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불교(西域佛敎)를 가다-1 /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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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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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서역불교(西域佛敎)를 가다-1 /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①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5:41 am

실크로드의 관문 서안-①

(사진1:서역인도구법승 현장삼장 초상화)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지금 불교는 스리랑카 동남아시아와 티베트 몽골리아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퍼져있다. 인도불교는 발생지인 인도에서는 교세가 매우 약해져서 거의 800년간 긴 잠을 자고 있다고나 하겠다. 그나마 20세기 중반 경에, 인도의 한 선각자의 지도(指導)로 50만 명이 일시에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改宗)하면서 현재는 약 2천만 명 정도의 확실한 불교신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인도불교는 더욱 성장해야만, 불교 발생지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게 할 것이다. 인도는 지금 불교유적지만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부분적으로 불교가 살아있기는 하다. 인도북부의 라다크 지역에는 티베트 전통이긴 하지만, 1500년간 불교가 존속하고 있다. 인도 동부 아루난찰 프라데시 주에도 티베트 불교가 살아 있다. 순수 인도불교는 서벵골 주(콜카타)와 지금은 방글라데시로 분리되었지만, 다카와 치타콩 지역에 그리고 산악지역에 상좌부 전통의 불교가 살아있다. 서부 뭄바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 형태의 불교가 20세기에 암베드카르 박사의 지도로 불교가 다시 소생했다. 출가승가 공동체와 재가 불교가 균형 있게 발전하고 있으며, 사회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인도불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인도불교의 지형은 티베트 불교가 압도하고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세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함과 동시에 티베트 불교에 의한 바즈라야나(밀교) 전통이 다람살라를 비롯해서 인도의 몇 개 지역에 이식되어 있다. 티베트 본토의 티베트불교가 인도로 이식해온 느낌이다. 인도에서 가장 늦게 발달했던 인도 후기 대승불교가 7세기 티베트로 갔다가 1200년 만에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고나 하겠다. 본래 인도 불교가 티베트로 전해졌기에 티베트 불교가 다시 인도로 돌아오면서 크게 생소함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만역 지금의 중국불교나 한국불교 인도불교가 인도로 돌아간다면 잘 적응할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현장법사는 7세기 인도구법여행을 가서 17년간 서역과 인도전역을 다니면서 성지를 순례하고 인도의 현장에서 인도불교를 견문하고 날란다 대학에서 신유식(新唯識)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인도불교를 중국에 소개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이지만, 현장법사가 현장삼장이 되어 중국에 돌아와서 인도의 신불교사상을 역경한 것은 중국불교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무대가 바로 실크로드의 관문인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인 지금의 서안(西安)이었다.

(사진2: 실크로드와 불교전파 경로.)
불교와 실크로드를 소개하려면 너무나 스케일이 방대하다. 이글의 주제가 ‘서역불교를 가다’인데, 나는 서안에서부터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키워드는 당나라 현장삼장 서역 실크로드 인도 등이 될 것이다. 먼저 서안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자유스럽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엮어 가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글을 읽는 분들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진짜 서역구법(西域求法)을 간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서안(西安)
중국 사람들은 서안을 시안(Xi'an)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시안(Sian)이라고 로마자를 표기했었지만, 지금은 Xi'an(西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명나라 이전 까지는 장안(長安 Chang'an)이라고 불렀다. 지금 다루려고 하는 ‘서역불교를 가다’의 주제대로 한다면 당나라 시대 수도였던 장안을 배경으로 한다. 중국에는 22개의 성이 있고, 네 개의 직할시, 두 개의 특별 행정구, 다섯 개의 자치구가 있는데 시안은 산시 성(陕西省)의 성도(省都)이다. 산시 성은 약 4천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고 중국에서는 17번째로 인구가 많다. 이 성의 주된 도시가 바로 시안이다. 시안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왕조가 명멸했던 곳이다. 시안시의 인구는 거의 1천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시안은 중국의 관중 평원(關中平原)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시안의 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에는 무관(武關), 서쪽에는 대산관(大散關)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문은 관중과 화베이 평원을 분리하는 동쪽의 함곡관이었다. 이곳은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의 중심지였고, 비옥한 토양과 관개 시설로 진나라는 여러 나라들 중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고 결국 중국을 통일하였다. 주나라 이래로 이 지역은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를 포함해 12개 왕조의 수도였다. 당나라 때 중국의 경제 중심지가 남쪽의 장강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관중 지역은 점차 대운하를 통해 들어오는 물자에 의존하게 되었고, 당나라 말기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을 겪으면서, 다시 황폐해져 당나라를 멸망시킨 주전충이 동쪽 개봉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에는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중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 가면서 명나라 말기에는 관중을 포함한 산시 일대가 이자성이 이끄는 반군 발생 거점이 될 정도까지 퇴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은 잃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 서부지역인 신장성 등의 개발을 위한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3: 당나라 시대 長安城의 궐(闕), 산시 성 건능(乾陵) 李重润(682-701 중종의 아들)의 무덤 벽화.)
장안은 한(漢) 나라 때에 장안으로 이름이 불리어졌고, 전한(前漢), 북주(北周), 수(隋)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당(唐) 왕조 시대에는 장안은 대제국(大帝國)의 수도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로 발전했었다. 또한 서도(石), 대흥(大興), 중경(中京)으로 불린 적도 있었지만, 송(宋) 왕조 이후 정치·경제의 중심이 개봉(開封)으로 옮겨지면서 장안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당나라 때 장안은 주변 여러 민족의 도성 건설의 모범으로서 한국의 신라 왕경(王京)이나 발해 상경용천부, 일본의 헤이조쿄(平城京)와 헤이안쿄(平安京)가 장안을 모방해서 세워진 도시다.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말인 '장안'은 오래된 도읍인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의 화제’란 말도 당나라 수도 장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계속).

(사진4: 시안 장안성에서)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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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입수되는 즉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잃어버린 글을 다시 찾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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