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통일을 위한 서사시 - 5
권두언(차종환 박사) -8
추천사1(민병용) - 9
추천사2(양윤성) - 10
회고사(법타스님) - 12
발간사(한미불교봉사회) - 14
첫째 가름 :
사진으로 보는 만남의 자리
관련활동 모습 - 21 ~ 28
둘째 가름 :
남북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불교 교류현장
1991년 미국 LA 합동법회 - 31
남북교류 어떻게 진행 되었나(김형근) -45
통일로 가는 길 - 48 / 환영사 - 49
기조연설> 남:서의현 - 51 / 북:박태호 - 56
관련 보도기사 - 63 / 외지보도 도안스님 - 65
광복 55주년기념 평화통일기원법회 법어 - 69
셋째 가름 :
남북 분단 평화 정착 학술 포럼(김도안)
불교인의 한민족 화해 협력문제(97.10.15) - 77
남북 지도자가 무엇을 해야하나(97.11.16) - 94
한반도 평화구축 모색(비엔나 98.8.5~7)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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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언제 풀리려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최근(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역사적 첫 만남이 이어지면서 평화의 물꼬가 잡히는가 했지만, 더욱 북핵문제 해결의 근본을 찾지 못하고 갈등만 증폭하고 있어 심히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대화가 이루어져야 상방의 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인데도, 워낙 첨예한 핵에 대한 숙제로 갈라지고 있어, 대화 접근도 난항을 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찌 하겠습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밖에, 어차피 세상은 변화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다행이 오늘 그간에 스님께서 남기신 통일염원의 행사 기록물과 논고들이 모아져 단권의 책으로 나오게 됨에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이 책은 참으로 통일운동권의 비교측량을 도우면서 내일의 통일을 보게할 참고지침이 될 것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간 자료를 모아 이를 단권으로 발행을 감당해준 [한미불교봉사회]에 대하여 노고를 치하합니다.
더불어 많은 애독이 이루어지어, 통일운동에 큰 길잡이가 되어 가길 바랍니다.
2022년 8월, 법타스님(은해사 회주) 은해사: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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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미국 LA 관음사 김도안 주지와 한불협 신법타 부회장은 그해 4월 21일~5월 10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고, 묘향산 보현사에서 처음으로 유점사 종을 33번 타종하는 통일의식을 가졌다.
또
조불련의 청사로 사용하던 평양 용화사 등에서 조불련 박태호 위원장, 홍화두 고문 등과 6차례 회의를 하고, 행사 주최는 한불협으로 주관은 미주평불협이 맡기로 조정하게 된다.
이때 방북을 통해 조불련이 미국 LA 간담회에 공식 참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라고 했다.
한편, 조불련의 미국행이 확정 된 가운데에서 미국 하와이 대원사의 대원 스님은 1991년 8월 3일~13일까지 평양에 가서 그 사실을 또 확인하였다. 8월 17일 조불련으로부터 북측 대표단의 명단과 이력이 한불협으로 제공된 다음, 8월 25일에는 미국의 한불협 회장 김도안, 부회장 신법타, 기대원이 남측으로 들어와
종단협에
공식 보고하면서 LA 합동법회가 협의, 조정하게 됐다.
그로부터 10월 15일을 기해 합동법회는 한국의 종단협이 주최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처럼 추진된 미국 LA 합동법회는 1991년 9월 남북이 유엔(UN)에 동시 가입을 경축하는 배경에서 북측의 국제관계 개선에 따른 별도 조치의 성격을 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LA 합동법회는 독자적인 교류 창구의 미비와 국내법적으로 한계를 보여준 미완의 만남, 미완성의 남북불교 교류였다.
/ 이지범-북한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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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름(91년, 남북-LA합동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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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LA에서 출발하여 뉴욕 전등사에서 환영법회를 가졌으며, 11월 5일 뉴욕 원각사 참배, 11월 6일~7일 맨해튼 자유의 여신상 관광과 UN본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참관을 거쳐, 11월 8일 필라델피아 원각사에서 환영법회를 개최하고, 11월 9일 워싱턴DC 법주사 환영법회를 마지막 일정으로 마쳤다. 조불련 대표단은 그해 11월 10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귀국했다.
LA 합동법회는 분단 이후, 남북한 및 해외동포 불교지도자 70여 명이 처음으로 만난 역사적 사건이다.
이 법회에는 남측 16개 종단대표가 참석하고, 북측 조불련 대표단 4명, 일본의 조총련계 조불협 대표단 3명과 민단계 한불련 대표단 4명, 미국의 미주평불협과 한불협 등의 주요인사들이
참석하였으며,
남측의 불교신문에서 단독취재를 맡았다. 하지만 이때의 취재 관련 자료는 1994년과 1998년 연이은 조계종 사태로 말미암아 대부분이 훼손되고 소실되었다.
1991년 10월 29일 오후 5시, LA 관음사 법당에서 약 2시간 개최한 LA 합동법회는 당일 오전 9시부터 식순과 발언 내용 그리고 호칭 사항과 좌석 배치, 담당자 등에 관한 사전회의를 장시간
동안
조율해서 열렸다.
그날 공동법회는 양측의 최고 수장인 종단협의 서의현 회장과 조불련의 학림당 박태호 위원장이 나란히 서서 합장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냉전의 기류가 흘렀다. 이어 10월 30일 같은
장소에서 ‘한민족불교지도자연석회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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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름(91년, 남북-LA합동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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