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3)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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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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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인도네시아-3)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②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5:06 am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②

사진1: 의정법사가 11년간 유학한 인도 날란다 대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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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삼장법사(義淨 635-713)는 약 60권에 달하는 텍스트를 중국어로 한역(漢譯)했다. 그가 한역한 경전은 《물라사르바스티바다 비나야(Mūlasarvāstivāda Vinaya 一切有部毗奈耶)》,《Golden Light Sutra (金光明最勝王經 703 CE)》, 《Diamond Sutra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703 CE), 《Sūtra of the Original Vows of the Medicine Buddha of Lapis Lazuli Radiance and the Seven Past Buddhas (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707 CE)》, 《Avadanas (譬喻經710 CE)》등이다. 의정삼장은 14세에 불문에 입문했는데, 그는 동진의 구법승 법현법사와 당 삼장 현장법사를 흠모했다. 이 두 분 인도 구법승은 실로 엄청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의정법사는 어떤 숨은 불자 독지가의 후원에 힘입어서 인도 날란다 대학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중국 남부 광동성 광주에서 페르시아의 상선에 올라서 오늘날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인 스리비자야 왕국에 도달하게 되었다. 광주에서 여기까지는 22일이 소요됐고, 이곳에서 의정법사는 6개월간 산스크리트어와 말레이어를 배웠다. 날란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일종의 어학 코스를 이곳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마스터한 것이다. 그때가 기원후 673년경이다.

사진2: 의정삼장이 인도 구법 길에 머무르고, 한역(漢譯) 작업을 했던 수마트라 팔렘방(좌측 노란색 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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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곳 사람들과 풍습을 기록했는데, 사람들이 곱슬머리에 몸은 까만색이고 맨발로 다녔다고 하는데, 아마도 열대지방이라서 반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섬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의정법사는 인도동부 해안에 도달해서, 그곳 사원에서 1년간 중.고급 산스크리트어를 더 배우고 나서 두 사람은 상인들을 따라서 30여 공국(제후국)을 거쳐서 날란다 대학을 향해서 떠났는데, 중도에 의정 법사는 병으로 쓰러져서 더 이상 걸음을 내디딜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병고로 인하여 일행에서 쳐지자, 강도를 만나서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가 듣자하니 이곳 사람들이 하얀 피부를 벗겨서 신에게 희생으로 바친다는 소리를 듣고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고 아랫부분은 나뭇잎으로 가리고 겨우 사지(死地)를 빠져나와서 날란다에 이르렀고, 그는 이곳 날란다에서 11년간 유학생활을 하게 된다.

