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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86년부터 95년까지 미국불교협회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몇차례 불교사원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한국불교가 미국에 뿌리내리는데 앞장섰다.

타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식량돕기에 나서는 등 각종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하는 불교전파에 힘을 기울였고, 종교평화협회를 창설하여 미주지역 타종교의 지대한 동참세력과 함께 역량을 키워 나갈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지난 2002년 12월 대장암 초기 수술 끝에 재활에 성공했던 스님은 작년(2005년)에 북한 사찰순례를 마친 후, 3월경 암종양이 간으로 전이되어, 식이요법 치료를 해오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듯 하였으나, 끝내 간에 종양이 커져 관음사 주지 방에서 가료를 해오던 중, 결국 8월 28일 오후 6시 6분 굳사마리탄 병원에서 임종하셨다.

그간 간병 해온 친동생 김안수 포교사는 "스님은 8월 28일 오후 5시 30분 의식이 분명한 가운데 서울의 도문스님으로부터 전화 목소리로 열반송 법문을 들으면서, 관음사 임직 재가불자 6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6시 6분 임종을 보이셨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도안스님은 관음사 재단은 재가신도 중심으로 계속 유지발전을 기약하셨고, 승단은 오직 조계종단의 종지와 승풍을 이어 받는 미국에서 반듯한 조계종 가람의 터전이 세워질 수 있도록, 언제나 재가신도는 승단의 외호세력으로 성장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신문 박애영 종교담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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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큰스님 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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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조문객 줄이어

도안스님 장례식 - 남가주 사원연합회장으로

도안스님의 장례식이 남가주사원연합회장으로 치뤄진다. 남가주사원연합회(회장 현철스님) 회원 및 관음사 신도회 임원진 등 20여명은 29일 관음사 대강당에서 임시 회의를 열고 입관식은 오는 1일 오후 7시 한국장의사에서, 영결식은 2일 오전 10시 관음사에서 진행키로 했다. 또 장례위원장에는 남가주사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반야사 주지 현철스님을, 집행위원장은 이철우 관음사 전 신도회 회장을 각각 선정했다.
현철스님은 "정신적인 기둥역할을 하신 도안스님 입적은 LA한인 불교계의 커다란 손실"이며 "미주 한인사회의 불교계 발전에 남은 이들의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관음사를 방문한 양현승 목사(미주종교평화협의회)도 "몇일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만세'까지 외치셨다"며 착찹한 표정을 지었다. 양 목사는 "종교를 떠나 도안스님은 * 한인사회와 민족을 위해 봉사헌신하신 분"이라며, "그분의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종교계가 한마음으로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관음사는 29일 오전부터 도안스님의 입적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신도들과 조문객 행렬이 이어졌다. 김목응(72) 신도회장은 "지난 30여년간 공양주 없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며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준 진짜스님이었다"며, "좀더 남아 일하실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다섯째가름(큰스님 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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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11월에 도안스님이 미국으로 들어가시고 난뒤, 2년쯤 지나서 비몽사몽간에 스님에 대한 불길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산중에 시커먼 검정 개울물에 스님께서 몸이 반쯤 빠져서 나오실려고 애를 쓰는 꿈을 꾸다가 잠을 깼는데 너무 예감이 안좋아 김법사께 이야기를 하고, 미국에 전화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쓸데없는 꿈에 매달리지 말라고 야단치드라구요.

꿈을 꾸고 난 뒤 이삼일이 지나서 미국서 한국(77년 6월경)에 다녀간 청년불자 녹야원 학생회 출신 연실 아가씨를 통해 전해듣게 된 소식은 77년 3월 고속도로에서 스님께서 기름탱크 츄렐라에 의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해 응급조치 후, 퇴원하셨지만 매우 극심한 교통사고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 통증에 불편을 겪으면서 살아 가신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도안스님은 어린시절 어머님 곁을 떠나질 않고 따라 다니셨는데, 어머님께서 부엌에서 풀을 쑤어 퍼 옮기던 중 일어서려다가 뜨거운 죽그릇이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아이(스님) 머리에 쏟아져서, 화상을 입고 그 뒤로 머리에 흉터가 남고 머리카락이 나질 않아 평생 모자를 쓰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님을 졸졸 따르던 어린시절 스님! 어머님은 그 도안스님에 대한 출산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출산할 때 아이가 거꾸로(발 다리부터) 나왔는데, 두손은 합장하고 똑바로 꼿꼿하게 서서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15세에 출가하신 스님은  24세 때는 서울 적조암에 기거하게 되었고, 그 때 서라벌예대(문예창작과)를 다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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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나 혼자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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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 여학생이 혼자 너무나 스님을 좋아하고 사모하며 절까지 매일 찾아오다싶이 하면서 결혼을 하자고 매달렸다. 스님께서는 냉정하게 뿌리치셨고 단한번 눈길마저 주지않아서 결국 그 여학생은 결국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마지막 그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49재를 정성껏 봉행해 주었다고 어머님은 내게 말씀해 주신 바 있다.  

그리고, 스님께서 법회때 알려준, 직접 겪으신 체험 실화 한편이 너무나 내겐 잊지못할 감동여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스님께서 직지사에 주석하실 때인데, 어느 봄날 스님방 문 앞에 새 한 마리가 신음소리를 내며 울부짖길래 나와보니, 새 한마리가 다리를 다쳐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새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붕대로 약을 발라줬더니 마침내 나아서 날라 갔는데, 그 다음 봄에 새 한마리가 날라와 스님이 방문 앞에 서있는데 그 새가 막 소리를 내길래 그 새를 보는 순간 씨 하나를 스님 앞에 떨어트려 살펴보았더니, 보리자 염주씨였드랍니다. 그래서 심었더니 많은 보리자 열매가 달려서 그것으로 염주를 여러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스님께서 법회 때 들려주신 이야기 입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로는 제가 꿈에 본 신기한 이야기 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장례를 치룬 일주일 쯤 지난 후 일로,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스님을 뵈었는데 옛날 살아 계실때 그 얼굴모습이 아닌, 꿈속에서도 사바세계에 사는 분은 아니구나 담박에 알아차렸죠. 얼굴모습은 눈화장만 한듯하고, 아주 화려한 거룩한 비단 옷 황금벨트에 맨앞에서 주장자를 짚으셨는데 스님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스


다섯째가름(나 혼자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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