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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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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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15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12 24, 2018 2:57 am

유마경 강의 15
문수보살품 세번째 이야기
<보살의 문병이란>

경(經)유마거사가 문수보살에게 질문했다.
'문수보살이시여, 그렇다면 보살이 보살을 문병할때는 어떻게 하는것이 마땅하겠습니까?'
문수가 답했다.
'이 몸의 무상함을 들어 문병해야합니다. 하지만 이 몸을 혐오하고 세속을 멀리하라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몸의 고통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하지만 열반만이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몸에 내我가 없다는 점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근기를 성숙하게 하는 일에는 기꺼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몸의 공적(空寂)함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승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적멸주의(寂滅主義)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또렷이 상기시키는 것으로 문병해야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참회로써 그 죄업을 모두 소멸하리라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이 몸소 병을 앓아봄으러써 다른 사람들의 아픔까지도 측은히 여기고 전생에 겪었던 고통을 상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배려할줄 알며 스스로 선근을 쌓고 티없이 청정함 애욕을 끊고 늘 정진합으로써 마침내 모든 병을 치료하는 의왕(醫王)이 되리라는 말로 문병해야합니다.
보살은 마땅히 다른 보살의 병을 이와 같이 문병해야만 하겠습니다.'

설(說) 이 법문은 부처님께선 대중의 근기가 너무도 다양해서 광범위하게 설할수 밖에 없었기에 그 근기가 낮은 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이치를 보다 더 핵심을 집어서 설해주신 유마거사님의 대자대비가 담긴 법문입니다.

그 법문을 저 상불경은 몇가지 단락으로 나누어 강의해보겠습니다.

첫번째, '이 몸의 무상함을 들어 문병해야합니다. 하지만 이 몸을 혐오하고 세속을 멀리하라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몸의 고통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 보통 법사님들의 설법을 들어보면 세상은 다 무상하니 세속을 멀리하라는 설법이 많습니다.
우리가 인과율의 법칙속에서 윤회를 하는것은 보다 더 성장하고 보다 더 성숙하여 필경에는 부처가 되기 위함이며 그 세상의 모든 이치와 흐름은 우리를 더욱 빠르게 성장시켜주는 최고의 교재이건만 이러한 교재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들어감은 고의로 정규 코스를 벗어나 검정고시를 공부하려는 이들과 같은것입니다.

사회에서,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정규 교과 과정을 정함은 그것이 가장효율적이며 국민의 의식성장에 바른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과율의 모든 삶의 여정은 중생을 가장 효율적인 성장을 시킬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이 효율적인 시스템을 거부하고 무명에 물들어 어리석은 중생을 계도하기 위한 한가지 이치인 무상(無相)에만 깊이 빠져들어 세속을 혐오하거나 멀리하는 이들은 일반 중생들보다도 훨씬더 성불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물론 검정고시로도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낮은 확률일뿐이며 대부분의 중생들은 바르지 못한길로 빠져들게 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에게 '이 고통은 무상이니 집착을 여의면 고통도 사라지리라..'는 설법은 듣는 중생에겐 탁상공론(卓上空論)에 불과한 말이 될뿐입니다.
고통이란 세속을 의미하며 주어진 여섯가지 식으로 느낄수 있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또한 최고의 공부교재 이기도 합니다.
그 교재를 비유로 들어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는 마음가짐 곧 바른 심법(心法)을 중생에게 들려주는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병문안입니다.

둘째, '열반만이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몸에 내我가 없다는 점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근기를 성숙하게 하는
일에는 기꺼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낭만적인 시적 감성이 풍부한 귀족가문의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의 눈엔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지저분한 것을 대신 청소해주는 하인과 하녀들이 있고 언제나 칭찬만 해주는 벗(사실 집안 하인들의 자녀들로서 그들은 자신의 밥줄을 소녀가 쥐고 있기에 아부하는것에 불과합니다.)들이 있어서 소녀의 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것, 모든 곳이 사랑스럽기만 할뿐이었습니다.
이 소녀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것일까요?

