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불교(西域佛敎)를 가다-2 /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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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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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서역불교(西域佛敎)를 가다-2 /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②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6:10 am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②

(사진1: 실크로드의 육상과 해상의 주요 경로.)
실크로드는 무역과 문화전달의 루트이다. 무역과 문화전파는 아시아 대륙의 동서를 가로질러서 이루어졌는데, 이런 역할을 한 사람들은 상인들, 순례자들, 승려들, 군인들, 유목민과 다양한 시대동안 중국과 인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도시 거주자들이었다. 실크로드는 6천4백km에 이르는 엄청난 거리이다. 육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비단이 주요 품목이었다. 비단무역은 돈벌이가 되었기에 무역의 주 품목이었지만, 운송물품은 비단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로 거래된 품목의 주요물품은 중국비단이었다. 그래서 실크(비단) 로드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비단 무역은 한나라(漢 206BC-220AD) 시기에 시작됐다고 한다.

실크로드(Silk Road)인 비단길은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이전의 동서 교역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동(東), 서(西)라 함은 중국과 유럽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크로드라는 언어의 기원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 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교역 품들을 전달하는 통로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가 유통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중국 역사학, 교류사, 그리고 중앙아시아사에서 실크로드 연구가 가지는 입지는 크다고 하겠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동서를 잇는 횡단 축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북의 여러 통로를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한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서 실크로드의 개념 또한 확대되게 된다. 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해 수만 갈래의 길로 구성되어 있는 범세계적인 그물 모양의 교통로이다. 이 실크로드의 중국 쪽 관문이 바로 서안(장안)이었다.

중국불교 공부를 하다보면 장안(서안)이나 낙양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현장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한동안 우리는 중국불교의 현장을 보는데 있어서 거의 반세기동안 단절의 시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한.중 수교가 시작되면서 중국불교의 현장은 우리의 시야에 포착되었는데,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것은 1992년 8월 24일이었다. 중국은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 중국불교를 알지 못하고 한국불교를 논한다는 그 자체가 안개속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우리문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불교문화에 있어서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세계불교가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남방 상좌부 불교, 티베트-몽골과 히말라야 산맥의 밀교(금강승) 전통과 대승권인 동아시아 불교가 외형상 그 모습이 다르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2천5백년이 흐른 지금, 불교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되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불교의 전통은 너무나 다르게 발전.형성되어 있다. 현장법사가 활약한 시대가 7세기인데, 불교가 중국 땅에 들어 온지가 어언 6백년이 지났지만, 인도불교의 실상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대개 북인도나 서역 출신 빅슈(비구)들에 의해서 인도불교를 접하고 있었다. 서역 출신들은 주로 장안(서안)이나 낙양에서 활동을 했다. 서안은 이처럼 실크로드의 모든 것이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전회에서도 대강 서안을 소개했지만, 21세기인 현재의 서안은 중국에서도 대도시에 속하고 역사도시로서의 비중이 큰 지역이다. 중국역사는 하은주(夏殷周)로 시작되는데,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부터 1600년 까지 470년간 지속되었고, 은나라는 상(商)나라라고도 하는데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부터 1050년까지 571년간 지속되었으며, 주나라는 서주(西周) 동주(東周)로 나뉜다. 서주는 기원전 1050년부터 770년까지 275년간 존속했으며, 동주는 기원전 770년부터 250년까지 514년간 지속되었다. 다음은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가는데,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부터 47년까지 295년간이며, 전국시대는 기원전 476년부터 221년까지 255 년간이다. 중국역사에서 이 기간은 연합왕조시대라고 부른다. 이후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시대가 열리는데, 진나라 한나라 삼국시대가 전개된다.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부터 206년까지 15년간 존속되었지만, 중국의 최초 통일왕조이다. 다음은 한나라인데 한나라도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으로 갈린다. 서한은 기원전 206년부터 기원후 25년까지 215년간이다. 동한이 다시 세워지기 전에 신(新)나라가 기원후 9년부터 23년까지 14년간 불안한 존속이었다. 동한은 기원후25년부터 기원후 220년까지로 195년간이다. 동한을 후한이라고도 하는데, 공식적으로 중국불교는 후한 명제 때 공인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중국 역사를 서안과 관련해서 보면, 주나라 때 서안은 풍경(豊京)과 호경(鎬京)을 합쳐서 풍호라고 불렀다. 서주는 기원전 771년 견융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동주를 세웠는데, 지금의 서안이 다시 수도가 된 것은 진나라 때인데, 진나라도 얼마가지 못하고 한나라가 서게 되었는데, 불교는 장건에 의해서 서역을 개척하고서도 한 참 후에 한 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발전하게 된다.

