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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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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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12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일) 12 02, 2018 6:23 pm

유마경 강의 12
보살품(菩薩品) 세번째 이야기
<대부호의 아들 수달다의 바른 보시>
경(經) 수달다의 보시 회(會)에 유마거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대부호의 자제 수달다여.
그대는 이러한 보시 모임은 삼가하십시오.
그대는 마땅히 법을 보시하는 모임을 열었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한갖 재물로만 보시를 베풀다니 웬일입니까?'


설(說) 몇일전 페이스북 벗님이신 어떤분께서 티벳고승 강연회에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에 대해 황제강연이라며 비난의 글을 올리신적이 있습니다.
4박5일 강연을 듣는데에 숙박비포함 70만원을 요구하는 단체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많은 분들께서 호응 혹은 비난의 댓글을 달았었습니다.

다수의 사람이 겁박을 하면 그른것도 바른것으로 보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제가 감히 평가를 하거나 결론을 내릴수는 없으나 만중생을 위한 불교가 너무 귀족불교화가 되는것은 아닌가 싶어 씁쓸한 마음이 조금 들었습니다.

어떤분께는 70만원이 한끼 식사비용도 안되겠지만, 어떤이에게는 한달의 생활비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처님 생존시에도 권력있고 부유한 이들은 다른 신도를 제치고 부처님을 먼저 영접하고는 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사바세계의 속된 법칙을 따르셔야 했기에 어쩔수 없었겠지만 부처님은 항시 가난하고 병든이들 그리고 외면받고 핍박받는 이들에게 더욱 많은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대자대비를 추구하는 사문은 세상의 명리에 끄달려서는 안될것입니다.
가진자만을 위한 설법만을 해서도 안될것이며 부족한 이들만을 대상으로만 설해서도 안될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가진다면 그것은 곧 중생상(衆生相)을 일으키는 것이 됨으로서 언제나 고르고 평등한 견해를 가지고 중생에게 참 법문을 설해야할것입니다.

유튜브에서 라즈니쉬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라즈니쉬는 이렇게 말했더군요.
'나는 돈 많은 사람의 스승이지 돈없는 이들의 스승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부유하고 똑똑하고, 교양있는 사람들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있다. 거지들은 나에게 올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에게 올수 없다
그들은 들을수는 있어도 이해할수 없어요
나는 부자들의 스승입니다.'
제가 견성한 아라한을 파충류선사라고 표현하고 혹은 바퀴벌레 선사라고,... 어찌 생각하면 조금 혐오스런 표현까지 써가며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러한 오욕에 물든 잘못된 아라한들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견성을 했다고 오욕(五欲)을 스스로 통제할수 있고, 바르고 청정한 수행자가 된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견성이란 오직 아뇩다라샴먁삼보리가 아닌 그저 비슷해보이지만 진정한 보리는 아닌 그저 과정이며, 낮은 단계에 불과하답니다.

그 티벳 고승께서는 부디 참다운 수행자 이셔서 보시금을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다 나누어주는 청정 승가(僧伽)의 모습을 가지시길 기원드립니다.


경(經) 법을 보시하는 모임이란 시작이랄것도 없고 끝이랄 것도 없이 중생들의 근기를 성숙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법을 보시하는 모임입니다.
그것은 보리의 모습으로 크나큰 자비(大慈)가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뛰어난 법의 모양으로 크나큰 동정심(大悲)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모든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크나큰 기쁨(大喜)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지혜에 속한것으로 크나큰 평등심(大捨)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설(說) 보통 법보시라고 하면 불경을 간행하여 기부한다든지 혹은 많은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에게 불경을 읽어주고 해설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불자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 또한 작은 의미로서의 법보시에는 합당한 이야기이나 유마거사께서는 보다 큰 대승적(大乘的) 관점에서의 법보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변재(辯才)로서 중생의 마음속에 숭고한 마음, 동정하는 마음,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마음, 그리고 차별없는 평등함을 인지하게 만드는 모든 언행(言行)이 곧 대승적인 큰 의미의 법보시입니다.

지난주 유마경강의 11편에 댓글을 달아주신 한 벗님께서 말씀하시길 ' 별 진리도 담지 않은 서구의 종교가 적극적인 보살행과 육바라밀의 행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니 ... 중략 한국불교가 천박함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남겨주셨었습니다.
참 종교라면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샤먼, 토템수준의 종교(그들은 나름의 정교한 이론으로 자신들은 샤먼, 토템과는 전혀 상반된 종교라고 주장하겠지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고 높이쳐주는 그들의 문화는 제 눈에는 그저 샤먼, 토템수준의 종교로만 보일뿐입니다.) 보다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터득할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종교가 저는 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참 종교인, 불법의 대중들은 왜 저 낮은 단계의 진리를 가진 종교인들보다도 바라밀행이 적은 것일까요?

깨달음, 이치에 대한 오인된 관념때문이 아닌가? 하고 저 상불경은 생각해봅니다.
대승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수없이 반복하셔서 여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가장 쉬운, 그리고 빠른 수행법은 6바라밀법이라고 이야기 하셨지만 어찌된것이 후대의 불자들은 특별한 수행법과 특별한 진언(眞言)을 통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수 있을 것이란 잘못된 착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혹은 부처님께서 설해주셨던 많은 현묘(玄妙)한 이치를 깨닫게 되면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이를수 있다는 오해와 망상도 가지곤 합니다.

불자님들께 이릅니다.
부디 특정한 몸을 힘들게 하는 수행법과,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역사나 나름 이치를 풀어 설명하는 주문(呪文) <가령 이 주문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친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만 남 모르게 알려준 특별한 주문이라고 주장한다든지, 지구가 움직이는 소리를 나타낸 주문이라든지, 생명의 세포에서 시작되는 큰 음성을 문자로 표기한 주문이라든지,... 수만가지 나름 합당한 이치를 담았다고 주장하는 주문이 있습니다.>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주문들은 그저 토템신앙의 변형일뿐 사실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 주문 외울시간에 보시바라밀 수행을 하시는것이 더욱 빠른 성불의 길입니다.


대우주의 위대한 이치를 터득하겠답시고 일념삼천(一念三千)을 물리학적 시각으로 풀어보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은 공과 유식을 물리학과 심리학, 생물학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이치는 둘이 아니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현묘한 이치를 과학으로 설명하는것은 충분히 가능할것입니다.
과학만이 아닌 경제학, 미술, 음악, 체육학, 금속공학,... 그리고 학문이라고 부를수는 없는 뜨개질, 설겆이, 청소... 깨달음, 대우주의 이치와 전혀 상관이 없을것 같아 보이는 학문으로도 진여에 이를수 있씁니다.

허나 염려되는 것은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곧 깨달음을 얻는길,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착각을 하실까봐 염려가 됩니다.

이치는 둘이 아닌 이치를 더욱 잘 바르게 닦기위해 설해주신것이지 이치에 목적을 두라고 부처님께서 현묘한 이치를 설한것이 아니랍니다.

세상 모든 명제와 진리는 둘이 아니니 그 어떤 명제로서 학문으로도 진여에 이를수 있지만 이러한 이치들은 오직 모든 중생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어 더욱 큰 바라밀의 마음을 가질수 있게 돕기 위한 이치일뿐이지 그 이치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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