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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당한 체제를 허물더라도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생명이 다치는 일은 피해야하며, 둘째, 나쁜 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보다 더 못한 체제가 들어서는 일이 없으란 법 없으니, 온당한 위기 타개와 바람직한 분단 극복을 위해서는 분단 체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서로에 좋은 것인지 즉 화공(和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현재의 남북 분단이 우리의 뜻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강대국의 숨결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에 우리는 분단의 의미를 잘 생각해서 분단극복의 그날까지 공산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고집을 놓고 서로 같이 잘 살 수 있는 중도주의의 화공(和共)으로 분단을 개척하도록 대산 종법사님은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기업 또는 종교인 중심으로 북한돕기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중도주의(中道主義)의 화공사상(和共思想)의 일면이라 생각한다.

3. 원불교의 국가 정치관
1) 정치 이념의 근거
원불교 존재의 근원은 일원(一圓)의 진리를 배우고 가르쳐서 이 지상에 낙원세계를 건설하려 함이기에 모든 사상과 이념의 근본은 이 일원상의 진리가 중심이 된다.
원불교의 창시자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우주의 진리를 깨치고 이를 일원(一圓)이라 표현하고 이 하나의 진리에 의하여 하나의 세계, 일원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사상인 바, 이는 곧 전 인류가 성자의 가르침을 받아 다 함께 잘 사는 대세계주의(大世界主義)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이념의 근거가 되며, 정치와 종교는 하나의 이념으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자는 것입니다.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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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교동심(政敎同心)의 사상
“종교와 정치는 한 가정의 자모(慈母)와 엄부(嚴父) 같나니, 종교는 도덕에 근원하여 사람의 마음을 가르쳐 죄를 짓기 전에 미리 방지하고, 복을 짓게 하는 법이요, 정치는 법률에 근원하여 일의 결과를 보아서 상과 벌을 베푸는 법이라....
자녀의 행과 불행은 곧 부모의 잘하고 잘못하는 데에 있는 것과 같이, 창생(蒼生)의 행과 불행은 곧 종교와 정치의활용 여하에 달려 있는지라....
그러므로 도덕에 근본한 선정덕치(善政德治)를 베풀어 모든 생령과 한 가지 낙원 생활을 하여야 우리의 책임을 다하였다 하리라.”
(원불교 대종경 교의품 36장)

“종교와 정치가 세상을 운전하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 같나니, 만일 두 바퀴가 폐물이 되었다든지, 또는 한 바퀴라도 무슨 고장이 있다든지, 또는 그 운전사의 운전이 서투르다면 그 수레는 잘 운행되지 못할 것이니라...
종교와 정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세상을 잘 운전하기로 하면 시대를 따라서 부패(腐敗)하거나 폐단(弊端)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이요, 그 지도자가 인심의 정도를 맞추어서 적당하게 법을 쓰고 정사(政事)를 해야 할 것이니라.”
(원불교 대종경 교의품 38장)

정치와 종교는 한 가정의 자모와 엄부의 역할을 하는 것과, 또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두 바퀴가 건실해야 수레가 잘 갈 수 있는 것과 같이 국가와 세계도 정치인과 종교인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국가와 세계가 평화의 세계, 낙원의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222)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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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국(治國)의 도(道)
도정(道政)-천지의 도에 의해서 차서(次序)있게,
덕정(德政)-덕으로 전 국민을 이롭게,
법정(法政)-헌법에 의해서 바르게,
패정(覇政)-일시적 수단, 권모술수로 반리반해(半利半害),
위정(爲政)-국민을 속여 위정자(爲政者)의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것 등의 다섯 가지 정치 방법 중 성정(聖政)은 도정(道政), 덕정(德政), 법정(法政)의 三治가 된다.

4) 강자 약자 진화의 도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강약의 대립을 벗어나 한 기운 한 형제로서 서로 보호하고 의지하여 평등 원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1. 강자는 약자를 진화(進化)시킴으로서 영원한 강(强)을 지속할 일. 이 세상의 강자들은 강약의 대립을 놓고 약자에게 절대 보호로서 깨우치고 바루어서 상생(相生)과 평화의 세계가 되도록

2. 약자는 강자에게 배워서 진정한 강(强)을 얻을 일. 이 세상의 약자들은 강자에게 보복의 감정을 놓고 슬기롭고 정의롭게 정당방위로 대처하여 배우고 힘을 길러 강자가 되어 함께 잘 사는 세계를 만들도록.

