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5 재자품(弟子品) 네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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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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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5 재자품(弟子品) 네번째 이야기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화) 10 23, 2018 7:09 pm

유마경 강의 5

재자품(弟子品) 네번째 이야기

<수보리의 공양>

경(經) 대덕 수보리여, 만약 그대가 음식의 평등성에 의해 일체 존재의 평등성을 알고 일체 존재의 평등성에 의해 부처님 본연의 평등성까지 깨달을수 있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설(說) 이 문구를 어떤 법사님께서는 음식을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법문이라는 일차원적인 설법을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법사님의 법문도 맞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나 정신세계가 너무도 어린 불자들에게는 적합한 설법입니다.

하지만 대승불경을 읽고 계시는 상근기 벗님들의 수준에는 조금 부족한 설법이 아닌가 합니다.

약간 덧붙인다면

'여러가지 종류의 음식의 미각에 현혹되지 말고 달고, 짜고, 시고, 매운...등의 모든 음식을 먹으며 음식의 맛에 현혹되지말고 세상 모든 현상에 불법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 일체 존재와 불성, 그리고 본연의 모든 성품의 평등성을 깨달을수 있다면 그대는 진정한 보살의 경지에 이를것입니다.'

라고 유마거사의 법문을 해석하신다면 더욱 맞는 설법이 되실것입니다.




경(經) 대덕 수보리시여, 만약 그대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쳐부수지 않고 동시에 그들과 함께 있지도 않다면, 또한 개아(個我)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쳐부수지도 않은 채 동시에 모두가 똑같이 나아가는 참된도(一行道)를 향하고 있다면, 또한 무지와 존재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않은 그대로 지혜와 해탈을 낳을수 있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설(說) 제가 앞서의 강의에서 대승불자라면 번뇌를 타파하여 공에 이르려하지 말고 그 번뇌를 진화시켜 가득함의 공을 깨달아야 한다고 설한적이 있습니다.

이 이론의 근거가 이문구라고 할수 있습니다.

탐진치 삼독을 쳐부수지 않으며 그 탐진치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모든 중생은 개별된 존재라는 생각이 그릇된 생각이지만 그 그릇된 생각역시 불성에서 비롯된 것임으로 그릇됨으로서 바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며, 모든존재는 둘이 아니지만 최종에는 모든 개개의 존재들이 일불승의 참된 도를 향한다면 그는 참된 보살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참된 대승불자는 모든 사회현상을 받아들이며, 모든 사회현상에 대항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바른 삶(투쟁하는 삶)을 가지려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다툼을 피하는 행위와 다툼의 세계와 직접 맞서는 모든행위, 세상 모든 중생의 모든 행위를 뜻합니다.

어떤 벗님은 이렇게 질문할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행위가 다 바른 수행이라면 불경을 읽을 필요도, 보시바라밀을 할필요도, 인욕을 할필요도, 계율을 지킬 필요도 없는것 아니오?'

아닙니다. 참된 대승불자와 바르지 못한 소승불자의 차이는 단 한가지 입니다.

자신의 행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바른 인식이 있다면 그는 모든 사회현상이 곧 불법의 수행이지만 바르고 온화한 삶을 살것이요.

바른 인식이 없다면 그는 끝없는 합리화를 통해 인과율의 호된 회초리를 맞게 되겠지요.

화엄경의 한 구절을 다시 되뇌어 봅니다.

'보살은 바르고 바르지 못한 세상의 모든 행이 다 범행임을 알지만,

자비와 인욕을 멈추지 않습니다.'




경(經) 무간업죄의 평등성이 그대의 해탈과 평등함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대 자신이 해탈해 있지도 않고 동시에 속박 되어 있지도 않다면, ... 중략

스승이신 부처님을 찾아뵙지 않고 법문도 듣지 않으며 승단에도 참여치 않으면서, 저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스승으로 삼아 그들을 따라 출가하며 그들이 가는 곳이면 그대도 어디든지 따라가리라고 한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설(說) 여기서 '업'이란 단어는 '벌'이란 단어로 해석할수 있고,

'죄'란 단어는 잘못된 언행을 의미합니다.

