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의 1 제 1장 청정한 불국토(佛國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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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의 1 제 1장 청정한 불국토(佛國品)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수) 10 03, 2018 1:23 pm

유마경 강의 1

오늘 부터는 대승불교의 경전중 큰 축을 이루는 경인 유마경을 강의할까합니다.
많은 벗님들께서 이 강의를 읽으시고 부디 청정한 불성과 대자대비한 바라밀행에 눈을 뜨시길 기원하며 강의를 시작합니다.
경의 문답은 너무도 긴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짧게 요약했으니 여래의 생음(生音)을 느끼시고자 하시는 벗님들은 한글 유마경을 일독 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제 1장 청정한 불국토(佛國品)
경(經) 보장보살이 세존께 여쭈자 세존께서 답변하셨습니다.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 설하겠노라.
선남자들이여, 중생이라는 국토야 말로 보살의 불국토이니 보살은 중생의 이익이 증대 되는 정도를 가르켜 불국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국토라는 것은 중생이 바루어져 가는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설(說) 불국토라는 장소는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 있고, 업력을 쌓아 성장하는 중생과 그 중생들을 이끌 보살이 있는 모든 장소가 바로 불국토입니다.
중생이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불국토는 먼 별나라 이겠지만, 보살이 바라보는 불국토란 모든 중생이 머물고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모든 성내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시기하고, 사랑하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진여의 관점에서는 한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빠르게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특급열차이며 범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특급열차에서 원한과 사랑이 생기더라도 열차에서 내릴때(보살지위에 입문할때)가 되면 그런 원한과 편협한 사랑은 모두 잊혀지고 한없이 청정한 마음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경(經) 불국토에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면 중생이 과연 부처님의 앎에 도달할수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의 깊이에 따라 불국토에 가고 못가고가 정해진다.
불국토에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하면, 사람들이 과연 성자들과 동등한 근기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의 깊이에 따라 불국토에 가고 못가고가 정해진다.
그 이유는 보살에 있어서 불국토라고 하는 것은 결코 중생의 이익에 무관하여 성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說) 여기서 불국토에 가려는 자의 주체는 보살이 아닌 중생의 관점입니다.
제가 댓글에서 몇번 말씀 드렸지만 혹시나 그글을 안 읽어보신 벗님들이 계실까 싶어 다시한번 부연설명 드립니다.
부처님의 설법엔 그 설법의 전제와 대상을 설명하는 부연설명이 빠진 법문이 참으로 많습니다.
언제나 많은 각각의 근기가 다른 제자들이 있어서 혹시라도 여래의 말씀을 교묘히 변형하여 재해석 하는 무리들을 경계하신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래 입멸후 2,500년이 지났으나 어찌 된것이 제 눈에는 그 전제와 대상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놓으신 스님이나 위대한 법사님의 설법이 안보이더군요.
물론 좁은 제 지식으로의 관점이니, 만약 벗님들중 불경과 불교에 대한 학식이 뛰어난 분이 계시다면 전제와 대상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놓으신 과거의 선지식의 글을 알고 계시다면 이야기 해주십시오.
저도 선대의 선지식의 깨달음의 글을 읽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유마경과 앞으로 강의할 능가경에서는 철저히 그 전제와 대상에 대한 부연설명을 같이 들며 강의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사실은 가장 청정한 진여로의 급행 열차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급행 열차는 중생의 번뇌의 깊이가 크면 클수록 빨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생의 그 많은 번뇌중 최고의 번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相)에 대한 의문이며, 그 상을 여의는 중생은 바로 보살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관점을 중생에서 보살로 돌린다면 보살에게 있어서 불국토란 것은 모든 중생이 가장 큰 이익을 볼수 있는 장소이며, 그 장소는 바로 이 사바세계입니다.
사바세계의 거칠고 험한 모든 감정이 바로 진여의 길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급행열차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중간의 과정을 마지막 과정이란 착각하며, 지금 겪는 처절한 고통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기에 세상은 지옥이며 수라라고 이야기 하곤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은 오직 성장을 위한 과도기적 단계 일뿐 사실 이세상이 바로 불국토입니다.
중생 관점에서 세상이 곧 불국토가 되는 시점은 모든 중생이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위대한 마음을 가지는 그 순간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제 의식의 깊이에 따라 불국토에 가고 못가고가 정해진다.’
 이 문구는 어리석은 중생을 경계하기 위한 문구입니다.
불경에서 특정 중생은 불국토에 못가고, 불성이 없어서 영원히 성불할수 없다는 말이 소승경전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를 일러 어떤 벗님들은 기독교의 선악 논리처럼 불교에서도 선과악의 큰 개념을 논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러한 선악 논리는 어디까지나 방편으로 행한것일뿐 모든 중생은 위대한 불성을 소유한, 모두가 미숙한 아기 보살인지라 모두가 언젠가는 성불할 위대한 기억잃은 부처님입니다.
그 어떤 악당도, 그 어떤 미숙하고 미숙하기에 어리석은 가엾은 이도 다 위대한 불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여래의 불법에서는 절대 그 어떤 미천하고 하찮은 이일지라도 차별과 업신여김은 있을수 없습니다.


