은 삶을 위해 발로 띈 커뮤니티 지도자 였다.
민병용(민주평화통일 LA지역협의회 수석부회장)/ 도안스님은 이곳 불교계에서는 제일 큰 어른으로 크게 3가지를 남기셨다. 우선 미주지역의 불교포교에 헌신하셨다. 두번째는 북한 불교계와의 적극적인 교류 등을 통해 불교인으로 또 미주 동포의 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통일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셨다. 마지막으로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 불교인의 영역을 넘어 누구보다 커뮤니티를
사랑한 어른이셨다.
윤대중(민족학교 사무국장)/ 종교계의 훌륭한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사회참여활동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 떠나셔서 매우 안타깝고 슬프다. 스님은 미주 한인사회의 발전과 평화 번영에 삶을 바침으로 우리 모두에게 참스승의 모습을 보이셨다. 민족학교는 고인의 이 같은 숭고한 뜻을 되살려 커뮤니티 권익 향상을 위해 더욱 힘차게 매진할
것이다.
박영준(남가주한인노동상담소장)/ 종교인의 양심을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실천하신 분이셨다. 북한과의 교류에 앞장서신 부분을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통일운동과 미주 한인커뮤니티 발전을 위한 활동에 민족애를 바탕으로 헌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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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통일맞이 나성포럼회장)/ 최근 신도들이 오래된 자동차를 바꾸라고 모아드린 2만달러를 북한에 국수공장을 만드는 일에 쓰셨다. 그 뒤에도 개인재산을 털어 공장 운영을 책임지실 정도로 이념을 초월한 통일운동에 전념하셨다. "민족애"와 "동포애"를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신 분이셨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허무하다.
--<중앙일보 오종수 * 서우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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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반응
박상대 신부(가톨릭 사제 협의회 회장)/ 불교계의 큰 별이 사라졌다. 스님은 남가주 불교계에 정신적인 지주로 불교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왔음을 잘안다. 또 모든 중생들이 함께 극락왕생하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신 분이다. 앞으로도 그의 자비와 공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불교신자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한기형 목사(남가주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오랜 기간 한인사회의 기둥 역할을 해주시던 분이 돌아가셔서 불교신도들이 얼마나 허전한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였던 강원영 목사가 타계하고 이번에는 또 불교계의 거목인 도안스님이 먼저 가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신앙이 달라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지만 도안스님이 종교를 넘어서 폭넓은 활동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 늦었지만 감사함을 표한다.
--<중앙일보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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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그린다
불기2550(2006)년 9월 2일 10시


홍엽당 도안 종사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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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LA관음사 주지 지암스님 봉행 도안스님 10주기 추모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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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그리며, 멀리서나마
--(“대원수좌, 왔어요?” 하며 반길 것 같아 / 옹강산)--
1994년 1월, LA에 노스리지 지진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송광사 LA분원 고려사 국제선원장이라는 과분한 이름으로 1년간 소임을 살았다. LA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포교에 눈을 돌린 여러 스님네들의 노력으로 한국절이 해외에서 제일 많이 건립되어 있는 곳이다. 당시 나는 30대 후반으로 법랍으로나 세납으로나 제일 어린 축에 들었기 때문에 남가주사원연합회 간사 일을 맡았다. 회장은 관음사 도안스님이셨다. 간사란 회장을 보필하고 심부름 하는 자리여서 자주 스님을 뵈었다. 때로는 스님께서 고려사에 오시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관음사로 찾아 가기도 했다. 전체적인 모임은 각 사찰에서 돌아가면서 열거나 아침식사를 겸해 작은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회의를 했는데 법왕사 현일스님, 반야사 현철스님, 대각사 진각스님, 보문사 인권스님, 한마음선원 혜중스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스님을 모시고 4월 초파일 행사 등 여러 불교 행사를 보좌하면서 늘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연세가 제일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항상 앞에서 남가주 불교를 위해 정열적으로 일을 하시는모습은 젊은 스님들의 귀감이 되었다. 남가주 불교방송도 당신이 시작한 일이었다. 스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그 해 12월 성당을 빌려 태안사 청화
큰스님을 모시고 송년법회를 할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님은 정정하셨다. 얼마 후 나는 1년의 임기를 마치고 송광사 큰 절로 들어와 교무 소임을 살다가 다시 제방 선원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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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해제철에 토굴에 머물고 있을 때 뜻밖에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LA에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나를 잘 보셨는지 8년 전 잠깐 살다 간 후학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러나 당신의 청을 들어드리지는 못했다. 포교에 자질도 없고 또 산골 토굴에 80 노모를 모시고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당신은 대장암으로 판명 받은 후 큰 수술을 마친 상태였으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작년 여름 불교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스님께서 입적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세수 70세 법랍 54세. 세연을 마치시기엔 너무 안타까운 연세였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 가 한국불교의 불모지인 LA에 관음사를 개원한 스님은 86년부터 95년까지 미국불교협회 공동의장, 남가주 불교사원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한국불교가 미국에 뿌리는데 앞장섰으며 북한식량돕기에 나서는 등 각종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불교전파에 힘을 기울이신 분이었다.
비록 잠시지만 가까이에서 모셔본 적이 있는 나는 평소 불교와 민족과 국가를 위해 노심초사 일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던 스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다망하게
사신 것이 당신의 몸에 병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LA 관음사 홈페이지를 찾아 스님의 생전 법문 동영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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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이나 다름없는 인자한 모습이지만 몸이 많이 쇠약해진 수척한 노장님의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법망구(爲法忘軀)-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는다는 이 말은 바로 당신께
해당하는 말이리라.
마지막에는 무상의 진리까지 보여주셨으니 스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선지식이며 큰스님이셨다.
세상이 발전하여 인터넷으로 미국에서 열린 49제를 한국에서 보았다.
관에 누워계신 스님의 법구는 이제라도 일어나 “대원수좌, 왔어요?” 하며 반길 것 같았다.
스님, 부디 튼튼한 몸을 받아 다시 사바세계로 오십시오. 금생에 스님과 맺었던 짧은 인연이 다음 생에는 더욱 길어지길 바라오며 멀리서 후학 삼배 올립니다. (07. 03) 도안 스님을 추모하며|
작성자 옹강산<2019.4.5>

