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NS News & Buddhist Forum


관세음보살의 가피와 위신력

(6)

사자성어에 ‘발고여락’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고통에서 빼내어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죠. 고통받는 중생에게 손길을 펼쳐 주는 것, 그것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많은 손이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오관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즈믄(천)손 즈믄(천)눈을 가지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눈이 천개인데 우리 아이는 한 개도 없습니다. 한 개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눈 하나만 주세요.”
이 노래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고 싶은 모정이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한이 담겨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안 들어주면 재미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다행히 관세음보살님은 한을 남기지 않고 아이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청정관은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의 물든 상태, 오염된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지혜관은 관세음보살이 지혜를 통해서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상태를 벗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미혹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파혹이라고 합니다. 미혹함을 깨뜨린다는 말이죠. 사람들은 미혹하니까 속게 됩니다.
속인 사람이 이러저러해서 속였다고 신문에 내고 방송에 내는데 해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속는 사람이 나옵니다.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가 부족해서 순간적으로 속는 거죠.
흔히 나는 부모를 위해서 잘 해 드린 것도 없으면서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평생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들은 그 순간 속게 됩니다. 어느 자식이 제 볼일 내팽개치고 부모만 모시겠습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안 되게끔 돼 있어요. 다 제 볼일이 있고 제 자식이 있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아무 고통없이 모시겠다고 하면 속아 버립니다.
지혜가 환하게 밝으면 미혹하지 않습니다. 지혜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비관은 고통에서 건져 주는 능력입니다. 자관은 여락이라고 해서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사자성어에 ‘발고여락’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고통에서 빼내어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죠. 고통받는 중생에게 손길을 펼쳐 주는 것, 그것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많은 손이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오관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우리 나라 관음신앙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영험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자비관음의 모습은 분황사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실명한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따라 분황사에 와서 노래로 기도를 합니다. 신라 향가 대부분이 관세음보살님께 노래한 내용으로 전달되고 있듯이 이 노래도 향가에서 중요한 대목 중의 하나입니다.
“즈믄(천)손 즈믄(천)눈을 가지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눈이 천개인데 우리 아이는 한 개도 없습니다. 한 개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눈 하나만 주세요.”
이 노래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고 싶은 모정이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한(恨)이 담겨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을 천개나 갖고 있으면서 우리 아이에게 한 개도 안 주면 안 된다고 하는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는 셈입니다. 아주 간절하게 호소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안 들어주면 재미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정(情)과 한(恨)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다행히 관세음보살님은 한을 남기지 않고 아이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정과 한의 감정은 ‘왕생가’라는 노래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께 극락세계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동방에 있다고 전해 주시오. 만약 나를 버려 두신다면 당신의 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처럼 달님에게 간절하게 호소를 하면서도 동시에 한까지 묻어 보내고 있는 셈이죠.

다음은 중생사의 관세음보살에 얽힌 일화를 소개합니다.
먼저 중생사에 관세음보살을 조성하게 된 배경을 들려 드리면, 중국 당나라 황실에서 우리 나라의 유명한 화가를 초청합니다.
중국의 황제가 총애하는 여인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화가는 인물화를 그리지요. 그런데 그만 무심결에 붓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것도 빨간 물감이 묻은 붓을 여인의 배꼽 밑에 떨어뜨린 것이죠. 아무리 지우려 해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어요. 화가는 할 수 없이 황제에게 여인의 배꼽 밑에 빨간 사마귀가 붙은 미인도를 올립니다. 결국 도를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바꾼다는 것임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SNS News & Buddhist Forum

(3)


관세음보살의 가피와 위신력

(3)

수 많은 재앙들을 염피관음력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게송은 들려줍니다.

상념, 즉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써 물리친다는 거죠. 관음력, 즉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나에게 어떻게 오느냐? 바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생각할 때 온다는 거예요. 그게 생각 념자예요.
관세음보살에게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고 우리는 그 관음력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밖의 재앙과 안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음신앙도 그런 원리예요. 관세음보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이 있고 자비가 있고 원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두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죠. 내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염피관음력, 즉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세 가지 독성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한 번 중독되면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탐독이 가장 심각합니다.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을 보면 그 안에는 많은 시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선사의 설법’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용운 스님은 시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다. 그 선사는 말했다. 애욕을 멀리 여의면 자유와 기쁨이 있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사실 애욕을 멀리 여의게 되면 사랑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기쁨과 평화로운 마음이 찾아드는 게 사실입니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애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서 출발하지요. 계속해서 시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도 어리석었습니다. 사랑의 줄을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 선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즉, 애욕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대안이니까 제시를 하나마나라는 거죠.
애정에 대한 집착을 여읠 때는 평화와 자유와 기쁨이 찾아오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애정에 집착을 여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줄을 그 선사는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용운 스님은 불교의 세계도 알고 중생의 세계도 알아서 불교의 방향을 제시하고 중생의 아픔도 함께 달래주는 그런 시를 쓰고 있는 셈이죠. 불교 사상과 문학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기에 고전이고 명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慈悲)와 위신력(威神力)은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방편입니다.
이것이 관음신앙의 근본입니다. 몸이 아프다든지 하는 것은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도 함께 물리치는 것이 관음신앙입니다. 게송 부분에는 재앙의 여러 가지 사례, 즉 재앙의 항목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 많은 재앙들을 어떻게 물리치느냐 바로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게송은 들려줍니다.
상념, 즉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써 물리친다는 거죠. 관음력, 즉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나에게 어떻게 오느냐? 바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생각할 때 온다는 거예요. 그게 생각 념자(念)예요.
관세음보살에게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고 우리는 그 관음력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밖의 재앙과 안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관음신앙의 영험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어 음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양가는 별로 없지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기호식품과 영양가가 높은 영양식이 있습니다. 기호식품은 몸에 이롭지는 않지만 기분을 좋게 만들고, 영양식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기운을 돋게 하는 음식입니다. 젊을 때는 기호식을 좋아하게 되고 나이들면 영양식을 하게 됩니다. 입에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이라도 그냥 놔두면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문제는 먹어야 된다 이겁니다.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관음신앙도 그런 원리예요.
관세음보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이 있고 자비가 있고 원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두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죠. 내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염피관음력, 즉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