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불교를 가다- 3 /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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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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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서역불교를 가다- 3 /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 (1)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6:25 am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 (1)

(사진1: 박트리아 지도)
실크로드를 이해하고 서역구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시안(西安) 못지않게 실크로드 서쪽편인 서역과 중앙아시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크로드 상에서 불교에 집중할 때, 우리는 그레코 불교를 만나게 되고 쿠샨왕조를 만나게 된다.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의 불교 확장 정책에 의해서 불교는 동쪽으로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졌고, 또한 실크로드를 타고 서쪽으로는 시리아 터키 그리스 지중해까지 확장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레코불교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 기점을 시안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신라 경주까지 더 나아가서는 일본의 교토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경주시에서는 이런 생각아래 경주에서 이스탄불까지란 주제를 내걸고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입안해서 교류하고 있다. 전회에서 시안을 대강 소개했는데, 시안은 두고두고 소개해도 모자랄 정도로 소재가 무궁무진한 불교역사의 현장이다. 실크로드를 연구하고 소개하면서 우리는 불교에 집중할 때, 그레코 불교에 주목하게 되고 쿠샨왕조를 선행 지식으로 담아놓지 않으면 전체그림이 들어오지가 않는다. 그레코 불교는 그레코+불교의 합성어이다. 그레코는 그리스를 말한다.

그레코-불교라고 하면 그리스문화와 불교 사이에서의 문화적 혼합을 말한다. 기원전 5세기 박트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트리아란 나라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걸쳐 있었고, 고대 이란계 문명이었다. 파미르 고원과 아무다리야의 남쪽 평원에 위치하며 간다라 주위에 둘러싸여 있었다. 박트리아는 조로아스터교(敎)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기원후 7세기 무슬림이 오기 전에는 불교가 주인이었다. 박트리아는 인도 亞 대륙에 있던 인도-이란어파와 인도유럽어족 계통이었다. 박트리아 인들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남부에 거주하고 있는 타지크 족 선조들의 일파다. 박트리아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으로, 근래에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지칭하는데 쓰인다. 기후가 적합한 산지로, 물이 많고 땅은 비옥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레코-불교는 헬레니스틱(그리스)문화와 불교와의 문화적 혼합주의를 말한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까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지역의 인도 서북지역 경계인 야무나 강과 카시미르 지역에서 형성된 문화적 혼합으로 그레코-불교는 탄생했다. 그레코-불교는 알렉산더대왕의 인도침입으로 시작되고 이후 이 지역에 인도-그리스 통치가 수세기동안 전개되어 오면서 형성됐다. 오랜 기간의 이런 문화적 영향에 의하고 쿠샨의 그리스제국화의 번성기간 동안에 더욱 그레코-불교는 확장됐다. 그레코-불교는 기원 1세기 경 대승불교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궁극적으로는 중국, 한국과 일본에 수용되기 이전의 대승불교의 흥기에 이념적 동기를 부여했으며, 특히 대승불교의 예술인 미술 조각 건축 등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레코는 그리스를 말하는데, 그리스의 헬레니즘은 무엇인가. 헬레니즘(Hellenism)은 넓은 의미에서 주로 고대 그리스에서 전파된 문화와 사상을 일컫는다. 좁은 의미에서는, 드로이센이 19세기 초에 규정한 것으로, 알렉산더 대왕 이후의 그리스 문화의 급격한 전파를 말한다.
헬라스 시기(Hellenistic period)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3세)이 죽은 이후, 그리스 반도가 로마에 의해 편입된 기원전 146년을 말한다. 로마의 점령은 헬레니즘의 단절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며, 기독교의 부흥으로 헬레니즘의 명맥이 꾸준히 유지되어 왔기에, 단지 그리스의 독립적인 정치체제가 끝나는 시기로 잡은 것이다. 헬라스 시기에는 그리스어를 말하는 많은 도시국가들 중에서도 그리스 연맹(현재의 그리스를 생각하면 된다)이 강조되었다. 이중 핵심을 이루는 곳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하의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와 셀레우시드 하의 시리아의 수도인 안티오크였다. 이처럼 헬레니즘 문화는 많은 종교들을 단합한 자유로운 문화라고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지식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로마는 기독교가 도래할 때까지 바꾸지 않고 남아있던 그리스 사회와 문화를 파괴하지 못했다.

