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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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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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19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04 15, 2019 4:07 am

유마경 강의 19

문수보살품 일곱번째 이야기

<보살의 행(行)>




경(經)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현의 행도 아닌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정작 번뇌를 온전히 여읜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열반에 이르렀지만 결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네가지 마(魔)를 가까이 하면서도 정작 모든 마의 영역을 초월하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설(說) 참으로 많은 불자들에게 착각의 혼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설법입니다.

하지만 참 진여를 6식(六識)의 한계를 지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니 어쩔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관점은 이러한 논(論)은 무명에 가려진 중생을 대상으로 설한 논(論)이 아닌 견성한 아라한 이상의 경지에 이른 이들을 대상으로 설한 논(論)이라는 것입니다.




이경은 미신에 물들어 참 나를 찾지 못하고 외부에 존재하는 가상의 절대자(초능력자, 특이능력자)를 신으로 모시는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설한 것이 아니기에 그러한 어리석은 이들은 성인의 법문을 듣거든 내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보살의 말씀이니 언젠가는 이해하리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하건만,




그 어리석은 이들은 성인의 법문을 자신의 무명에 물들어 편협한 시각으로 해석을 하려하니 지금 불교의 괴각을 일삼는 이단의 무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불가 말고 도가나 혹은 다른나라의 고대 성인의 이야기를 기록한 경전을 보면 중생의 시각으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을 정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대 성인들의 말을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이들 이야기를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자신을 알라가 주제파악하란 소리로 흔히들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 주제파악이 아닌 자신의 참 나, 진정한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고민하여 깨달으라는 하나의 화두이며,




아브라함이 말한 나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이 나(특정 초능력가진 존재)외에 다른 또다른 초능력자를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닌 나(대승적 의미의 큰 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자이기에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건만 후대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야훼라는 인격을 지난 가상의 초능력자까지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수천년 전부터, 숫자로 샘할수 없는 과거의 세월전부터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크리슈나의 '나'를 영생하는 푸른색 피부를 가진 괴생명체라고 믿고 있는 인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이들은 위대한 성인의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할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한계속에 성인을 가두어 버리곤합니다.




그런 어리석은 중생들이 유마경을 읽게되면 스스로의 욕망을 참지못해 벌이는 범죄자 같은 행각을 합리화 하는 성인의 경문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여운일입니다.




그들이 지금 잠시간 전세에서의 모진 고통으로 생긴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라고 남보다 나은 상황에 처해진것을 모르고 자신은 선택받은 강하고 굳센 사람이라서 이런행동을 하는것이 다 옳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괴각짓을 합니다.




괴각행위자의 전생을 보면 하나같이 무시받고 핍박받고 세상을 저주하던 가련하고 불쌍한 전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여운 이들이 이 글을 읽고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라며 이글을 씁니다.




모든 사바세계의 보살은 그 어떤 인과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비록 그 생에서의 숙업(宿業)이 비천하고 비루할지언정 그는 다시 전세에서의 깨달음을 되찾을 것이며,

그의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속에는 이미 진여의 이치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위대한 성공자가 될것이며,

만인(萬人)에게 모범이 되고 성공하는 위대한 승리자가 될것입니다.

금생에서의 유년기와 청년기에는 숙업에 의해 조금 비뚫어지고 어긋난 행위를 할수 있으나 장년기가 되면 그는 다시 바른 깨달음을 얻고 숙업을 정화한 현명한이가 되게됩니다.




보살은 언제나 세상속에 머무르고 중생과 같이 울고 웃으며 중생을 어루만져주는 행위를 하는 이입니다.




비록 중생은 보살의 행동을 보고는 이해할수 없는 어리석은자의 행동이라 생각할수 있으나 보살은 자신을 어리석게 바라보는 중생 역시 안타까이 여기며 그 중생이 원하는 바... 를 이루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보살의 자비는 때로는 비웃음으로,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따뜻한 빵으로, 때로는 사랑스런 미소로, 때로는 거칠고 사나운 욕설로 중생에게 다가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보살의 행위는 보살의 숙업 깊은곳에 잠들어 있는 그의 바른 현인(賢人)의 기운에서 나오는 것이며,




상대방의 마음가짐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게 됩니다.




그 중생이 바른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보살은 온화한 미소로 중생에게 다가갈 것이고,




그 중생이 거칠고 사나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보살은 거칠고 사나운 모습을 중생에게 다가가게됩니다.




나를 사랑해주고 위로해주며, 힘들게 하고 괴롭히며, 웃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모든 이들이 사실은 진정한 보살인 것입니다.




사실 괴각행위자도 대승적 큰의미에서는 보살이 맞습니다.

다만 그는 고통과 좌절로서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위한 잠시간의 쾌락으로서 스스로의 무명을 정화하려는 어리석은 범부의 탈을 뒤집어쓴 보살입니다.




그가 무어라 합리화하더라도,

그는 그가 행한 괴각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받게됩니다.




즐거이 행복하게 온화하게 무명을 정화할수도 있건만 굳이 고통스런 고행으로서 무명을 정화하려 하는 그가 가여울뿐입니다.




이렇듯 세상 모든 중생은 사실 보살이며,

세상에서 어리석은 중생인 자는 오직 나 하나뿐임을 되새길때, 그리고 필경에는 나 역시 사실은 참다운 보살임을 자각할때 그는 참다운 나, 대승적인 큰 나로 접근할수 있는 급행 티켓을 소유할수 있게 되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견성(見性)이며 아라한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사업하느라 바빠서 유마경 강의를 올린다고 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 참으로 죄송합니다.




시간은 있었으나 언제나 퇴근후 그리고 주말에는 평일날 쌓인 피로를 푸느라 자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답니다.




이제 한두달만 더 고생하면 최소한 사장이 자리를 비운다고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정도의 궤도에는 올라설듯합니다...




올 여름부터는 예전처럼 하루 1강(講)은 못 올리더라도 주 1강(講)은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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