경(經) 정작 불국토는 중생세계가 아닌 공중에는 만들어 질수도 장식되어 질수도 없는 것이다.


설(說) 예수님의 잊혀진 제자가 기록한 도마복음에 보면 이와 비슷한 문구가 나옵니다.
‘천국이 저 하늘 나라에 있다고 믿지 말아라.
만약 천국이 저 하늘에 있다면 너희들 보다 새가 먼저 천국에 이를 것이다.
천국이 저 바닷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지 말아라
만약 천국이 저 바닷속에 있다면 너희들 보다 물고기가 먼저 도달할것이다.
천국이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도마복음이 정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그들의 말처럼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고, 그 강요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 재주꾼이 아닌 참으로 깨달은 성자라는 것이 증명되는 문구입니다.


경(經) 사리불이 말했다.
‘범천이여, 나에게는 이 대지가 높고 낮은 언덕과 수풀과 낭떠러지와 산마루와 도랑과 진흙등으로 온통 뒤범벅된 것처럼 보입니다.’
범천이 말했다.
‘불국토가 부정하게 보이는 것은 그대 자신의 마음속에 아직 분별심이 있어서 이기 때문이며, 그대의 염원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가지며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이 청정한 이에게는 모든 곳이 청정한 곳으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설(說) 사리불은 육식(六識)의 관점으로 질문하였고, 범천은 진여의 관점으로 답변했습니다.
아라한인 사리불이 진여의 관점으로 답변을 할줄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고, 일반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질문한것입니다.
이러한 대목을 두고 어떤 어리석은 이는 대승 불교에서는 승가를 낮추어보고 비웃기 위해 유마경이란 불경을 임의로 만든것이란 이야기도 하더군요.
낮은 확률이지만 만약 유마경이 여래의 말씀이 아닌 대승불교의 한 스님이나 재가 법사가 지어낸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다해도 그 스님은 정말 위대한 보살의 경지에 이르신분이십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위대한 깨달음이 담겨있는 경은 지을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닐지라도 그 경에는 위대한 힘이 담겨있습니다.
위대한 보살이 아니라면 이러한 경전은 설할수도 없고 지을수도 없기때문입니다.
벗님들이라도 이제는 유마경의 위경논란을 멈추셨으면 좋겠습니다.



경(經) 세존께선 온갖 신통 변화로 무한한 공덕이라는 보배로 장식되어 있는 사바세계를 사리불에게 보이며 이르셨다.
‘사리불이여, 이 불국토는 영원토록 이런 모습이었건만 여래는 짐짓 저 우둔한 중생들을 점차적으로 깨우치기 위하여 이 불국토에 그토록 많은 흠집과 부정이 널려 있는 듯이 보이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설(說) 흠집과 부정이 널린 사바세계를 중생에게 보이는 이는 인간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함이 아니고 법신불을 말함입니다.
경문의 이대목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신불의 관점으로 사리불에게 설하신것입니다.
중생이 겪고 있는 모든 고난은 미숙한 진여를 보다 더 완벽한 진여로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진여의 관점에서는 미숙과 완성이란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다만 사바세계의 언어로 진여의 형질을 설명하려하니 설명할수 없어 억지로 갖다 붙힌 표현일뿐이니 혼란 없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과정속에 존재하는 존재일뿐 사실 우리의 근원과 미래의 완성형은 위대한 부처님인것입니다.
스쳐가는 과정일 뿐이나 그 과정에 태어나고 죽은 중생은 과정을 영원이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험난하고 서럽고 슬픈 삶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겪는 삶이 고통스럽고 한이 맺힌다고 해도, 그 고통과 한은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것이지 어리석지 않고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그러한 고통과 한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이 자타불이의 위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날이 이 고난의 삶을 끝낼수 있는 그날입니다.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모든 이들에게 보시하고,
모든 이들의 어리석음을 인욕하는 참다운 불자님들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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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후배의 회사에 잠시 출근하여 용돈벌이나 해볼까하다가 아무래도 사장으로 20여년을 살다가 고문으로 일하려니 적성에 안맞아서

다시 제 사업 시작하려고 시장조사하고 사무실 알아보고 하느라 정신없는 일주일 이었습니다.

사업이 시작되고 조금만 안정화 되면 다시 시간 여유가 많이 생기니 그때는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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