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2 제 2장 부사의한 방편(方便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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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2 제 2장 부사의한 방편(方便品)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수) 10 03, 2018 1:24 pm

유마경 강의 2
제 2장 부사의한 방편(方便品)

경(經) 바이살리 성에는 유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과거세부터 많은 부처님을 존경하여 선근을 쌓았으며, 많은 부처님을 예배하고 만물은 원래 불생(不生)이라는 앎을 얻었으며, ... 중략
심오한 법의 본질에 정통했고, 반야바라밀다를 완성했고,... 중략, 모든 부처님의 칭송을 들었으며, 모든 천신으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는 이였다.
그가 바이살리 성에 머물던 이유는 자신의 뛰어난 방편력으로 중생들의 우둔한 근기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일념에서였다.


설(說) 이 문구는 유마거사같이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보살의 경지에 이른분께서 어찌 인간의 몸으로 바이살리성에 머물렀는지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유마거사는 만물은 원래 불생(不生) 곧 나지 않는 다는 진여의 이치를 이미 견성하신분이시며, 반야바리밀다를 완성했다 함은 최소 제8 부동지 이상의 보살의 지위에 오르신 분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보살이시기에 부처님의 10대제자인 사리불, 목련, 수보리, 대가섭...의 큰 제자분들도 스스로를 낮추어 대중이 큰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리석은 범부와 같은 언행을 보이신것입니다.
제 글을 읽고 계신 벗님중에서는 세상의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서열 나누기의 함정에 빠지어 어리석은 10대 제자들 보다 수승한 재가 법사의 설법이란 오해의 관점으로 유마경을 읽는 우를 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경(經) 유마거사가 그의 문병온 벗들에게 말했다.
'벗들이여, 여래의 몸이란 곧 법신(法身)을 말함이니 이는 바른 앎으로부터 생긴다.
여래의 몸은 공덕에서 생기고 보시에서 생긴다, 또한 계를 지키는 데에서 생기고 삼매에서 생기고, 지혜에서 생기고, 해탈을 자각하는 앎에서 생긴다.
또한 자비희사(慈悲喜捨)에서 생기며, 보시와 규범과 자제(自制)로부터 생기고, 십선(十善)을 실천하는 데에서 생기고, 인내와 온정에서 생기고... 중략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선을 실천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대들은 이와같은 여래의 몸을 믿고 따르는 마음을 길러야 하며, 특히 모든 사람들의 번뇌라는 병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같이 바르게 완성된 깨달음을 향해 크게 발심해야 하는 것이다.'


설(說) 법신불이란 세상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자체를 말함입니다.
진여, 혹은 참나로 표현 되는 진리를 찾고자 머나먼 여행길에 오른 수행자가 각고(刻苦)의 고난을 이겨내야 찾아낼수 있는 숨겨진 보물이 아닌 그 여정의 시작과, 여정중 만나는 모든 고난, 번뇌... 모든 것이 바로 불성이며, 그 모든 것이 바로 법신불의 체화(體化)된 모습입니다.

불성을 다른곳에서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큰 상(아상, 인상, 중생상)을 버리지 못하기에 바르지 못한 관념일뿐이며,
불성을 모든 중생에게서 찾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는 견성이 머지 않은 바른 수행자라 할것입니다.

유마경에서 여래의 몸 곧, 법신을 바른 앎, 보시, 계율, ... 해탈을 자각하는 앎에서 생긴다고 함은 그러한 바른 행을 통해 스스로의 상을 벗어던질수 있기에 비유를 들은 것입니다.
보시와 계율을 통해 바른 앎과 해탈을 자각하는 앎을 터득하게 된다면,
곧 견성을 하게 된다면 그 법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모든 중생, 그리고 모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곧 법신불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리 설한것입니다.

유마경에 비유를 들은 법신이란 ...앎으로 부터 생긴다는 표현은 잘못 오역된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범어는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 무식한 범부이나, 진여의 관점에서 재해석을 한다면
'법신이란 바른 앎, 해탈을 자각하는 앎을 터득하게 되면 그대 앞에 법신불이 나타남을 알게 될것이다.' 로 번역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제 3장 제자와 보살들의 병문안(弟子品) - 사리불편

경(經)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다녀오라고 하니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유마를 문병할 능력이 없으니 문득 언젠가 제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선정에 들때 유마가 한말이 생각나서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가 좇고 있는 것은 단지 그 방법일뿐 좌선은 결코 수행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원래 심신(心身)이 삼계(三界)가운데 그 모습이 내비치지 않도록 해야 참다운 좌선인 것입니다.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있는 그대로 행주좌와를 내보이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이미 획득한 성자로서의 위의를 잃지 않으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성품마저 지니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그대 마음이 안도 아니고 바깥 사물에도 향하지 않도록 좌선을 행하소서.
그릇된 견해까지도 무시하지 않고 37조도품 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윤회를 부르는 번뇌마저 끊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드는 그런 좌선을 행하소서.>


설(說) 제가 무식한지라 멸진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네이버 지식백과에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멸전정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으로 그 소멸된 마음작용까지 사라지게 하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이라고 합니다.
육식의 마음의 작용을 세밀히 분류하고 분석해 수행을 닦아 나가는 남방불교에서 추구하는 수행경지를 멸진정이라고 합니다.
유마거사는 이러한 멸진정을 추구하는 선정이 바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여래의 설법은 사실 근기가 낮고, 무명에 심히 오염된 일반 대중을 위한 설법입니다.
그들의 수행으로 도달하는 선정의 경지란 것은 흑백논리의 깨끗한 흰색으로 온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쉽습니다.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그저 마음의 번뇌를 극도의 극기훈련과 같은 참선으로 모두 사라지게 하면 경지에 이른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대승불교의 괴각승들의 궤변(詭辯)과 궤행(詭行)에 지치고, 대승불교의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못하고 스스로 좌절에 빠진 이들은 이러한 남방불교에 빠지게 되곤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쉬운 이치이며, 약간의 지식으로도 지자(智者) 행세를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북에도 그러한 남방불교에 빠져 하찮은 지식으로 선지식 행세하는 우둔한 법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법화경이 정통불교에 어긋나는 이단이며, 유마경을 여래의 10대 제자를 바보로 만드는 경이라고 폄하하며, 사리불을 식충이로 만드는 경이라고까지 주장하더군요.
그러한 이들의 궤변에 호응하는 불자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여운 이들입니다.
쉬운 사상이기에 많은 신도를 늘릴수는 있으나, 그 쉬운 사상으로 해탈에 이르기는 참으로 힘든것입니다.

여래의 참된 불법인 대승에서는 그러한 극기훈련으로 쌓은 모든 선정을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멸하려 하는 모든 번뇌 역시 불성이며, 그 번뇌의 업력에 의해 중생은 진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바르고 청정한 마음을 가르치기위한 과도기적 설법이 바로 흑백논리입니다.
그 흑백논리로 최소한의 선한의지를 가진 중생에게는 여래는 청정함의 이치를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마거사는 그릇된 견해까지도 무시하지 않고 37조도품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그런 좌선을 행하라고 사리불에게 가르침을 내리신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승불교에서 가르치는 불성이란 절대 형이상학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원시인이나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현대인의 작은 지식과 문물이 마법으로 보일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의 불성이론 역시 마음이 닫힌자에게는 형이상학적으로 보일수 있으나 마음이 열린이에게는 가장 사실적이며, 현실적인 가르침입니다.


오늘은 이쯤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벗님들께 여래의 한없는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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