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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천도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에 있어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하여 불교가 하여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 할 때 불교적 사상을 무장으로 하여 국민화합을 시켜야 한다는 착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종교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왔습니다.

세계는 경제교류와 문화교류 종교교류가 함께 열려있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야말로 불교는 각 종교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노력하여야 하며 또한 그 노력이 통일에 기반 조성을 위해서도 중간에 서서 중재와 역할을 불교인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남한 종교 단체가 서로 화합을 하지 못하고 서로 협력을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사회에 종교를 전파하겠다는 것입니까?

어떻게 한 종단 안에 있으면서도 화합을 하지 못하면서 타 종단과 화합이 가능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들 종교인은 한번쯤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남북한 정부간 합의 사항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가?

현재 남북한 당국자들은 7.4공동성명 발효를 필두로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를 채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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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름(한민족의 화해 협력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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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남북화해, 제2장 남북불가침, 제3장 남북 교류협력, 제4장 수정 및 발효, 남북 사이에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제1장 남북화해 이행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도 제1장 체제인정 존중, 제2장 내부문제 불간섭, 제3장 비방중상 중지, 제4장 파괴전복행위 금지, 제5장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의 전환, 제6장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제7장 이행기구 제28조로 부속합의서를 쌍방간 합의 서명했습니다.

또한 부속합의 조항으로 무력 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방지, 불가침 경계선 및 구역, 군사 직통전화의 설치 운영, 협의 이행기구, 수정발효, 기타 남북공동 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군사 공동 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 교류 협력 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을 쌍방간 서명 선언을 한바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남북한 공동합의서는 남북한 최고 책임자들이 실천 이행하여야 할 덕목들입니다.

아직까지 남북한 당국자들이 실천하지 못한 그 원인을 규명하고 합의문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양 당국자가 있다면 서로 책임을 받아야만 합니다.

○○○○○○

우리 종교인은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실천 못한 당국자가 있다면 실천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또한 우리 종교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종교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셋째가름(한민족의 화해 협력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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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할 생각을 않고, 조건부 지원이나 국제 여론에 의해 성의표시를 하지는 않았는지, 한편 받는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현재 상황을 왜 홍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이상의 내용들은 불교 육화경을 통해 본 남북한 화해 협력이 잘되지 않고 있는 점을 조명한 것이다.

2. 원효의 화쟁이론

우리 민족이 낳은 신라시대 대 사상가 원효 스님(7세기경 617~686년)께서는 분쟁을 종식시키는 화쟁론(和諍論)을 제창하였다. 원효가 생활하였던 삼국사기는 불교의 전성기임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삼국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지닌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불설에 대한 이해에 대한 논의 분쟁도 허다하였고,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통일철학을 요구하였고 원효는 백가의 이론을 화해시켜 화쟁이라는 지고한 이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원효는 수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2권을 남겼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당나라와 일본에 유포되었고, 또한 당나라에 왔던 진나문도(陳那門徒)에 의하여 천축(天竺)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서동화상 비문에서는 십문화쟁론을 종합하여 간략히 기술한 바 있다.
십문화쟁론은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원음(圓音)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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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름(한반도 평화구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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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하였으나 부처가 열반한 후에는 부질없는 공론(空論)이 구름처럼 분분하였다. 혹자는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그르다 하였고, 혹자는 자신의 설은 그럴 듯 하다 하고 타인의 설은 다 그르다 비난하게 되어 각기 다른 이론(異論)이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강물과도 같이 지류를 이루었다.  

원효는 이를 융통시켜 서술하여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이라 하였다. 그 때 이를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를 가리켜 백가지 이론의 극단을 중지시키고 가장 일대의 공론을 정립시킨 대 논사라고 크게 치켜세웠다.

아래에 화쟁사상의 전형적인 몇 가지 예를 소개 드리고자 한다. 원효는 보살계본 지범요기(菩薩戒本 持犯要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들은 바 좁은 견해만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좋다하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아서,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좋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 자라고 말한다.

또한 원효는 세상의 이치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르기만 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곧 비일비이(非一非二)인 것이다. 그는 열반경 종요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가 아니기에 능히 모든 방면이 다 합당하고 다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면이 하나로 통한다.


셋째가름(한반도 평화구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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