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46년 만에 처음 만난 양측은 행사의 명칭 표기에 대한 이견으로 8시간 마라톤 회의를 했다.
북측은 ‘조국통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남측에서 ‘기원법회’만으로 하자는 양측의 팽팽한 주장은 결국 ‘조국통일기원 불교도 합동법회’로 확정하고, 미리 준비해서 부착한 기존
현수막을 뗀 다음, 당일 오후 5시반을 넘기고 나서 창호지에 붓글씨를 써 행사 펼침막으로 붙이는 일까지 벌어졌으며, 이는 불교교류 역사에서의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그날 합동법회는 1991년 10월 29일 오후 6시 30분 부터 관음사 법당에서 열렸다.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독, 경과보고, 대표단 참관단 소개(북측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
남측
이홍파 종단협 사무총장, 해외 신법타 한불협 부회장), 환영사(김도안 한불협 회장), 개회인사(남측 서의현 종단협 회장, 북측 박태호 조불련 위원장), 선물-전달, 조국평화통일 발원문 봉독(환영위원장), 사홍서원, 폐식의 순으로 마쳤다.
양측 대표단은 장시간 이동의 피로감과 첫 만남의 어색함으로 거의 대화 없이 헤어졌지만, 그날 관음사 육화당에서 박태호 조불련 위원장과 남측의 송월주 대표가 참여한 언론사 ‘특별인터뷰’에서는
박 위원장에게 북측 불교의 현황 등에 관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지면서 북한 불교의 이모저모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미국방문 3일째인 10월 30일 북측 숙소인 LA 월셔타워 호텔과 관음사(10월 29일)에서 열린 ‘남북불교도 연석회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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