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7 제자품(弟子品) 여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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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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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7 제자품(弟子品) 여섯번째 이야기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10 22, 2018 10:52 pm

유마경 강의 7
제자품(弟子品) 여섯번째 이야기
<아나율의 천안>
경(經) '여러 부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천안을 지닌 분들입니다.
즉 선정에 든 채 모든 불국토를 보면서 정작 아무런 분별심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說) 여러부처님이란 말의 의미는 법신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화신불을 지칭하는 단어로 보입니다.
법신불을 지칭했다면 불성에 대한 설명으로 끝을 마무리 지었을 것이며, 큰 하나(不二)의 개념을 같이 덧붙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곧 육식(六識)을 가진 개아(個我)로서 완성에 이르신 화신불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모든 분별을 떠나 바른 마음의 완성을 이룩하신 부처님의 눈으론 온세상의 모든 사물과 질서를 보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란 곧 불성을 의미하며, 온세상의 모든 사물(생명포함)은 모두 평등한 불성을 지닌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에 부처님은 아무런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바리의 계율>
경(經) 죄를 범한 두 비구에게 우바리존자가 설법을 하고 있을때 유마거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대덕 우바리시여, 그대는 부디 저 비구들의 잘못을 덩상 부풀리거나 더럽히지 마시고 그들이 속히 죄책감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바로 안내해야 합니다.'


설(說) 모든 종교에서 죄를 지은자에게는 큰 형벌이 따름을 가르치곤합니다.
하지만 유독 기독교에서는 작은 고해성사만으로 그 죄인이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널리 포교에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세시대에는 죄지은자에게 면죄부까지 발부할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는 큰 사회적인 문제이며, 수많은 소시오패스를 양산할수 있는 사회지침이 될수도 있기에 바른 것은 아니나, 인과율이 그런 중생들의 행위를 용인한 것은 그들의 저차원적인 마음가짐에서는 이러한 단계적 구원의 메시지도 필요하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세상의 모든 질서와 규율은 얼핏보면 모순적이고 바르지 않은듯 하지만 중생의 단계에서는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것이지 불필요한 어긋난 질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법화경의 화성유품에서처럼 낮은 근기의 사람이 자포자기 하지 않게 만들려는 성인의 가르침인듯 하기도 합니다.
면죄부를 부여한 중세유럽의 성직자들은 물론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겠으나 세상을 조율하시는 법신불(인과율)의 의지가 그들에게 그러한 어긋난 구원의 메시지를 허용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죄지은자에게 징벌을 내리지 않고 그 죄지은자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설법은 이미 불교에서도 있었습니다.
기독교만의 전유물은 절대 아닙니다.

죄(罪)란 잘못된 언행(言行)으로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자행한 자를 정의합니다.
사람들이 죄짓기를 두려워하는 첫번째 이유는 벌(罰)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벌을 대승불교에서는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른 해석을 합니다.
벌이란 타의(他意)에 의한 고행(苦行)으로서 자신의 부정한 마음을 정화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모든 죄인이란 고행의 문을 열고 들어가 슬프고 아픈 고행을 겪게되는 최상근기의 수행자를 의미합니다.
(죄지은자 마저 최상근기 수행자라 주장하는 것을 보고 그럼 일반인은 하근기 수행자란 말이오? 하고 질문하실 벗님들이 있을까 싶어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만이 아닌 수라, 아귀, 축생,...등의 모든 중생들은 다 최상근기 수행자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평등히 위대한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진여의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일뿐이며,
육식(六識)의 관점에서는 죄지은 지들은 하근기중에서도 최하근기 중생일뿐입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그러한 모진 고통을 통해 다른 이들이 고통을 공감할수 있게되고,
그러한 모진 고통을 통해 마음속의 부정한 마음을 정화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거친 고행을 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 자아성찰을 통한 평화로운 수행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모든 성인들이 세상에 오신것입니다.


경(經) '죄는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으며 안과 밖 이외의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의 말씀 가운데, 마음이 오염됨으로써 중생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짐으로써 중생 또한 청정해진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시여, 마음은 분명히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으며 또한 안과 밖 이외의 어느곳에서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마음과 마찬가지로 죄 역시 그러합니다.
이러한 죄와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 역시 그러해서 결코 진여(眞如)로부터 따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설(說) 세상의 모든 오물과 모든 오염되고 악취가 나는 모든 존재(물질, 정신, 모든 인식작용 포함)는 다 진여에서 비롯된것이며,
그러한 부정한 모든 존재들은 사실 부정한 존재가 아닌 나를 성장시키고 진화시켜 필경에는 부처의 경지에 이끌고 계신 스승이며, 인과율의 대변자들입니다.
그래서 옛 고승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위대한 설법을 한것입니다.
죄지은 자를 보면 죄를 비난하기 이전에 그가 앞으로 겪을 고행을 안타까이 여기고, 현재 무지막지한 삶의 고행을 겪고 있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하루 빨리 깨달아 고행을 벗어나 평온하고 사랑스러운 삶을 통한 수행을 하기를 기원해 주어야 합니다.
악인은 지옥으로..... 이러한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며, 잔인한 말입니다.
악인을 지옥으로 보낸다 함은 자신을 지옥에 보내달라는 말과 같은 표현입니다.
극도로 악인을 증오하는 사람중에 선량한 사람을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선량함의 기준이 무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눈에는 악인을 증오하는 그 역시도 힘이 없어서 타인을 괴롭히지 못할 뿐 힘을 얻게 되면 더욱 잔인하게 스스로를 미화하고 합리화 하며 타인을 괴롭힐 존재들로 보입니다.

그러니 지금 괴로움에 울부짓고 하늘을 원망하는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이 전생에는 부유하고 건강하고 강한 자들이었고, 그 현생의 타인을 괴롭히기를 즐기고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병들고 장애를 가진이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우월감으로 멸시 하는 자들은 내세에는 전생의 모습을 기억못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타인을 미워하는 못난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오직 바른 마음으로 타인(악당 포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되는 법입니다.

부디 모든 사람들(수라, 아귀, 축생, 모든 존재들… 포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세상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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