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9 제자품(弟子品) 여덟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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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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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9 제자품(弟子品) 여덟번째 이야기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목) 10 25, 2018 10:15 pm

유마경 강의 9
제자품(弟子品) 여덟번째 이야기
경(經) 세존께서 몸이 편찮은듯하여 아난은 우유를 공양하려 어느 바라문의 집앞에 서있었는 유마거사가 나타나 아난에게 말했다.
'여래의 몸은 금강석과 같은 몸으로,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빠짐없이 몸에 지니고 계시는데 어떤병이 있겠으며, 어떤 괴로움이 있겠습니까?
잠자코 돌아가십시오. 아난이여!
이러한 그대의 행동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행동이며, 그와 같은 설익은 말을 누군가에게 해서는 안됩니다.
또 뛰어난 위엄과 덕을 갖춘 제천(諸天)들과 다른 곳의 불국토에서 온 보살들에게도 이런말을 듣지 않도록 하십시오.'


설(說) 유마거사는 인간의 몸으로 있는 초월자를 부처님을 생각하는 아난의 부족한 마음을 지적하여 아난이 진정한 존자의 위치에 오를수 있도록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유마거사가 말한 부처님이란 법신불을 의미합니다.
실제 이러한 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대화가 있었다면 약간의 덧붙임의 말로 아난을 계도하여 참다운 진여에 눈을 뜰수 있게 할수 있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친절한 유마거사가 주어에 대한 부연설명을 빠뜨리고 있습니다.
후대의 깨닫지 못한 학자성향의 사가(詞家)들이 의도적으로 그 부연설명을 빠뜨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근 읽어본 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와 페북 벗님들의 글을 읽고 알게된것인데, 불가의 불성,법신불이란 개념은 이미 그이전 힌두교에서도 있었던듯합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란 힌두교 최고신인 브라흐만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최고신인 브라흐만은 곧 진여, 부처님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상이며, 진여를 한단어로 묘사한 것인데,
2000년전의 중동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위대한 깨달음을 이해 못하여 예수님을 신의 아들이라 모시며,
예수님께서 설하신 진리를 심각히 왜곡하는 사상인 기독교를 만들었듯이 고대 인도인들도 힌두교를 만든 위대한 성인의 깨달음을 이해못하여 오직 브라만인(인도의 성직자 계급)만이 위대한 브라흐만의 자식이란 왜곡된 사상으로 현재의 잔인한 카스트 제도를 만든것입니다.
브라만 계급의 사람들만이 범아일여의 대상이 아니고 크샤트리아(무사계급), 바이샤(상인계급), 수드라(천민 계급) 그리고 그들의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진정한 천민인 하리잔...도 모두 위대한 불성을 가진 범아일여의 대상이건만 그들은 너무도 어리석고 마음이 어리기에 이러한 사상을 이해못한것입니다.

부디 섯부른 민족의식, 섯부른 선민의식으로 세상의 혼동을 부르고 필경엔 자신마저 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길을 제 페이스북의 벗님들은 벗어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편협한 마음을 가지는 이에게는 인과율이 그러한 상을 버리도록 끝없는 시련을 줄뿐입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제자인 아르쥬나에게 스승인 크리슈나는 자신이 헤아릴수 없는 오랜 예전부터 존재한 이라고 설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아르쥬나는 스승인 크리슈나한테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크리슈나님은 저보다 겨우 열살 남짓 나이가 많은것으로 아는데 당신에 먼 옛적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을 나는 믿을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마치 법화경의 한구절을 보는것 같지요?
이렇듯 이미 법신불이란 개념이 고대 인도에는 존재했었지만 인도인들은 고대에도 그렇고 현대에도 그렇듯이 법신불을 하나의 인격체, 혹은 자신과 닮은 사람(타인, 타존재, 타물... 무엇이라 표현해도 좋습니다.)이라 생각하여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습니다.
어떤 힌두교 법사는 크리슈나의 신통력을 찬양하며 죽지않고 분신술을 사용하는 위대한 초능력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말이 위대한 진여를 의인화한 말이라면 올바른 설법이겠으나 여섯가지 식으로 이루어진 인간 크리슈나를 지칭하여 제사지내고 숭배하는 마음으로 설한것이라면 그 힌두교 법사는 심각히 무명에 오염된 어리고 어리석은 가여운이일 뿐입니다.

인도와 티벳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면 온갖 신들에게 경배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해소시키기위해 인과율이 그들의 사상과 반대되는 사상인 기독교 사상을 가진이들이 그들을 식민지배하도록 만든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스스로 만들어진 어긋난 자긍심을 가진이들은 인과율이 강제로 그들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사람을 통해 그 자긍심을 꺽어버리곤 합니다.
부디 선민의식과 어긋난 민족의식은 바르지 못한 사상이니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대의 브라만 종교역시 위대한 깨닳음을 얻은 성인의 말에서 시작된 종교이건만 어리석은 후대의 사람들은 법신불을 인지 못하고 가상의 초능력자 신을 만들어 숭배하고는 합니다.

정신적 소양이 낮은 이에게는 자신과 유사한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고 의지하는것이 잠시는 마음에 평온을 줄수 있으나 이는 거짓된 평온임으로 그는 편협하고 마음이 궁색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을 자신의 공허함을 해소하고 싶어 누군가(신)을 찾아 절하고 기도하지만 그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평온을 찾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믿음으로 도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가야되는데 부산으로 내려가고, 더욱 내려가 바닷속에 빠지면서도, 물이 입속에 들어와 숨이 막히고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발을 서울쪽으로 돌리지 않으니 그에게는 필히 극도의 절망만이 기다릴 뿐이기 때문입니다.

유마거사는 세존의 큰 제자인 아난이 이라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서 아난을 제도하기 위해 법신불의 관점으로 부처님을 설하신 것입니다.



경(經) 아난이여, 모든 여래의 몸은 진리 그 자체이며, 미혹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으로서 삼계에서 벗어나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부처님의 몸은 무위(無爲)이니 세상의 온갖 도리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몸에 어떻게 병이나 고뇌가 있겠습니까?


설(說) 병과 세상의 모든 고난은 인과율이 우리의 육식(六識)을 정화하여 진여에 이르게 하기위한 고행으로서 내려주신 섭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섭리로 배울것을 이미 다 배운분이시므로 온갖 질병과 고난을 겪지 않습니다.
질병과 고난이란 곧 배움의 과정인데 이미 모든 것을 다 배워 스승의 위치에 계신 부처님께 채찍을 드는 선생이 존재할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한가지의 방편으로 고난을 자처하실수는 있습니다.

이상으로 유마경 자품 강의를 마침니다.
다음부터는 보살품(菩薩品) 강의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든 벗님들이시여, 성불하십시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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