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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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월) 12 02, 2019 10:51 am

붓다께서 열반에 들어 살아계신다고요?

붓다께서 열반이라는 어떤 초월계에 머물며 중생들의 고뇌를 들어주고 음식을 올리면 먹고 마시고 복덕을 내려주신다고요?
무아가 진아이고 대아라고요?
그것은 대승의 이론입니다.(아마도 힌두교에서 들어온...)
대승은 붓다께서 항상 이 세상 어딘가에 머물며 중생을 보살펴주기를 원하거든요.

남방에서 그렇게 말하면 그냥 웃고 말지요?
그럼 붓다는 어디에 계시냐고요?
남방에서 얘기하는 열반은 ‘더 이상 어떤 태어남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든지 그 존재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해탈입니다.

그럼 어떻게 붓다에게 존경심을 표하냐고요?
당신의 방에 붓다의 사진 한 장 걸어놓고 볼 때마다 ‘나모 붓다(붓다에게 귀의합니다)’라고 소리치십시오.
이것이 제가 붓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입니다.
불상에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고 소원을 빌어야만 붓다를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에 붓다의 사진 하나만 걸려있어도 늘 정신이 새로워집니다.
순간순간 붓다께서 당신의 귀에 이렇게 속삭일 겁니다.
“티브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마라.”
“번뇌가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파악하라.”
붓다의 말씀이 들리면 저절로 자신에 대한 점검이 일어날 것입니다.
붓다의 사진을 보면서 붓다께서 가르치신 위대한 진리, 사성제를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고집멸도!
고: 삶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다.
집: 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욕망과 집착의 늪이다.
멸: 그 늪에서 벗어나면 평화가 일어난다.
도; 이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지로 가는 길이다.

이렇게 당신은 붓다의 사진을 보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깊이 사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붓다에 대한 공경심의 표현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한, 붓다는 살아있습니다.”
불상에 음식을 올리고 목탁치고 염불하면서 ‘음식을 올리오니 어서 드십시오!’라고 부질없는 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붓다께서 당신이 올린 음식을 드시러 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붓다께서 소멸하셨냐고요?
상견과 단견은 둘 다 사견입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거나, 깨달은 사람은 초월계에 들어 영원히 존재한다거나, 생사는 영원히 반복되며 결코 끝이 없다거나, 참나(진아)를 깨달으면 온 우주(대아)와 합일하여 영원히 존재한다(梵我一如)거나....
이 모든 견해가 상견입니다.
죽으면 소멸한다거나, 공덕을 지었든 악업을 지었든 인과가 없으며 죽으면 끝이라거나....
이런 견해가 단견입니다.
상견도 아니고 단견도 아니면 어쩌란 말이냐고요?

그럼 무얼 믿어야 하냐고요?
‘무아’를 믿어야 합니다.
관습적으로 윤회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윤회하는 실체는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인과 결과의 흐름일 뿐입니다.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내는 업의 에너지가 흐를 뿐입니다.
이 허깨비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당신은 업의 흐름을 끊어내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꼭 열반을 성취하고 싶지 않더라도 정견을 믿어야 좋은 과보를 받습니다.
불교의 교리가 이교도의 교리와 혼합되어 뒤죽박죽 짬뽕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 바른 견해를 갖추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의 눈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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