업이란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유마경의 이 '수보리 공양품'에서의 해석을 의미하니 벗님들은 이의제기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벌'이란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도록 도와주는 모든 고행을 뜻합니다.

고행이란 바로 해탈을 보다 빠르게 이루기 위한 행위이며 큰 수행임으로 모든 죄짓는 자는 머지 않아 타의에 의한 더욱 큰 고행을 통해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

바르지 못한 외도의 법문에 깊이 빠져드는 이들 역시 머지 않아 위대한 고행으로 해탈에 이르는 위대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바라이죄를 지은 제바달다 선지식이 과거 부처님의 스승이었고, 미래에 천왕여래가 될것이라 하신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죄지은지, 모든 바르지 못한자는 곧 머지않아 바른 선지식이 될수 있는 이들이며,

그들은 그러기위한 무지막지한 고행의 문을 스스로 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행이란 너무도 힘들고 처절하여 온화하게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넘어설수 있는 문을 그들은 고행이란 아프고 서러운 심신(心身)을 통해 넘어가려하니 여래와 모든 보살님들께선 이 어찌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부디 모든 이 글을 읽고 계신 벗님들께서는 고행보다는 편안하고 포근한 수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시어 더욱 빠른 해탈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경(經) 그대는 온갖 악견(惡見)에 빠져 있으며 양 극단과 중도의 바른 인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여덟가지 불행한 윤명을 타고났으며 행복으로 나아가는 도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번뇌 덩어리이며 청정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격정을 여의고 나면 그때 비로소 대덕도 격정을 여의겠지요. 그대의 보시는 청정하지 않으니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보시하는 사람 역시 악도에 빠지겠지요.

그대는 모든 마(魔)와 함께 뒹굴며 번뇌는 그대의 벗입니다.

번뇌의 본질이야말로 그대의 본질입니다.

그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모든 부처님을 비난하고 모든 불법을 헐뜯으며 승단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그대는 열반에 들지 못하겠지요.

혹시 그대가 이와 같다면 대덕이시여, 부디 이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설(說) 유마거사께서는 스스로 대덕이라 칭하신 수보리 존자에게 세상에 다시 없을 비난을 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하실 벗님도 있으리라 봅니다.

허나 이는 비난이 아닌 수보리존자에게 일체 모든 이들이 둘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설법일뿐입니다.

일체 모든 존재는 둘이 아니니, 저 바라이죄를 지은 악인도 수보리존자와 둘이 아니요, 위대한 부처님 역시 수보리 존자와 둘이 아닌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단 한명의 중생이라도 격정을 여의지 못했다면 수보리존자도 격정을 여의지 못한것입니다.

이는 서원의 힘이 아니고, 세상의 근본 구성이 모두가 하나이기에 그런것입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셨지만, 세상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엔 저도 벗님들도 모두 진정한 성불에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법을 헐뜯으며 승단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모든 이들이 있는한 세상 모든 불자는 진정 성불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부디 서구와 중동의 종교에서처럼 악인을 멸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갖지 말아주십시오.

세상의 모든 악인은 곧 나이며, 여러분입니다.

악은 멸해야하는것이 아니고, 정화시켜 바르게 이끌어야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악인과 우리, 그리고 나는 모두가 둘이 아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불법을 전해야 하고,

바른 삶의 태도를 모범적인 언행으로서 보여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런 모범적인 바른 삶의 태도는 인과율을 큰 은총을 부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과율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바른 삶의 태도를 축복해주고 혜택을 주어야만 더욱 많은 불자들이 바른 삶의 태도를 가지려 노력할것이고, 그러면 더욱 빠른 성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과율은 모든 중생의 성불을 위해서 존재할뿐입니다.

법화경 문구 하나을 읽고 간직하는 것이 숫자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이들의 배고픔과 헐벗음을 구제해주는 것보다 낳은 복덕을 받는것은 그래서입니다.

지장경의 한 문구를 되뇌이며 염하는 복덕이 수억의 사람들에게 보시하는것보다 낳은 복덕을 받는것도 그래서입니다.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더욱 바라밀을 지키며 염불을 하십시오.

바라밀과 염불속에 모든 평온과 행복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큰 로또 복권마저 있음을 인지하시고 행복을 얻으시길 기원드립니다.




긴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성불하십시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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