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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6-12-12, (월) 6:58 a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전체글: 427
하서주랑과 돈황불교

(사진1: 동서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와 하서주랑.)
(사진2: 하서주랑이 있는 감숙성의 영역.)
(사진3: 당나라 시대 중국과 타림분지를 연결하는 하서주랑.)
하서주랑(河西走廊)은 실크로드 상에서 매우 중요한 통로이다. 동쪽은 오초령이라는 데에서 시작해서 서쪽은 옥문관(玉門關)에 이르기까지이다. 하서주랑은 남산인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과 북산(北山)인 마종산(馬鬃山), 합려산(合黎山) 및 용수산(龍首山)) 사이의 길이 약 900km, 폭 수km에서 100km에 이르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를 말한다. 복도 모양과 같이, 황하의 서쪽에 있어서 하서주랑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와 하서사군(河西四郡)인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을 포괄한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은 한족, 몽골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이 함께 어울려서 살고 있다. 하서주랑은 중국 한나라에서 서역인 신강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이다. 고대 실크로드 시대에는 중국의 관문을 통과하는 지역으로서 고대 중국과 서방세계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를 진행시킨 국제통로였다.

이 길을 통해서 시안(西安)에서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질러서 파르티아와 박트리아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페르시아와 로마에 까지 이르게 되는 실크로드의 간선도로였다. 파르티아는 오늘날의 이란 북동부에 해당하는 고대의 지역이다. 파르티아 제국(247 BC– 224 AD)의 전성기 때에는 이란의 전 지역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뒤덮었을 뿐 아니라, 아울러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이라크, 그루지야, 터키 동부, 시리아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아 만 해안 지역,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방까지 세력권에 넣었다.

(사진4: 미트리다테스 2세 때의 파르티아 제국의 영역.)
하서주랑에서 가장 포인트는 둔황이다. 현재 둔황은 중국에서 군(郡)정도 급의 도시이다. 간쑤성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둔황은 고대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정거장과 같은 곳이다. 둔황하면 모가오쿠(막고굴 莫高窟)이다. 막고굴은 천불동(千佛洞)이 대표적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둔황석굴이라고 부르고 관심 있는 분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불교문화 관광지이다. 둔황은 사주라고도 하며 위구르 족들은 둔칸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이 둔황을 찾으면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月牙泉)과 사막으로 형성된 명사산(鳴沙山)을 구경하고 다음은 둔황의 하일라이트인 막고굴을 찾아서 불교문화유산을 감상하게 된다.

(사진5: 둔황 막고굴.)
둔황은 오아시스인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과 모래가 노래한다는 명사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둔황은 고대시대에 남쪽 실크로드 상의 교차로에 위치해서 매우 전략적인 곳이었다. 둔황은 인도에서 티베트의 라싸와 몽골 남 시베리아로 통하는 주된 도로였다. 또한 좁은 하서주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했는데, 이 길은 바로 북 중국의 평원과 고대 중국의 수도 장안과 낙양으로 들어가는 심장부였기에 매우 중요한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요충지였다.

<사진6: 월아천(月牙泉)과 명사산(鳴沙山)>
둔황지역은 기원전 2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사는 곳이었는데, 티베트-버마 계통의 강(Qiang羌)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또한《史記》에 의하면 이곳은 한때 월지(Yuezhi月氏)족의 고향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기원전 3세기에는 흉노(Xiongnu匈奴)족이 지배했지만, 기원전 121년 경 한 무제가 흉노를 물리쳤다고 한다.

(사진7: 기원전 176년부터 기원후 30년까지의 월지족의 이동경로.)
(사진8: 흉노의 판도는 몽골, 서 만주, 신장, 동 카자흐스탄, 동 기리기기스탄, 내 몽골과 간쑤 지역 등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있었다.)
<사진9: 한 무제(Emperor Wu 156 BC–87 BC)>
한 무제는 전한(前漢) 세종 효무황제 유철(世宗 孝武皇帝 劉徹, 기원전 156년-기원전 87년)로 전한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141년-기원전 87년)이다. 아명은 체(彘)이며 자는 통(通)이다. 경제의 열한 번째 아들이며 효경황후 왕씨(孝景皇后 王氏)의 소생이다.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를 다스렸으며 해외 원정을 펼쳐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남월, 위만조선 등을 멸망시켜 당시 한족 역사상 두 번 째로 넓은 영토를 만들어 전한의 전성기를 열었다.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韓半島)에 한사군을 설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중국 역사상 진나라 시황제·강희제 등과 더불어 중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둔황은 전한 때, 다른 세 곳과 함께 최 일선의 국경 수비대 지역이었다. 한 무제가 흉노를 물리치고 요새화 한 곳이었지만, 항상 북방 이민족들에게 시달린 지역이었다. 둔황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고, 남북 실크로드의 교착지점이었다. 둔황은 무역의 중심지역이기도 했는데, 중국 티베트 몽골의 무역상과 서쪽에서 타클라마칸(타림분지) 사막을 건너온 캐러밴들과의 무역 중계지점으로서 일단 멈춤을 한 장소였다. 수. 당시대에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의 실크로드 상에서의 교섭의 허브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1세기 전후 서역에서 온 불교승려들이 중ㄱ구으로 들어가기 전, 이곳을 경유했고, 상당히 규모가 큰 불교공동체가 발달되었던 곳이다. 둔황 막고굴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동굴이지만, 처음엔 승려들의 명상을 위한 목적으로 바위를 깎고 돌을 파내어서 만든 동굴이었다. 나중에 불상숭배와 성지순례 객을 위한 동굴사원으로 발달했다. 나중에는 이른바 천불동이라 하여 많은 동굴이 만들어지고, 일종의 동굴 사원 군(群)으로 발전하여 타운을 형성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다. 불교가 주류 종교였지만, 기독교 유태교와 마니교의 성경을 포함한 인공물들이 발견된 것을 보면 실크로드 상의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 또한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추정되는 국제타운이었다고 생각된다. 둔황은 5호 16국 시대에는 이고(李暠, 351-417)가 서량(西涼, 400-421)을 건국한 지역이다.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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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입수되는 즉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잃어버린 글을 다시 찾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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