(사진2: 한나라를 세운 초대황제인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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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漢, 기원전 206-기원후220)는 진나라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나중에 삼국으로 갈라졌지만,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한나라는 약 400년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195)은 한나라(漢)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195)이다. 자는 계(季)이다. 패현(沛縣)의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진(秦)에 맞서는 봉기에 가담하고서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한때는 관중(關中) 땅을 지배 아래 두었다가 항우(項羽)에 의거해 기원전 206년 서부 한중(漢中)에 좌천되어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웠다. 정식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諡號)는 고황제(高皇帝)이며, 일반으로 고조(高祖)로 불린다. 한나라 고조는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용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한나라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다. 자, 이제 중국불교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풀어 가보자.

중국의 불교는 한전불교(漢傳佛敎)라고 말한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서력기원 전후였으며, 처음 전해진 불교는 인도 불교가 아닌 서역 불교였다. 후한(後漢: 기원후25~220) 말인 2세기 후반에는 서역과 인도에서 온 역경승(譯經僧)들에 의해 불경이 한역되기 시작하면서 불교는 중국에서 확실한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다.

(사진3: 타클라마칸 사막은 타림 분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역불교(西域佛敎)는 서역에서 전개된 불교를 통칭하는데, 서역은 중국에 인접한 서방 지역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통 천산 산맥(天山山脈)· 쿤룬 산맥(崑崙山脈)에 둘러싸인 타림분지의 일대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연속된 투르키스탄(Turkestan) 지역을 포함한다. 이 지방은 동서교통의 요충지로서 옛날부터 문화가 꽃피어 중국의 한나라(漢) 시대에는 서역 36국(西域三十六國)의 이름이 알려졌다. 서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간다라 혹은 캐시미르의 서북인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불교가 아소카 왕이 보낸 불교 전도사에 의하여 전해간 것이다. 서역의 불교국으로는 예로부터 대월지국(大月氏國)·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우전국(호탄)·강거국(康居國:호르기스)·구자국(龜玆國:쿠처)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의 불교는 인도로부터 들어온 인도 불교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서역의 문화에 수용되어 변용된 서역화된 불교이다. 또한 이들 나라들의 서역화된 불교가 거점이 되어 불교는 다시 한나라(漢) 시대의 중국 사람들에게 최초로 전파되었다.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전도승과 역경승(譯經僧)들은 대부분 서역인이었다는 점은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의 불교를 이해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서역의 여러 나라에 불교가 퍼지게 되면서 동시에 조각·회화· 자수·불탑 등의 불교 미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서역과의 길이 트이게 된 것은 전한의 제 7대 황제인 한무제 유철(漢武帝刘彻 기원전157-기원전87, 재위 기원전141-기원전87)이다. 보통 한나라 무제(한무제)라고 하는데, 한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황제이다.

(사진4: 한무제 유철(漢武帝刘彻)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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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제는 장건(張騫,?-기원전 114)을 시켜서 서역을 개척하도록 했다. 장건(張騫)은 漢제국의 사신으로서 前 2세기에 중국 밖의 다른 나라를 여행하였다. 그는 한 무제 치하의 최초의 공식 외교관으로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믿을 만한 많은 정보를 중국에 가져왔다. 오늘날 신장성으로 알려진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여러 지역을 정복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장건이 개척한 무역로(貿易路)는 실크로드의 주 무역로가 됐으며, 미지의 나라와 지리적인 지식을 비롯해서 중국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데 그야말로 국가적인 영웅으로서 대업을 성취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외부 세계와 상업적인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개척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노력에 의해서다. 이 내용은 사마천의《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장건은 前 138년에 99명의 대원을 이끌고 서역 개척에 나섰다. 목적지는 월지국과의 교섭이었다. 장건은 前 125년인 13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현지에서 결혼도 하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시 붙잡혀서 또 탈출에 성공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돌아왔다. 장건은 많은 정보를 가져와서 제공했다.

(사진5: 둔황 막고굴 벽화(8세기 초): 한무제의 전송을 받으며 서역 개척 길에 나서는 장건<기원전 13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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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서안역사박물관 장건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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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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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입수되는 즉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잃어버린 글을 다시 찾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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