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6 제자품(弟子品)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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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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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6 제자품(弟子品) 다섯번째 이야기

전체글 글쓴이: sohn3351 » (월) 10 22, 2018 10:51 pm

유마경 강의 6
제자품(弟子品) 다섯번째 이야기
<부루나의 설법>
경(經) 대덕 부루나시여, 정신을 집중하여 저 비구들의 속마음을 잘 관찰한다음 설하십시오.
보석으로 만든 그릇에 썩은 음식을 채우지 마십시오.... 중략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도 않고 그릇이 큰 사람을 작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상처나지 않은 곳에 상처를 내지 마십시오.
큰길로 가려는 이를 작은 길로 안내하지 마십시오.
큰 바다를 소 발자국 안에 가두어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
설(說) 요즘 인터넷에 글을 쓰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상대를 비하하여 맘충이니 애비충이니... 벌레를 의인화한 비하 글들이 많이 보게 됩니다.
타인을 비하하는 말도 문제이나 스스로를 비하하여 자괴감에 빠지는 이들은 더욱 큰 문제인듯합니다.
그들의 언어 표현을 보면 스스로의 인격을 모독하기를 너무도 즐기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흑수저라고 표현하며 금수저라 불리는 부유하고 권세가 있는 집안의 사람들과의 신분차이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가엽기도 하고 어쩔때는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고는 합니다.
'난 재능이 없어!
그래서 노력해 봤자 소용없어!
너무 부조리 하잖아?
이렇게 타고난걸 어쩌란 말이야?'
재능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각자의 타고난 재능의 종류가 다를뿐 누구나 특별한 재능은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만큼 한심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장점을 버리고 타인의 장점만을 흉내내려하니 스스로 자괴감만 늘어날뿐입니다.
또한 그들이 나이들어서는 자신이 못해본것을 하려 노력하는 아들이나 동생 혹은 후배를 보며 비관적인 말부터 하고는 합니다.
'사업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거냐?
네깟놈이 무슨 사업을해?
사업을 하려면 최소한 특정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경험을 쌓은 사람만이 성공할수 있다.
안정정인 직장생활이나 하지 헛바람 들어서 사업한답시고 일벌이다 온 가족 길바닥에 나앉게 만드는거 많이 봤다...'
꿈이 없는 인생은 좌절도 없지만 성취감도 없는 인생입니다.
사업이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내아들, 내동생, 내 후배는 할수 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특정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경험을 쌓은 사람은 이미 쌓은 위치를 버리고 다시 창업하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독이 되어 벽을 못깨뜨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모르지만 진취적인 청년이야 말로 더욱 그러한 특정 분야에 뛰어들어 성공할수 있는 법입니다.
만약 실패 한다 해도 그 실패를 경험치 삼아 다시 도전하다보면 포기하지 않는한 그의 삶은 언젠가는 큰 성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못나서 못한 것을 다른 청춘들까지 못나지라고 강요하는 사회 문화는 반드시 수정해야할 악습중 하나라고 저 상불경은 생각합니다.
오직 내가 못났기에 실패한것이고, 도전하지 못한것이지 내 아들, 내 동생, 내 사랑하는 후배는 나보다 잘났기에 반드시 성공할것이라 축복해 주는것이 진정한 어른의 마음가짐입니다.
그 못난이도 이러한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그는 더이상 못난이가 아닙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청년의 의욕을 꺽는 언행을 하기에 그를 못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삼십대 젊은 사람이 육칠십대 노인들처럼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안정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사회의 큰 불행입니다.
청춘들에게 가장 큰 목적이 박봉의 공무원이 되는 것인 사회는 정말 삭막하고 경직되고, 머지 않아 더욱 큰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될수 밖에 없는 사회이건만 모험하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살아가는 청춘들을 보면 정말 안쓰러움만 느끼곤 합니다.
경(經) 대덕 부루나시여, 저 비구들은 일찍이 대승을 믿고 따랐으나 그동안 보리심을 잊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들에게 성문승에 대한 것은 설하지 마십시오.
성문승은 옳은 것이 아니며 특히 그것은 중생의 근기를 헤아림에 있어 날때부터 장님인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유마는 문득 삼매에 들어 저 비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과거 여러생을 스스로 관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은 곧 과거 자신들이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오백부처를 섬기며 많은 선근을 쌓았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설(說) 모든 중생은 다 기억을 잃고 있는 부처님들입니다.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배려심없는 싸이코패쓰나 소시오패쓰역시 모두 위대한 불성을 지니고 있고 언젠가는 크게 성불할 위대한 망각불(忘覺佛)들입니다.
맹목적으로 고대의 특정 초능력자를 신으로 모시는 타 종교인들도,
극기 훈련같은 고행을 통해 성불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저차원적인 소승불교인도 모두가 위대한 망각불들입니다.
<대가전연의 가르침>
경(經) 대가전연이시여, 변화를 수반하는 법, 즉 생을 가져오고 멸을 가져오는 법일랑 설하지 마십시오.
대덕이시여 참으로 나지 않으니 과거에도 나지 않고 미래에도 나지 않으며, 참으로 멸하지 않으니 과거에도 멸하지 않고 미래에도 멸하지 않는 다는 바로 이말이 무상(無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오온은 공하므로 고(苦)란 원래부터 있지 않다는 것이 고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아(我)와 무아(無我)는 둘이 아니라는 것이 무아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설(說) 내가 존재한다는 개념과 내가 없다는 개념은 진여에서 비롯된 아뢰야식의 모든 세상을 공이라 보거나 혹은 유식이라 보는 관점과 같은 것입니다.
공과 유식이란 같은 개념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 설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유식의 관점으로 아뢰야식을 이해하려한다면 세상은 가득차있고, 그 가득차있는 것중 작은 나 곧 개아(個我)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개아는 작은 육식(六識)에 불과하고 이러한 개아들이 모여 함장식을 이루고, 그 작은 개아와 함장식에는 더욱 많은 개아와 함장식, 그리고 세상을 이루고 이끌어가는 아뢰야식마저 존재합니다.
공의 관점으로 아뢰야식을 본다면 세상은 공할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無我)란 개념이 생긴것입니다.
다만 소승불교에서는 이 무아론을 육식(六識)의 잡다한 번뇌와 망상을 여의기 위한 이론의 근본 매체로 사용함으로서 많은 수행자를 더욱 큰 번뇌에 빠뜨리곤 합니다.
나(六識)를 잊어야 무아(無我)가 되고 경지에 이를수 있다는 이론은 그래서 나오는 이론입니다.
나를 잊어서 경지를 이룬다는 이론은 오직 부정한 욕망과 성내고 어리석음의 근본 개념조차 이해못하는 아함경수준의 하근기 중생의 근기를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여래께서 설하신 이론일뿐 진정한 성불에는 이루기 힘이든이론이기때문입니다.
대승불자라면 나를 잊으려하기보다는 진정한 나 곧 불성을 터득하여 나를 위대한 보살로 승화시키려 노력해야합니다.
소승불교의 수행자들은 그래서 '번뇌즉 보리'라는 이치를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번뇌는 무찔러 없애야될 파순일뿐인데 왜 번뇌를 보리라고 표현하는지를 이해할수 없기에 대승불교는 정통불교가 아니란 말들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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