5) 지도인(指導人)으로서 준비할 요법
1. 지도받는 사람 이상(以上)의 지식을 갖출 것
2. 지도받는 사람에게 신용을 잃지 말 일
3. 지도받는 사람에게 사리(私利)를 취하지 말 일
4. 일을 당할 때마다 지행(知行)을 대조할 일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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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교 연합(United Religions) 운동 전개
우리 모든 종교인은 합심합력해서 정치적인 UN에 대등한 종교적인 UR(종교연합)을 창설시켜서 인류에 대한 영(靈) 과 육(肉)의 빈곤, 질병, 무지를 퇴치시켜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여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평화를 이루는 길.

- 1970년 동경에서 제1차 세계 종교자 평화회의(WCRP)에서 제창하여 ACRP(아시아종교자평화회의), KCRP(한국종교자평화회의), WFB(세계불교도우의회)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7) UN NGO 활동전개
1992년 원불교가 비정치단체인 유엔 NGO에 정식 가입하고 19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 종교회의 종교NGO회의, 아시아 종교평화회의 등에 협력하여 아시아 평화 및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제반 노력을 하며, NGO의 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하여 원불교 UN사무소(뉴욕 맨하탄)를 설치하여 세계 각 종교와 여러 단체들과 협력하여, 종교UR운동과 더불어 NGO의 활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 각국과 연합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4. 삼동윤리(三同倫理)의 사상
삼동윤리는 전 인류가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일꾼으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자”는 이념으로원불교 제2대 정산 종법사의 게송입니다.

1) 동원도리(同源道理)-세계종교 대동화합


(224)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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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종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근원의 한 도리인 것을 알아 서로 소통하여 대동화합함으로써, 이 세상을 진리의 세계, 도덕의 세계로 만들자는 것이니, 곧 세계의 모든 종교가 대동화합하자는 것입니다.

2) 동기연계(同氣連契)-세계 종족 대동화합
온 인류로 하여금 본래 한 집안 한 자손임을 서로 깨우쳐 알게 하여, 동포 가운데 심히 빈한한 동포가 없도록 구제하고, 배움의 혜택도 주고, 질병도 퇴치시켜서, 온 인류가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평등원만한 세계를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3) 동척사업(同拓事業)-세계 사상 대동화합
모든 사업과 사상이 다 같이 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한 동력이 되는 것을 알아서 절장보단(絶長補短)으로 대동 화합하여 문명의 세계, 안녕의 세계를 이룩하자는 것이니, 중정(中正)의 정신으로써 세계의 모든 사업과 사상이 대동화합 하자는 것입니다.

결언
우리는 반만년 한민족 역사 속에 많은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민족입니다.

최근 현대사에서는 용공분자도 있었고, 그에 대항하는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승공이 제일인양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분단체제를 잘 알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종교인으로서 역할이 많이 요청되고 있는 시점임에 틀림없습니다.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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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회 정치인에게 인간의 본연을 회복하고, 정치와 국가 발전의 참된 이념을 찾아서, 모든 인류가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강자의 길과 약자의 길을 인도하는 이념으로,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이니 다 같이 한맘으로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 낙원의 세계를 건설하는 한 일꾼이 되도록 화합하는 인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어려움을, 정치적 이념의 벽을 넘어 종교인으로 성자의 정신 즉 자비와 사랑과 인 그리고 은혜의 마음을 깨치고 실천하여, 종족과 사상과 종교를 넘어서 한 집안 한 권속으로 알고 용서와 이해와 화해로, 각 종단에서 실행하고 있는 직접적인 ‘북한돕기운동’과 세계종교연합운동과 비정치단체로서 UN NGO의 연합 활동 등을 통하여 정교동심의 사상과 삼동윤리의 사상과 함께 더 많은 노력의 합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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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넷째가름(주제강연-김혜봉 교무)

 

 


 

 

 

다섯째 가름

저멀리 과거로부터 미래를 바라본다

고뇌에 찬 세속인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하며,

진정한 수행자의 길은 무엇 이었을까!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기며 덧붙이는 글.>

 

 

 

 

 

 

 

 

 

 


 

 

 

 

 

 

 

 

 

 

 

 

 

 

 

 

 

 

 

 

 


 

 

 

저 멀리....

