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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포교 헌신... 북한지원 앞장

미주불교 산 증인··방북 15차례, 국수공장 설립 등

28일 입적한 도안 스님은 LA한인사회에 불교를 뿌리내린 개척자였다. 특히 불교계를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다른 종교계와 잇는 다리역할에 앞장서 왔다.

그가 조실로 주석했던 관음사는 올해 개원 32주년으로 한인들에게 불교문화를 제도하는 사찰로 우뚝 섰다.

지난 75년 LA에 온 후 선방 및 도서관을 세우고 동산불교대학(현 로메리카 불교대학)을 설립해 젊은 불교학도를 양성하는데 주력한 고인은 한미불교봉사회를 만들어 노인들을 위한 영어교육과 사회보장 세미나 등 저소득층 이민자를 지원하는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열어 한국불교가 이민 생활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신도들에게 항상 공동체의식을 갖고 살아갈 것을 강조했던 고인은 그의 생활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창기 사찰 구입 기금이 부족하자 작업복을 갈아입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밤에는 청소를 다니며 사찰구입비 마련에 동참했던 일화는 지금도 신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고인의 공동체의식은 이뿐만 아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를 창설해 이승만 전 미국장로교 총회장과 박창덕 신부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으며 종교간의 화합 무드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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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큰스님 가시는 길....)

"큰스님 가시는 길 마지막 뵈옵니다"

 

도안스님 입적소식 LA 한인신문 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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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관음사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영정앞에서 애도하고 있다. (중앙일보 임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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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커뮤니티 활동 앞장 '불교계 큰별'

불교계의 큰별인 관음사주지 홍엽당 도안스님이 지난  8월 28일 6시에 세수 70세(법랍54세)로 입적했다. 9월 2일 오전 10시 영결식이 거행된 관음사 강당에는 80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모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52년 경남 동래 범어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71년부터 5년동안 조계종 총무원 재정국장 및 사회국장을 맡다 75년에 도미, LA관음사(74년 3월 개원)의 주지로 부임해 왔다.


다섯째가름(큰스님 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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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님을 보는 순간...꿈속에서라도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합장하고 인사를 올렸는데 스님께서는 말씀은 안하시고 약간 미소만 짓고 서로 바라만 보고 있다가 꿈을 깬 기억입니다.

끝으로 이자리를 빌어 스님께서 투병시 스님의 회복을 위해서 많은 신심과 불심으로 물심양면으로 노고에 임하셨던 분들, 송학당 원장 탕재치료, 어느 비구니스님의 간병, 혜광법사 한의치료 및 총력을 기우려 헌신해주신 신도여러분께 충심으로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저와 김법사님, 사중 스님들께서 필사적으로 간병을 지켰건만 사바의 인연이 다 되셨는지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마지막 몇몇 신도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보이시며 입적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간 연화방에서 스님의 불사에 적은 보시나마 보태시라고 틈틈히 제게 건내주신 헌납금을 차곡차곡 모아 오던 중에 스님 입적으로 달리 용처가 없었던 바, 이를 앞으로 스님 출판물 간행이 있을 때 사용하려고 기다려 왔습니다. 그간 제가 모금해서 간직해 온 것, 합계 결산으로, 헌납명단을 아래에 밝히며 불사금 회향처로 삼습니다.   
2005년- 김인선, 원명사 신도(익명), 신동환, 송운, 유철호, 이희정, 김형근, 문은희, 임보살(신북경)
2006년- 전계향, 변서이, 이민아, (익명), 김희순, 서기영-서태희(부부), 정연규, 김영중, 이계식, 김화자, 길민호, 길성호, 길미경, 최문수행

---총 헌납 모금액 : $1,187.00 ---/ 화주자(한원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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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가름(나 혼자만의 기억)

도안스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나 혼자만의 기억

----------스님을 그린다.(한원각행)---------

나는, 어린이 불교운동과 찬불가 보급운동에 앞장서셨던 운문 스님과의 인연이 나의 친정 부모님들로부터 맺어온 사이였다.   
그래서 내 나이 24살때 남산 KBS방송국에 다니면서 자주 운문스님의 활동을 곁에서 돕고 있었을 무렵, 1968년 4.8봉축기념 어린이예술제를 진명여고 강당에서 치루었는데 그때 예술제 사회를 보게 되어, 녹야어린이회를 이끌고 오신 도안스님을 처음 알게 된 인연이 된다.

그 뒤 1969년 1월 불교어린이회와 중고등학생회를 통합한 청소년교화연합회를 선학원에서 당시 종단 장로원장 대의 큰스님을 모시고 발족하게 되었는데, 대의 큰스님 방에서 도안스님 친동생 김안수 거사가 청소년교화연 창설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 나도 운문스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어 그때에 김안수 거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또한 대의스님께서 설계하시는 선학원 보살계 대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보살수계 불명도 그때 함께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이 결국 운문스님 중매로 1971년 4월, 김안수 법사와  혼인하게 되었고, 도안스님이 김법사와의 속가 인연으로 나에겐 시숙님이 된 것이다.   
그래서 도안스님의 생모이시며, 나에겐 시어머님이 되시는 강대선화 보살님에게서 들은 스님에 대한 이야기 등, 그 외 늘 기억속에 담고 잊지 않고 있는 이야기를 간추리며, 지난 세월의 스님의 덕을 잊지 못해 이를 함께 그리고자 한다.


다섯째가름(나 혼자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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