(사진2: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혼합주의(Syncretism)는 다양한 사상과 학파의 혼합수행에서 특히 종교에 있어서 신학과 신비주의 문학 음악의 혼합주의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종류 혹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 안에서 공존 시키고 다양한 학파의 사상을 융합하기 위한 노력이다. 특히 신학, 종교적 신화의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몇 개의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유추하여 저변에 깔려 있는 조화를 공고히 하는 시도로 나타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 로마 제국 시대에 각지의 다른 종교들이 서로 결합되었다. 3세기에 이란의 마니는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불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마니교를 창시하였다. 16세기에는 무굴 제국의 구루 나크가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시크교를 창시하였다. 동아시아에서의 혼합주의는 3교합일(三敎合一)로 나타나 불교, 유교, 도교를 혼합하였다. 알렉산더 대왕(그리스어는 알렉산드로스, 기원전356년-기원전323년)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으로서 20세에 왕위에 올랐다. 페르시아제국을 점령하고, 기원전 326년에는 북인도로 진출하여 정복하고, 이집트도 정복했다. 기원전 334년부터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10년 만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지치지 않는 정복에서 오는 피곤과 스트레스 등이 힘들게 하고 병사들은 전염병 등으로 많은 병사가 사망했고 결국 알렉산더는 열병으로 죽었다. 그는 제국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세웠다. 도시들 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서융합정책은 동방과 서방문화가 융합되어 간다라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냈으며 불교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헬레니즘의 그리스와 불교가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대왕이 아카메니드 제국( Achaemenid Empire)을 정복하고 나서 기원전 334년 인더스와 히다스페스 강을 가로질러서 불교의 본 고장인 인도와 접촉하면서다. 알렉산더는 옥서스(Oxus)와 박트리아(Bactria)에 몇 개의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그리스 이주민들을 카이버 고개(Khyber Pass)를 넘어서 간다라와 펀자브 지역까지 진출시켜 영향권을 확대했다. 이 지역들은 히말라야와 힌두쿠시 산맥 사이를 잇는 유일한 지정학적 통로이면서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관문역할을 하는 전략요충지이다. 이 지역은 히말라야와 힌두쿠시 산맥사이의 통로이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문화교류와 무역의 중심역할을 하는 지역으로서 그레코-불교의 산실이기도 하다. 알렉산더는 이 지역을 정복하고 다시 그리스로 귀국하던 중 소아시아에서 불의의 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23년 6월 10일에 사망한다. 알렉산더의 후계자들 디아도코이(Diadochoi)들은 기원전 323년 소아시아(Asia Minor)와 중앙아시아에 그들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더대왕의 후계자는 셀레우코스인데 그는 셀레우코스 왕국을 세웠다. 그의 왕국은 지금 터키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나중에 동 셀레우코스 왕국은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에 의해서 무너지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진3: 인도-그리스왕국)
그레코-불교(Greco-Buddhism)는 그리스가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인도에 그리스 왕국을 세우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박트리아를 비롯해서 그리스-인도 왕국이 세워진 서북부 인도의 간다라 지방인 탁실라를 중심으로 해서 융합된 문화이다. 탁실라는 나란다와 함께 인도 고대 교육의 중심지의 하나이기도 한 문화도시였다. 특히 쿠샨왕조에 이르러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사실상 쿠샨왕조는 그리스 계라기 보다는 페르시아 계에 가깝지만, 박트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리스-인도 왕국을 계승함으로써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인도의 불교를 동시에 받아들인 타림분지의 초원 출신의 월지 민족이다. 하지만, 쿠샨왕조는 양 문화를 융합하여 그레코-불교문화를 재창조함으로써 그레코-불교史에 획기적인 분수령을 만든다. 쿠샨왕조는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장악하면서 동시에 불교문화를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아시아로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승불교를 탄생시켜 동아시아로 전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레코-불교의 영향을 깊게 입은 대승불교의 흥기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1세기 서북 인도에서 매우 강한 다문화적인 영향에 의해서 형성된 특이한 종교문화형태다. 초기대승불교운동은 그리스-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됐다. 초기대승불교와 정토사상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발전확장된 것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불교사상은 힌두의 박티(헌신)사상과 페르시아와 서북인도로부터 걸러진 그레코-로만(그리스-로마)의 신관(神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 진다.