옹강산(대원스님) - 94년 LA 시의회 초청 행사 참가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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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함께 아미타부처님께 기도 드리면서,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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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힐 관음사-불교묘지>
도안스님 유해 안장 - 사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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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나 혼자만의 기억
----------스님을 그린다. (한원각행)---------
나는, 어린이 불교운동과 찬불가 보급운동에 앞장서셨던 운문 스님과의 인연이 나의 친정 부모님들로부터 맺어온 사이였다. 그래서 내 나이 24살때 남산 KBS방송국에 다니면서 자주 운문스님의 활동을 곁에서 돕고 있었을 무렵, 1968년 4.8봉축기념 어린이예술제를 진명여고 강당에서 치루었는데 그때 예술제 사회를 보게 되어, 녹야어린이회를 이끌고 오신 도안스님을 처음 알게 된 인연이 된다.
그 뒤 1969년 1월 불교어린이회와 중고등학생회를 통합한 청소년교화연합회를 선학원에서 당시 종단 장로원장 대의 큰스님을 모시고 발족하게 되었는데, 대의 큰스님 방에서 도안스님 친동생 김안수 거사가 청소년교화연 창설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 나도 운문스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어 그때에
김안수 거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또한 대의스님께서 설계하시는 선학원 보살계 대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보살수계 불명도 그때 함께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이 결국 운문스님 중매로 1971년 4월, 김안수 법사와 혼인하게 되었고, 도안스님이 김법사와의 속가 인연으로 나에겐 시숙님이 된 것이다. 그래서 도안스님의 생모이시며, 나에겐 시어머님이 되시는 강대선화 보살님에게서 들은 스님에 대한 이야기 등, 그 외 늘 기억속에 담고 잊지 않고 있는 이야기를 간추리며, 지난 세월의 스님의 덕을 잊지 못해 이를 함께 그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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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11월에 도안스님이 미국으로 들어가시고 난뒤, 2년쯤 지나서 비몽사몽간에 스님에 대한 불길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산중에 시커먼 검정 개울물에 스님께서 몸이 반쯤 빠져서 나오실려고 애를 쓰는 꿈을 꾸다가 잠을 깼는데 너무 예감이 안좋아 김법사께 이야기를 하고, 미국에 전화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쓸데없는 꿈에 매달리지 말라고 야단치드라구요.
꿈을 꾸고 난 뒤 이삼일이 지나서 미국서 한국(77년 6월경)에 다녀간 청년불자 녹야원 학생회 출신 연실 아가씨를 통해 전해듣게 된 소식은 77년 3월 고속도로에서 스님께서 기름탱크 츄렐라에 의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해 응급조치 후, 퇴원하셨지만 매우 극심한 교통사고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 통증에 불편을 겪으면서 살아 가신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도안스님은 어린시절 어머님 곁을 떠나질 않고 따라 다니셨는데, 어머님께서 부엌에서 풀을 쑤어 퍼 옮기던 중 일어서려다가 뜨거운 죽그릇이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아이(스님) 머리에 쏟아져서, 화상을
입고 그 뒤로 머리에 흉터가 남고 머리카락이 나질 않아 평생 모자를 쓰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님을 졸졸 따르던 어린시절 스님! 어머님은 그 도안스님에 대한 출산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출산할 때 아이가 거꾸로(발 다리부터) 나왔는데, 두손은 합장하고 똑바로 꼿꼿하게 서서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15세에 출가하신 스님은 24세 때는 서울 적조암에 기거하게 되었고, 그 때 서라벌예대(문예창작과)를 다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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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 여학생이 혼자 너무나 스님을 좋아하고 사모하며 절까지 매일 찾아오다싶이 하면서 결혼을 하자고 매달렸다. 스님께서는 냉정하게 뿌리치셨고 단한번 눈길마저 주지않아서 결국 그 여학생은 결국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마지막 그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49재를 정성껏 봉행해 주었다고 어머님은 내게 말씀해 주신 바 있다.