사진3: 불교를 적극 후원했던 무측천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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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년 경, 의정법사는 11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당나라로 귀국하는 길에 스리비자야 왕국에 도달하여 머무르게 된다. 당시 팔렘방은 외국의 불교학자들이 집결한 불교학 연구 센터였다. 의정법사는 2년간 이곳에 머무르면서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에서 중국어로 한역을 했고, 689년 광주에 돌아와서 잉크(먹)와 종이를 구해서 그 해에 다시 스리비자야 왕국인 이곳 팔렘방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695년에 어느 정도 한역이 완성되자 중국 낙양에 돌아왔고, 무측천(Wu Zetian 武则天 624–705, 재위 690-705)의 대환영을 받았다. 그는 25년간 의 구법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이다. 4백여 권의 불전 번역 텍스트를 가져왔고, 여행기인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Account of Buddhism sent from the South Seas)》과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Buddhist Monk's Pilgrimage of the Tang Dynasty)》을 남기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인 스리비자야왕국과 인도의 생활상과 불교에 대한 여행기이며, 또한 당대 인도구법 유학승들에 대한 정보 등이다. 중국은 물론 신라에서 온 구법유학승들의 이름이 나오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의정법사는 스리비자야의 불교학 연구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칭찬하고 있으며, 중국의 인도구법승들에게 날란다 대학에 바로 가기 전에 스리비자야 왕국의 팔렘방에 가서 먼저 예비과정을 밟고 가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보가(Bhoga) 지역에는 1천여 명의 비구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교학연구와 수행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곳에서 배우는 교과과목은 전부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교과과목도 동일하다고도 했다. 규율과 의식(儀式)도 동일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어느 인도 구법승이 인도에 가서 유학하려고 하면 스리비자야 왕국에 가서 1년이나 2년 정도 예비과정을 마치고 규율(계율)도 확실하게 익히고 가라는 길라잡이 역할의 친절한 권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법사가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이웃 섬에서 온 다른 승려들을 만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4-5일 정도 배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자바 같은 섬나라에서 온 승려들의 동정과 동남아시아의 불교가 매우 흥성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정삼장에 의하면 남쪽 바다의 섬나라의 많은 왕과 족장들은 불교를 믿고 좋아하고,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좋은 선행을 해야 한다는 불교적 믿음이 강한 자세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대부분의 지역을 다루면서 소승(상좌부)과 대승불교를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북인도 지역과 동남아시아 불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도 수마트라와 자바 지역의 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북인도와 수마트라 자바의 상좌부를 다루고, 중국과 말라유의 불교는 대승불교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법사는 다양한 니까야(종파)와의 관계와 초기불교 니까야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으며, 뿌리가 다른 지파(支派)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본래는 4개의 니까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네 개의 니까야는 마하상기카(Mahāsāṃghika), 스타비라(Sthavira), 물라사르바스티바다(Mulasarvastivada)와 상미티야(Saṃmitīya)라고 소개하고 그 니까야의 교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4: 마하상기카에 속했던 아잔타 석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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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마하상기카(대중부)에 소속했던 카를라 석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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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상기카(Mahāsāṃghika महासांघिक 大眾部)는 대중부라고 하는데, ‘큰 승가’란 의미이다. 한역(漢譯)에서는 ‘대중부’라고 하는데, 특히 계율 상에 있어서 초기승가의 계율에서 다소 변화를 가져온 승가이다. 말하자면 부처님 당시부터 제정되어 있던 율장(律藏)을 시대에 맞게 어느 정도 개정하고 다소 진보적인 성향의 승가이다. 대중부가 대승불교로 발전하는데 초기의 역할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마하상기카(대중부의)의 본거지는 마가다 지역인데, 이 지역은 불교가 출발한 지역인데, 마투라 지역에도 대중부의 센터가 있었다. 대중부 계통인 계윤부 (Kukkuṭika 雞胤部)는 바라나시와 파탈리푸트라에 본부가 있었다. 이 밖의 대중부계열의 일설부(Ekavyāvahārika एकव्यावहारिक一說部)와 설출세부(Lokottaravāda लोकोत्तरवाद; 說出世部)는 기원전 2세기 경, 서북 인도인 페샤와르에 있었고, 다문부는 코살라에 있었다. 이밖에도 대중부 계열은 다문부(Bahuśrutīya 多聞部), 설가부(Prajñaptivāda 說假部)와 Caitika (制多部) 등이 있다.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과 카를라 석굴사원은 다 대중부에 소속된 석굴사원들이다.

스타비라 니까야( Sthavira nikāya स्थविर 上座部)는 경전결집 전부터 태동한 장로보수파라고 할 수 있는데, 마히사사카(Mahīśāsaka महीशासक化地部), 담마굽타카(Dharmaguptaka धर्मगुप्तक法藏部), 카샤피야(Kāśyapīya काश्यपीय飲光部), 사르바스티바다(Sarvāstivāda सर्वास्तिवाद 說一切有部)와 비바하쟈와다(Vibhajyavāda विभाज्यवाद分別說部)등이다. 현재 부파불교는 소멸하고 없지만, 분별설부를 계승한 테라와다(Theravāda स्थविरवाद 上座部)만이 존속하고 있다.
마히사사카도 제2차 경전결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담마굽타카(법장부)가 이 마히사사카인 화지부에서 파생했다. 이 상좌부 계통의 담마굽타카인 법장부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파됐다. 율장의 측면에서 본다면, 중앙아시아(서역)와 중국(한국)은 상좌부 계열이다. 카샤피야(飲光部)는 아소카 대왕이 히말라야 지방으로 보냈던 카샤파(Kāśyapa) 비구로부터 유래한다고 본다. 사르바스티바다(說一切有部)는 서북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상당히 번성했던 니까야이다. 근본설일체유부(Mūlasarvāstivāda)는 사르바스티바다(說一切有部)에서 분파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티베트와 몽골 불교의 율장은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 계승한 것이다.

사진6: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 계승한 티베트 라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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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법사는 상미티야(Saṃmitīya 正量部)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 정량부는 푸갈라와다(Pudgalavāda 補特伽羅論者)에서 분파한 니까야이다. 티베트 역사학자 부톤 린첸 드룹에 의하면 마하상기카(대중부)는 프라크리트어(俗語)를 사용했고, 스타비라바다(Sthaviravāda)는 파이사치어로 일종의 속어를 사용했다고 하며, 정량부는 아파브랑사(Apabhraṃśa)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의정법사는 현장법사 이후, 인도 날란다 불교와 스리비자야 불교를 중국에 수입한 인도구법승이다. 기회가 되면 의정법사에 대한 소개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고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자.

사진7: 스리비자야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해상 무역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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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영한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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