수행자의 길을 걷다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보살도 아프다> / {어리석음과 탐심 때문에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들었기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만 생사의 세계에 들어가며, 생사가 있는 곳에는 병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생이 병을 떠날 수 있다면 보살도 병에 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비유하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어, 그 아들이 병에 걸리게 되면 그 부모도 병들고, 만약 그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또한 낫게 될 것입니다. 보살도 마치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자기의 아이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낫는 것입니다. 또한 보살의 병은 대비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섯째가름(머나먼 수행 길)

(229)

 

 


 

 

 

"생각 자체도 한곳에 머물지 말라"

항시도 잊지않은 귀에 쟁쟁한 가르침

나의 은사 동암 대선사

흔히 출가자를 일러 걸사라고 한다. 걸사란 가진 것이 없어 빌어 생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비처럼 고고하게 살라는 뜻이 내포된 단어이다.

불교율문에 출가수행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명이 있다.

나의 은사인 동암선사는 부처님 계명인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했다. 평소 입고 다니는 옷은 승복, 바지, 저고리 3벌이 전부다.

식사 때 쓰는 발우(밥그릇)한 벌, 매고 다니는 걸망해서 3의 일체로 평생을 살다 1969년에 타계하셨다.

스님은 평북 희천군에서 태어나 17세에 북간도로 가 독립군에 가담, 일본군경과 항일투쟁했던 애국운동가였다.
기미독립운동에 참가한 불교대표 백용성 대선사의 가르침을 받아 출가수행자가 되었다.

그는 전국 유명사찰의 고승대덕을 심방하고 불교의 진수인 일대시교를 백학 명강백으로부터 전수받고 불교교리를 포교하다 마지막에는 불교학문까지 다 버리고 참선수행 납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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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다섯째가름(생각 자체도 머물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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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심산유곡 암자에 기거하며 참선을 배우러 오는 수행자에게 출가자는 항상 마음을 허공과 같이 비워 두어야 한다고 일러 주셨다.

모든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생각 자체도 한곳에 머물지 말라는 그분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는 일년내내 항상 내의없이 홋 중의적삼만 걸치고 다녔으며 잠잘 때도 입은 그대로 베개도 없이 방석하나만 배위에 올려놓고 자는 수행을 지속했다.

오늘에 사는 우리 수행자는 어떠한가?

출가 입문한지 33년이 되는 나는 소유하지 말라는 근본계명 중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마음을 끊기가 매우 힘이 든다.

입고다니는 승복만도 10여벌이 되고 취미삼아 모은 불교공예품만도 70여점이 된다.

또한 2천여권의 불교경전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외 잡다한 소유물을 지니고 있다.

생각 자체도 머물지 말라는 그 분의 가르침을 언제나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1985년 4월 25일 한국일보 게재-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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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생각 자체도 머물지마)

(231)

 

 


 

 

 

봄이 머루르는 곳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 피어오른 어느 봄의 햇살을 받으며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하늘을 나는 제비가 되어서라도 무변창해를 건너 강남에 가 살겠다고.

눈이 녹아 흐르는 산골에서 봄볕을 듬뿍 받고 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가지가지의 산새의 소리도 들으며 매화, 수선, 목련, 개나리들과 모란, 작약 그 외 이름 모를 꽃들에 이르기까지 싱그러움의 봄의 춘향을 맛 볼 수 있는 긴 봄이 머물러 있을 그런 곳으로 가 살겠다고 꿈을 꾼 것이다.

바위틈 사이사이로 흐르는 산골짝 실천에서 박 넝쿨 휘어 감긴 초가청 허청에서 앙상한 고목등걸 돌 옷 입은 바위에서 봄은 항상 나의 옷깃을 잡고 같이 살자고 부르고 있었다.