하지만 소녀가 사는 귀족가의 저택을 나오면 세상의 어둠 한구석에는 핍박받고 무시박고 괴롭힘 당하는 장애인, 병자, 극빈자가 존재하고
이 소녀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귀공자와 춤을 추는 귀족가의 담벼락엔 거렁뱅이, 노숙자, 무법자들에게 몸을 팔고 그들의 정액받이 노릇을하며 한조각 빵을 구해야하는 가련한, 귀족가의 소녀와 같은 나이인 어린 창녀도 있습니다.
그 어린 창녀에게는 세상은 지옥일뿐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 어린 창녀의 무리중 한 어린 광녀(狂女)가 있는데 그 광녀는 거렁뱅이들의 정액이 자신의 온몸에 흐르는데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긋하게 소근거리며,
일 못한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포주에게도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자신을 경멸하는 귀족가의 사람들에게도 당신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사람이라고 중얼거리며,
한조각 빵에 몸을 팔고 있는 자신을 비웃고 놀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긋하게 중얼거립니다.
이 어린 창녀의 눈은 빛을 잃을 죽은 생선의 눈알을 떠올리게 하는 흐리고 탁한 눈입니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항상 세상은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보고싶은 것만 보며 말하곤 합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진여의 관점이지 6식의 관점에서 세상의 어두운모습에 눈감은채
보고싶은것만 보는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논해서는 안됩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이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우월감 혹은 열등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정신을 놓아버린 미친사람의 관점일뿐입니다.

열반을 이상향이라고만 생각해서 열반의 세계, 극락의 세계, 사후의 세계만이 진정한 편안을 가져다 준다는 식의 설법은 이 가련한 어린 광녀와 같은 수준의 설법에 불과합니다.

중생의 근기를 성숙케 하기위해서는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중생에게 일상의 삶에서부터 행복을 가져다 줄수 있는 설법을 하는 법사가 가장 위대한 법사입니다.

셋째, '이 몸의 공적(空寂)함을 들어 문병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승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적멸주의(寂滅主義)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이 몸 곧 사바세계에는 참된 나가 없습니다
여기서의 참된 나란 대승적 큰 나이며 진여를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것, 세상 모든 곳이 곧 진여이나 여기서의 내가 없음, 이몸의 공적함 곧 무아론은
소자아(小自我)를 버려서 참된 나, 곧 진여를 깨우치라는 의미에서의 반어법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맹신자와 어리석은 소승불자 그리고 어리석은 거짓 선지식들은
이 무아론을 나(소자아, 욕망, 집착, 모든 가치...)를 버려서 적멸, 곧 공에 이르라는
의미로 해석하곤 합니다
이 해석도 맞는 이치이기는 하지만 그 한계가 명확한 좁은 해석이기에
진정한 대승불자에게 설하기엔 조금 부족한 설법입니다.
공적이라함은 나(소자아)를 버려 진정한 큰나 진여를 터득하라는 의미이며
공적이란 곧 세상 가득한 유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득한것과 텅 빈것은 같은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논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또렷이 상기시키는 것으로 문병해야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참회로써 그 죄업을 모두 소멸하리라는 투의 말로 위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이 몸소 병을 앓아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아픔까지도 측은히 여기고 전생에 겪었던
고통을 상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배려할줄 알며 스스로 선근을 쌓고
티없이 청정함 애욕을 끊고 늘 정진합으로써 마침내 모든 병을 치료하는 의왕(醫王)이
되리라는 말로 문병해야합니다.'

악행이란 어떠한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큰 의미로서의 악행이란 바르지 못한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같은 말인듯 하나 그 의미의 해석과 실천에 따른 결과는 천양지차로 벌어지게 됩니다
제글 새로운 시각의 인과율을 링크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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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수준이 낮은 서구의 종교에서는 중생의 현재의 마음에 거짓된 평온을 안겨주는것을 구원이라 주장하지만 불가에서는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거짓된 평온은 구원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구원이란 스스로의 마음속 무명을 걷어내어 인과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바른 사람이 되었을때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어린이는 가장 싸움을 잘하고 세력이 강해서 모든 적을 무찌를수 있는 이이게 이런 호칭을 붙이고는 하지만 인자무적이란 완벽하게 바르고 어질어서 적이 나타나지 않는 이를 의미합니다.

인과율의 바른 이치를 터득하여 숙제(인과율)를 모두 해결한 바른이는 인과율의 법칙을 넘어설수가 있습니다.

어떤 벗님의 주장처럼 견성을해서 인과의 법칙을 넘어서는것이 아닌 가장 바르고 옳바른 이가 되어 인과를 뛰어넣을때 그는 진정한 성불에 이르게 되는것입니다.

스스로의 잘못된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절대 합리화 해서는 영원히 인과의 고통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몇일전 제 강의에 딴지를 걸었던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자칭 밀교 법사란 사람처럼 싸워 이겨서 적을 무찔러 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끝없는 인과율의 고통만이 따라갈뿐입니다.

나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괴롭히는 적을 무찌르려는 마음으로는 절대로 벗어날수 없으며 오직 타인(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포함)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것이 가장 훌륭한 인과율의 숙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며, 不二의 이치의 실현입니다.

이러한 이를 일러 의왕(醫王)이라하며 다른말로는 진정한 보살이라 표현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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