(사진4: 쿠샨제국의 판도)
쿠샨 제국은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이었다. 월지 민족이 세웠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 등과 교역했다. '쿠샨'은 중국어로 월지족의 다섯 민족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인 '귀상(貴霜)'에서 왔다. 월지 족은 토카리어 군의 말을 썼던 사람들을 아울러 부르는 말로, 중국 역사가들에 따르면 휴밀(休密), 귀상(貴霜), 쌍미(雙靡), 힐돈(肸頓), 도밀(都密) 다섯 부족으로 나뉜다. 그들은 원래 타림 분지의 초원에 살았으나, 기원전 176년-160년 흉노에 의해 서쪽으로 이주했다. 월지 족은 기원전 135년경에 그리스 계의 나라였던 박트리아를 만났고 이를 점령하여 다섯 부족의 나라로 나누었다. 이후 기원전 1세기에 귀상 족이 나머지 네 부족을 정복시켰다. '귀상'이라는 이름은 서양에 '쿠샨'으로 전해졌지만 중국에서는 쿠샨 제국을 계속 월지라 불렀다. 처음 쿠샨 제국은 그들이 정복한 박트리아의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 문자를 썼고, 그리스를 본 따 동전을 만들었다. 쿠샨 제국은 인도양을 통한 무역과 실크 로드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쿠샨 제국은 동서양의 문화를 포용하여 그리스 문화와 불교문화가 융합된 그리스 식 불교가 발달하게 하였는데, 이는 사방으로 퍼져 중국에는 대승불교로서 전해졌다. 쿠샨의 카니슈카 1세는 인도의 아소카와 메난더 1세와 함께 불교를 부흥시킨 왕 중 하나였다. 그는 카시미르에서 불교 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는 대승불교가 부파(Nikaya)에서 분리해 새로운 분파인 대승불교로 시작했다고 공포했다.

그레코-불교예술은 그레코-불교의 표명이다. 고전 그리스 문화와 불교의 문화혼합주의는 중앙아시아에서 1천 년간 발전됐다. 알렉산더대왕의 인도침략인 기원전 4세기에서 이슬람침입인 7세기까지의 약 1천 년간이다. 아시아에서 그레코-불교 예술은 이상주의적인 헬레니즘적인 예술과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부처의 최초의 표현으로 성격 지워진다. 그레코-불교 예술의 전형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기원전250-130년)에서 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을 시작으로 해서 인도-그리스왕국(기원전180-기원전10년)으로 점차 퍼져 나갔다. 인도-그리스 왕국들과 쿠샨왕조아래서, 간다라의 그리스와 불교문화의 상호교섭은 북부 파키스탄지역에서 인도로 퍼져 가기 전에, 마투라에 영향을 미치고 굽타왕조의 힌두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레코-불교예술은 중앙아시아로 퍼져갔다. 타림분지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궁극적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에 영향을 줬다.

기원전 2세기와 기원전 1세기 사이에 부처의 의인화된 묘사가 나타난다. 초기 불교예술에서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예술에서는 탑이나 보리수, 공석인 금강보좌, 법륜, 족문(足紋)으로 상징을 했다. 부처의 이미지는 조각 예술의 모습으로 개선되었다. 헬레니스틱의 그리스풍의 조각예술로서 그리스풍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바뀐다. 부처의 이미지는 간디옹이 입은 인도 풍의 도티(dhoti)를 착용했는데,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서 부처의 이미지는 그리스의 히메이션(himation)풍으로 바뀐 것이다. 헬레니스틱의 문화영향아래서 그레코-불교예술은 불상의 이미지를 보면 인도-그리스, 인도-스키타이안, 인도-파르티안, 쿠샨의 순으로 발전해 가는데, 신과 보살의 비교도 흥미롭다.

(사진5:우주베키스탄에서 발견된 쿠샨왕자 두상 조각)
타림분지에 2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발전된 예술을 세린디안(신강)예술이라고 부른다. 간다라 예술에서 기원한다. 그리스-로마와 인도의 예술이 조화를 이룬 예술이다. 실크로드를 따라서 불교 전도 승들에 의해서 이 예술이 전파되었다. 신강예술은 간다라와 중국과 페르시아 예술이 섞인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은 그레코-불교예술의 영향을 받아들였고, 많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문화요소가 첨가되었다. 그리스 예술의 이상주의적 사실주의가 강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리스 식의 겹친 옷이라든지 지중해풍의 곱슬머리 등에서 이런 영향을 볼 수가 있다. 그레코-불교예술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인도침입에서 기원후 7세기 이슬람의 침입까지 중앙아시아에서 1천 년간의 발전된 고전그리스문화와 불교와의 문화 혼합주의로서 이것은 그레코 불교예술의 혼합주의의 발현이다.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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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입수되는 즉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잃어버린 글을 다시 찾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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