(232)

다섯째가름(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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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릴 적 그러한 꿈들이 산 좋고 물 좋은 명산의 고찰을 찾게 하였고 드디어는 세속의 세연까지 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에서 이름 있다는 명산을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강원도 오대산, 설악산, 치악산, 경기도에 용문산, 술악산, 도봉산, 충청도는 속리산, 계룡산, 전라도에는 지리산, 노령산, 경상도에는 재약산, 영축산, 금정산, 제주도에 한라산...  
이와 같이 많이도 찾아 다니며 때로는 감상에 젖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산울림을 찾아 외쳐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찾고자 하는 봄이 머물러 있는 곳은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춘의 나라 미국속의 LA는 꿈속에 그리는 꿈의 봄인가 하고 지난 75년 늦겨울 한국불교 해외주재 포교사로 임명을 받고 이곳에 부임한 것이다.
어릴 적 꿈속에서 그리던 강남이 바로 이곳이거니 하고 따사로운 햇볕이 온 대지를 비추고 이름 모를 새들은 노래를 하고 높은 산 저너머에서는 하늘거리는 실바람이 불어오고 앙상한 고목등걸 돌옷 입은 바위에서도 산토끼가 뛰어놀고 있겠지 하며 설래는 마음으로 기착한 것이다.

이곳 LA는 훈훈한 실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청명한 하늘, 온화한 기후, 항상 푸르러 있는 열대수와 상록수의 수림이 있어 좋고,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서울 남산에 맞먹는 그리피스팍에 우거진 수림 사이사이 뛰어넘는 다람쥐들을 볼 수 있어 좋고, 실개천 흐르는 물이 없어 물장구치지는 못하나 그 높은 꼭대기에 상수도관이 있어 다른 정경을 갖고 있다.


다섯째가름(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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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봄을 그리며 아쉬움과 바램 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또한 찾아 헤매지만 마음속으로부터 느끼지 못할 때 자연의 신비로움도 허사가 되어 버리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금력이 인간생활에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금력에 눈이 어두운 수전노의 생활이란 인간고초를 겪는 노예의 생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밀레의 만종이 제아무리 절세의 명화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두고 보면 점점 염증이 나는 것이며 하이네의 신곡이 제아무리 천하절창이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두고 들으면 점점 흥미가 줄어드는 것과 같이, 봄을 찾는 인간의 마음 역시.....

봄은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찾는 봄이어야 봄의 진미를 맛보지 않을까.

불을 經由한 종이는 종이가 아니요 재며, 끓는 물을 經由한 눈(雪)은 눈이 아니요 물이다.

우리는 모든 방면에 있어 어느 정도의 찾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이 실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시 보다 이상의 환경을 요구하며 그 보다 이상의 자유를 요구하며 또다시 그 이상의 행복을 추구하여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限없이 要求하는 것이 빼버릴 수 없는 人間心理의 先天的 本質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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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다섯째가름(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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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全의 完全을 위하여 수많은 不完全的 존재를 밟고 넘어 無窮無窮히 前進하고 있는 자가 人間이며 創造의 創造를 위하여 한없는 不創造的 存在를 밀치고 앞서, 끝없이 前進하고 있는 자가 또한 인간이다.

끝없이 망망한 우주라는 광야에서 오늘도 내일도 한없는 시간 속에서 아지랑이 같이 아리송한 꿈에 도취되어 가지고, 알 수 없는 소망의 꿈의 황금의 나라를 발견하고자 정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百年의 旅行者가 또한 인간이다.

달리 말하면 한없이 망망한 세계라는 大地에서 금년도 내년도 끝없는 시간 안에서 금실같이 찬란한 환상(幻想)에 사로잡혀 기약도 없는 따사로운 봄의 궁전을 만나고자 끝없는 탐정을 계속하는 것이 一世의 放浪客이 아닌가 한다.

오늘 이 따사로운 봄의 입김이 스며드는 촉촉이 내린 비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봄의 훈향을 다시 찾아 나설까 생각한다.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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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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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개혁의 역사를....

 

개혁의 의지를 짚어본다

93년 1, 2월은 미국과 한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되는 날이다.

냉전종식과 이념분쟁이 종지부를 찍고 세계질서는 국제사회에 있어서 경제실리와 무역보호주의 그리고 내적으로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범죄예방을 위해 근원을 근절시켜 나가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부르짖고 나섰다.