그리고, 스님께서 법회때 알려준, 직접 겪으신 체험 실화 한편이 너무나 내겐 잊지못할 감동여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스님께서 직지사에 주석하실 때인데, 어느 봄날 스님방 문 앞에 새 한 마리가 신음소리를 내며 울부짖길래 나와보니, 새 한마리가 다리를 다쳐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새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붕대로 약을 발라줬더니 마침내 나아서 날라 갔는데, 그 다음 봄에 새 한마리가 날라와 스님이 방문 앞에 서있는데 그 새가 막 소리를 내길래 그 새를 보는 순간 씨 하나를 스님 앞에 떨어트려 살펴보았더니, 보리자 염주씨였드랍니다. 그래서 심었더니 많은 보리자 열매가 달려서 그것으로 염주를 여러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스님께서 법회 때 들려주신 이야기 입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로는 제가 꿈에 본 신기한 이야기 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장례를 치룬 일주일 쯤 지난 후 일로,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스님을 뵈었는데 옛날 살아 계실때 그 얼굴모습이 아닌, 꿈속에서도 사바세계에 사는 분은 아니구나 담박에 알아차렸죠. 얼굴모습은 눈화장만 한듯하고, 아주 화려한 거룩한 비단 옷 황금벨트에 맨앞에서 주장자를 짚으셨는데 스님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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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님을 보는 순간...꿈속에서라도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합장하고 인사를 올렸는데 스님께서는 말씀은 안하시고 약간 미소만 짓고 서로 바라만 보고 있다가 꿈을 깬 기억입니다.
끝으로 이자리를 빌어 스님께서 투병시 스님의 회복을 위해서 많은 신심과 불심으로 물심양면으로 노고에 임하셨던 분들, 송학당 원장 탕재치료, 어느 비구니스님의 간병, 혜광법사 한의치료 및 총력을 기우려 헌신해주신 신도여러분께 충심으로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저와 김법사님, 사중 스님들께서 필사적으로 간병을 지켰건만 사바의 인연이 다 되셨는지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마지막 몇몇 신도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보이시며 입적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간 연화방에서 스님의 불사에 적은 보시나마 보태시라고 틈틈히 제게 건내주신 헌납금을 차곡차곡 모아 오던 중에 스님 입적으로 달리 용처가 없었던 바, 이를 앞으로 스님 출판물 간행이 있을 때 사용하려고 기다려 왔습니다. 그간 제가 모금해서 간직해 온 것, 합계 결산으로, 헌납명단을 아래에 밝히며 불사금 회향처로 삼습니다. 2005년- 김인선, 원명사 신도(익명), 신동환, 송운, 유철호, 이희정, 김형근, 문은희, 임보살(신북경) 2006년- 전계향, 변서이, 이민아, (익명), 김희순, 서기영-서태희(부부), 정연규, 김영중, 이계식, 김화자, 길민호, 길성호, 길미경, 최문수행
---총 헌납 모금액 : $1,187.00 ---/ 화주자(한원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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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불교봉사회
Korean American Buddhist Commnunity Services, Inc.
<목적사업 및 임원구분, 주요내용>
우리는 노인복지, 청소년(종교)교육, 출판문화사업을 전개해 나감을 골격으로 한다.
지역단위 회원그룹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신행공동체<파라미타
운동> 친목을 적절한 장소에서 행한다. 회원은 일반정규회원,
후원운영회원,
특별우대회원으로 구분한다. 이사 명칭은 후원/예비-이사, 현직/임원-이사로 구분 호칭할 수 있다.
서로 만남과 소개를 통해 회원을 증가해 나가는 기록일지를 유지하고, 이를 갖추어 전진의 발판을 삼고자 한다.
<회원활동>문의: lomerica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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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임원 기록 현황 ---
1> 4165 W. 5th Street, Los Angeles, CA 90020-설립주소 CEO/President - Do Ahn Kim (84.11.30~86.11.30) Secretary - Jong Ha Lim, Director - Dong Soo Choi >
2> 4265 W. 3rd Street, Los Angeles, CA 90020 -관음사
CEO/President - Dong Chae Kim (86.11.30~88.11.30) Secretary - Dong Chae Kim, CFO - Dong Chae Kim > CEO/President - Dong Chae Kim (88.11.30~90.11.30) Secretary - Jae Soo Han, CFO - Jae Soo Han > CEO/President - Dong Chae Kim (90.11.30~93.9.30) Secretary - Dong Chae Kim, CFO - Dong Chae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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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267 W. 3rd Street, Los Angeles, CA 90020 -관음사
CEO/President - Jum Ryon Myung (93.9.30~94.11.30) Secretary - Eun Young Kim, CFO - Ok Sun Nam > CEO/President - Dong C. Kim (94.11.30~00.11.30) Secretary - Byung Chul Jo, CFO - Mok E. Kim > CEO/President - Do Ahn Kim (00.11.30~03.3.30) Secretary - Byung Chul Jo, CFO - Mok Eung Kim > CEO/President - Do Ahn Kim (03.3.30~04.3.30) Secretary - Chul Woo Lee, CFO - Mok Eung Kim >
4> 252 S. Oxford Ave., Los Angeles, CA 90004 -봉사회
CEO/President - Do Ahn Kim (04.3.30~06.11.30) Secretary - Ahn Soo Kim, CFO - Mok Eung Kim >
CEO/President - Ahn Soo Kim (06.11.30~08.11.30) Secretary - Ki Hong Choi, CFO - Mok Eung Kim >
CEO/President - Ahn Soo Kim (08.11.30~09.11.30) Secretary - Ki Hong Choi, CFO - Woo Young Kim >
