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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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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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토) 09 29, 2018 5:16 pm

유마경 강의 11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11 26, 2018 7:03 pm

유마경 강의 11
보살품(菩薩品) 두번째 이야기
<보리에 대하여>
경(經) 보리(菩提)란 정작 뉘라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미륵이시여, 부디 저 천신들로 하여금 보리를 무언가 특별한 것인양 망상케 하는 일은 삼가 주십시오.

설(說) 여기서의 보리란 아마도 깨달음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모든 번뇌를 멸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번뇌가 떠오를때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기도 합니다.
아무리 떨쳐 버리려해도 끝없이 떠오르는 불순한 욕망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기도 하고, 번뇌를 버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더욱 큰 번뇌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특히나 번뇌를 그 수행의 근본으로 삼는 선종에서 그런 일이 많습니다.
번뇌는 몰아내거나 제거해야할 파순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고 필경에는 성불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번뇌를 제(制)하려 하지말고 번뇌를 통해 나의 문제점을 적극 인정하고 수정하려 노력하는 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입니다.
깨달음, 곧 보리의 의미를 크게 규정한다면 특별한 하늘위의 이치가 아닌 웃고 울고 슬퍼하고 화내고 이기적인마음, 이타적인 마음, ...세상의 모든 감정이 곧 보리입니다.
오늘 어떤 분의 글에 황진이와 지족선사, 서경덕을 논하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족선사의 부적절한 성욕도 보리요, 서경덕의 고귀한 인욕도 보리입니다.
근본없는 무식함도 보리요.
예의와 범절을 무리없이 익힌 인격자도 보리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탐욕도 보리요,
내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보시의 마음도 보리입니다.

이상은 오직 진여의 관점에서 사바세계의 중생의 마음과 행을 논한것이며,
6식(六識)으로 이루어진 중생의 마음에서는 전자의 행위는 아주 잘못된 행위이며, 바르지 못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전자의 마음은 바르지 못한 마음이기에 금생과 내세에 크나큰 고통이 따를뿐이며, 이는 본인이 선택한것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생들은 자신이 가해자, 혹은 파계를 하는 입장에서는 스스로 합리화하려하지만 그에 대한 과보로 모진 삶을 겪게되면 하늘을 원망하곤 합니다.


경(經) 보리란 몸으로 깨닫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보리란 모든 상(相)이 적멸한 자리입니다.
보리란 일체의 인식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리란 아무런 의지도 일어나지 않는 것, 모든 견해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보리는 모든 분별을 여의고 움직임과 생각과 마음의 동요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습니다.


설(說) 보리란 진여로 이르는 과정이며 그 결과치입니다.
6식의 경계를 넘어선 이치입니다.
하지만 유마거사는 6식의 경계를 넘어선 이치를 6식의 경계로 설하고 있습니다.
보리란 6식의 경계를 넘어선 이치이므로 당연히 몸으로 깨달을수 없고 마음(여섯가지식)으로 깨달을수도 없습니다.
보리란 진여의 관점이니 당연히 일체의 인식대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보리란 진여의 관점이니 당연히 일체의 분별을 여의고 있고 마음(육식 六識)의 동요로 부터 훌쩍 벗어나 있습니다.
유마거사의 설법중 이 단락 만큼은 아라한이나 보살을 위한 설법이 아닌 보리, 곧 깨달음에 대한 환상, 신비주의...을 가진 일반 대중을 위한 설법인듯합니다.
제 페이스북 벗님중 한분은 아라한의 경지, 곧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숫자까지 알아내야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더군요.
아마도 유마거사께서는 이러한 분들께 설하신 법문이 아닌가 합니다.


<광엄의 보리좌>
경(經) 여래의 제자 광엄이 성을 나가려는데 마침 들어오던 유마거사에게 물었다.
'유마여! 그대는 어디에서 오는 길입니까?'
'보리좌(菩提座)에서 옵니다.'
보리좌의 의미를 광엄이 묻자 유마거사는 대답했다.
'선남자여, 보리좌는 사람들의 작위(作爲)에 의한 헛된것이 아닌 까닭에 정직한 마음을 좌(座)로 삼습니다.
그것은 이루어진 행위를 완성으로 인도하는 까닭에 실천을 좌로 삼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난 깨달음인 까닭에 깊은 결심을 좌로 삼습니다.
결코 잊혀질수 없는 까닭에 보리심(菩提心)을 좌로 삼습니다.... 중략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평등하기 때문에 자(慈)로써 좌를 삼고,
온각 박해를 견뎌내기 때문에 비(悲)로서 좌를 삼으며, ... 중략
선남자여 무릇 보살이 이와같이 바라밀다를 갖추고 사람들의 근기를 길러주며 바른 법을 획득하고 선근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보리좌에 기인하고 일체의 불법으로부터 기인하며 불법가운데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說) 여래의 제자이신 광엄께서는 현상계(現象界)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졌는데 유마거사는 진여의 관점에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처님 이셨다면 조금은 다르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고 저 상불경은 생각합니다.
중국의 선종의 선문답이 아마도 이러한 유마거사의 대화법에 영향을 받은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상대의 근기가 진여를 논할 근기인지, 그저 믿음으로 신앙을 가지는 단계에 놓여있는 자인지를 고려치 않고 가차없이 선문답속으로 도피해버리는 수많은 선승들이 제 눈에는 혹세무민하는 파계승으로만 보일뿐인것이 제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그 선승들이 잘못된 관념속에 빠져있는것인지는 훗날 사바세계의 많은 중생이 견성에 이르려 견성이 보편화되는 시대가 된다면 밝혀질것입니다.
유마거사가 지금 설한 광엄이란 제자분은 여래의 제자분이며, 고귀한 스승의 직언을 듣는 제자이기에 이러한 설법이 바른 설법이 되지만 현대의 저 맹목적인 신앙만을 가진 서구의 종교인들 앞에서 이런말을 한다면 그는 그저 정신병자 이상의 사람으로 불리지 못할것입니다.
혹은 식자(識者) 행세하는 이들에게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꼴이 될것입니다.
부디 이 땅의 모든 병아리선사와 그 추종자들은 더이상 이러한 선문답놀이를 벗어던지고 다함께 성불에 이르는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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