그러나 경제실리를 찾겠다고 하는 모든 나라는 복합적인 내외적 사정이 자국의 실리만을 주장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모든 경제구조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 상의 상관관계에서 공정한 분배와 상호 보호정책이 따르지 않으면 경제 구조적 차원에서 일방적인 파멸이 있을 뿐이다.

그간 세계는 강대국의 군사 경쟁과 군수산업을 통한 무기경쟁으로 엄청난 재정난을 겪어야만 되었고 급기야는 민생의 생활경제에 까지 크나큰 부담과 희생적 적자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인식한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로 대처하여야만 한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존재한다-
는 연기의 법칙을 바로 우리 자신이 인식하고 대처하여야할 오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236)

다섯째가름(변화 개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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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상의 상관관계에서 세계가 한 집이라고 본다면 자국의 실리가 상대국의 불이익이 온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이익추구가 갖는 상대적 개념으로서, 항상 투쟁과 갈등이라는 결과론을 생각하여야만 한다.

또한 이런 생각들은 마음으로부터 잠재우지 못한 상황에서는 평화와 공생 공영이라는 이상세계 건설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난관에 봉착되어 있다.

굳이 어떤 점을 꼬집지 않더라도 모두들 한결같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렇다. 무엇인가 달라져야만 한다. 변해야 하고 개혁해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하셨다. 제행이란 온갖 존재를 일컫는 말이며 무상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곧 이 세상 온갖 존재는 변화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온갖 사물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말이다.

이 변화의 과정을 세분하면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네가지 모습이다.

이를 사상(四相)이라고 하는데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하여 생겨나서 잠시 머물다가 인연이 흩어져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다섯째가름(변화 개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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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고 또 바라지만 온갖 존재의 속성이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변화의 전개 방향에 있다. 그 변화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전개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로 흘러가느냐 하는 이 점은 우리의 생활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른 의지의 개혁이 필요하게 된다. 어차피 모든 현상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를 우리에게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선 반드시 인간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 변화에 작용하는 인간의 의지가 바로 개혁의 의지이다. 그러면 어떤 의식을 어떻게 개혁하고 어떤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첫째는 부정적 소극적 의식을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의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변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부정적이고 피동적인 의식을 버리고, 변화를 수용하고 피동적인 의식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를 수용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인의식으로 의식을 개혁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독재정치 체제나 군사통치 제제 속에서 타율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에서가 아니고 남의 지시에 순종만 하는 생활을 해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를 심하게 표현하자면 노예근성을 벗지 못한 탓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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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변화 개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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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편견에서 중도로서의 의식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겠다. 지역간의 갈등이나 계층간의 갈등, 빈부간의 갈등, 이념간의 갈등, 이 모두가 자기편에 서서 편견과 아집으로 자기몫을 차지하려는 의식구조의 전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고정된 편견의식을 깨지 않고는 개혁과 변화라는 현실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

<93년 김도안>

 

 


다섯째가름(변화 개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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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향한 종교인의 자세"

 

성아그네스 성당 창설 31주년 기념 신앙강연

도안스님 / <2000년 1월 30일>

성아그네스 성당 창설 제31주년을 맞아 천주교계 대희년 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한 신앙강연회에 부족한 이 사람을 연사로 초청해 주신 김정웅 담임신부님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본 대회 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먼저 오늘의 주제가 주는 내용이
“2000년대를 향한 종교인의 자세”로 정해져 있어, 1000년의 광대한 시간을 설계하고 1시간 남짓 요약하여 말씀드리려하니,
고충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의 1초, 10분, 1시간이 앞으로 다가올 천년역사의 가장 기초가 되므로 본 연사는 미력을 다하여 오늘의 한 시간에 충실하려 합니다.

현제 세계에는 11대 종교가 전 인구의 58.4%가 종교인구로 되어있고 종교별 교세의 비율을 살펴볼 때는 이슬람교 22.8%, 천주교 22.5%, 힌두교 18.5%, 개신교 13.2%, 불교 9.9%, 유교 6.6%, 기타 종교 4.0%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펴볼 때 그 교세나 종교의 문화권은 6대 종교 즉, 이슬람교, 천주교, 힌두교, 개신교, 불교, 유교가 세계 정신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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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2000년대 종교인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