CEO/President - Ahn Soo Kim (09.11.30~12.11.30) Secretary - Woo Young Kim, CFO - Ki Hong Choi >
5> 829 S. Grandview St., Los Angeles, CA 90057 -
새주소 CEO/President - Ahn Soo Kim (12.11.30~20.08.06) Secretary - Woo Young Kim, CFO - Ki Hong Choi >
6> 941 S. Grandview St.#5 Los Angeles, CA 90006 - 새주소
CEO/President - Ahn Soo Kim (20.08.06~계속) Secretary - Woo Young Kim, CFO - Ki Hong Choi > <04.4.1 이후 봉사회는 관음사와 별도의 독립법인 회계를 유지함>
 
최초의 봉사회 사무실과 한국문화도서관(관음사1층)
노인복지혜택 안내 및 도서관 사서업무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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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리카불교대학
Lotus-America Buddhist College
<사진으로 보는 로메리카불교대학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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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께서 불교대학 학장으로 계시면서
9년 세월에 100여명의 포교사를 배출하셨다.

제1회 졸업식 / 1기 포교사품수식(2000년) / 제3기 포교사품수식(02년)

제4회 졸업식 / 4기 포교사품수식(04년) / 제6회 졸업식(06년)
초기 LA포교사 배출을 이끌어 왔던
<로메리카 불교대학>이수과정 강사진

현일 스님 / 알아 스님 / 황인관 박사 / 박재욱 법사 외
박동기 교수, 박석순 법사, 김운정 법사, 채인환스님 등
로메리카불교대학은 차세대를 위한 길잡이: -붓다의 메이리-
새시대 인터넷 Website 활용으로 SNS 불교사회교육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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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America Buddhist College
<불교대학 발자취> 역대 LA포교사단장

<초대 김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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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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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최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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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황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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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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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1 신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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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2 강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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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유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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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조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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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신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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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장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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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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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로메리카 불교대학 동창회장

<초대 곽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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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황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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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강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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