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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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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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23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05 11, 2020 11:59 pm

유마경 강의 23
부사의해탈품(不思議脫品) 네번째 이야기
<대가섭의 찬탄>
경(經) 불가사의 해탈에 대한 유마의 설법이 끝나자 열심히 경청하고 있던 대가섭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사리불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리불이여, 눈먼 장님에게 아무리 무엇인가를 보여주어도 그는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세하게 불가사의 해탈의 도리를 설명해 주어도 정작 성문이나 독각들은 그것에 대해 눈이 뜨이지를 않습니다.
아니 불가사의하다는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설(說) 유마경 강의 22편에서 제가 또 일부 벗님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말씀을 드린듯합니다. ㅎㅎ 평상시 나오는 공감숫자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네요.

아마도 선종의 견성을 양자물리학자의 수준으로 낮추어 말해서 그런듯합니다.

견성한 선사와 양자물리학자의 차이는 산해진미를 먹는 사람과 산해진미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는 사람이라고 비교해야할까요?
산해진미를 실제 먹어본사람은 그 맛을 그냥 맛있다, 천상의 맛이다,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이러한 감성적인 표현을 위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산해진미를 먹지는 못하고 찬사만하는 사람은 산해진미에는 어떤 식재료가 들어가 있고 그 식재료를 어떠한 대단한 과정으로 조리했으며, 어떠한 색깔의 어떠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둥... 온갖 잡다한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산해진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이해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유식학의 해설에서도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거의 대부분의 유식학 강의를 하는 법사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유식학의 구성요건인 여러 개념들에 대한 한자 표현의 설명과 그 분석에 중심을 둔 강의가 거의 태반입니다.
제 유식학 강의처럼 감성적인 접근으로 유식학의 존재 목적과 방향성을 설한 유식학 강의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양자물리학자는 이성적인 학문으로서 견성의 결과물을 바라 볼뿐이나 견성자는 감성으로서 유식(唯識)의 실체를 접근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성으로서 유식의 실체를 접촉한 견성자들이 그 유식의 실체의 지향점에 대한 깊은 통찰로 보살행을 해야하건만 어찌 된게 선종의 많은 선사들은 보살행과는 거리가 먼 괴각과 세력 확대에만 신경을 쓰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들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경문에서 대가섭이 눈먼 장님이라고 비난했던 성문과 연각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뜻합니다.
후대의, 현재의 우리에게는 선대의 많은 법사들이 가섭에게 비난 받은 성문과 연각을 일반 대중이라 해석했으나 만약 일반 대중이었다면 대가섭이 굳이 눈먼장님 같은 성문 연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축생, 아수라, 인비인(人非人)… 수많은 표현이 있었음에도 어째서 대중에게 스승으로 섬김을 받는 성문,연각이란 표현을 썼겠습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견성했으나 불이(不二)를 마음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파충류선사들이 상당히 있었나봅니다.




경(經) 우리들과 같이 깨달음의 바탕이 이미 훼손되어 마치 말라 비틀어지고 썩어빠진 씨앗과 같이 타락한 사람들, 대상을 따를 그릇이 못되는 사람들은 과연 어찌해야 좋을까요?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도 미처 발심하지 못한 성문과 독각들의 원통한 울부짖음은 저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보살은 불가사의 해탈의 도리를 듣고 마치 젊은 왕자가 왕관을 물려받을 때처럼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머리 높이 받들면서 반드시 깨달으려는 생각을 일으키겠지요.




설(說) 불경엔 많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많습니다
깨달음의 바탕, 곧 불이(不二)와 유식(唯識)의 사상이 훼손되어 마치 말라 비틀어진 병아리 선사들, 그리고 썩어빠진 씨았과 같이 타락한 파충류선사들과 같은 이들을 어찌 해야하냐는 대 가섭존자의 외침이 제게는 너무도 영혼 깊숙히 다가옵니다
과거에는 양자물리학적인 사고가 신비한 사고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비한 사고도 아니고 충분히 물리적으로 증명가능한 사고가 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병아리, 파충류 선사들이여 이제 그만 착각과 미망(迷妄)을 버리고 참다운 수행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당신들이 비난하고 외면했던 외도(外道)이며 바로 마구니입니다.
여기까지가 범부(凡夫)로서의 제 소견이고 이제 유마경의 힘을 빌어 아라한으로서의 제 소견(所見)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경(經) 대덕이시여, 시방의 무수한 세계가 온갖 마(魔)로 들끓고 있건만 정작 그들 모두가 불가사의해탈에 들어있는 보살인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방편에 능한 까닭에 모든 중생의 근기를 성숙케 하기 위하여 온갖 마사(魔事)를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략
부처님의 허락없이 보살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능력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중략
보살을 협박할수 있는 이는 보살밖에 없으며 보살의 강요를 견딜수 있는 이도 보살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가사의해탈에 들어 있는 보살이 방편을 아는 능력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설(說)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보살의 화신입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자 살인자 약탈자 역시 다 보살의 화신입니다.
물론 일반 대중들 역시 다 보살의 화신이며,
당연히 세상의 모든 병아리선사, 파충류선사, 바퀴벌레 선사 역시 다 보살의 화신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중상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여기서의 중생은 인간, 짐승, 식물, 미생물, 돌, 바위, 흙, 물, 대기중의 수많은 기체들, 진공상태의 무언가… 우리가 헤아리고 상상할수 있는 모든 존재와 우리의 인식과 상상을 넘어서는 그 무엇까지 포함입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둘이 아니기에 우리는 곧 하나이며 이것이 유식학의 최종 정답입니다.


모든 범죄자가 보살이라고 해서 그들의 범죄가 합리화 되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범죄자는 중생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중생과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기에 인과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때문입니다.
그 범죄자가 만약 보살로서의 본성을 다시 깨달아 기억 되찾은 부처님이 된다면 그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기억을 잃은 부처님이기에 기억을 되찾게 해주기 위해 우리의 위대한 스승 인과율(因果律)께서는 그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몸과 마음이 파충류이고 바퀴벌레인데 보살의 대우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그를 대우하고 그를 따르는 그의 신도들도 곧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파충류이기에 차가운 야생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살아야 하고
바퀴벌레이기에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없어 고통을 다하면서도 왜 고통을 당하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중생으로 살아 갈수 밖에 없습니다.



견성하는 가장 쉬운길은 인과율의 흐름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다르마 (dharma)라고도 합니다.
다르마란 주어진 삶에 대한 규범과 같은 표현인데 이 다르마를 잘못 해석한 이들이 카스트제도 같은 신분제도를 만들고 고착시켰습니다.
하지만 다르마의 진정한 의미는 카스트 같은 신분제도의 의미가 아닌 인과율에 순응하여 가장 빨리 견성에 이르게 만들어주는 섭리를 따르자는 의미입니다.


다음강의에서는 이 다르마, 곧 섭리(攝理)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섭리를 가장 잘 따르는자가 가장 우수한 상근기 수행자이며,
가장 빠르게 견성에 이를수 있는 자이고 또한 가장 빨리 보살의 경지에 이를수 있는 위대한 수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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