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불교를 가다-4 /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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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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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서역불교를 가다-4 /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2)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6:33 am

그레코 불교와 쿠샨왕조-②

(사진1:카니슈카 대왕이 대승불교에 귀의하는 모습의 삽화.)
쿠샨제국은 인도-그리스 왕국의 그레코 불교의 전통을 계승했다. 쿠샨제국이 인도-그리스 왕국의 불교후원자 역할을 대체하면서, 불교 전통에도 크나큰 변화가 올 수밖에 없었다. 쿠샨제국은 기원후 1세기 중반부터 3세기 중반 사이에 불교의 대후원자로서 기능을 하면서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과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에 불교전파를 확장했다.

(사진2: 초기대승불교의 3존상, 좌로부터 쿠샨제국 신도, 미륵불, 부처님, 관세음보살, 불교승려-2세기 간다라)
카니슈카 대왕은 카슈미르에서 제4차 경전결집을 후원했다. 상좌부 전통에서는 1차 2차 3차는 인도에서 4차는 실론(스리랑카)에서 개최되고, 5-6차는 미얀마에서 열린 것으로 주장한다. 그렇지만, 대승권에서 제4차는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인도북부 카슈미르에서 개최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카슈미르에서 열린 제4차 결집은 불교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제4차 경전 결집시기에 이르면 불교는 여러 개의 종파로 분열하게 되는데, 상좌부에서는 제4차 결집이 탐바파니(스리랑카) 알로카 레나(현재의 알루 비하라)에서 기원전 1세기에 와타가마니 아바야 왕의 후원으로 개최됐으며, 여기서 개최된 결집을 제4차로 인정하고 카슈미르 결집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와타가마니 아바야 왕은 이 결집을 후원하지 않았으며, 지역의 한 족장(族長)이 후원했다고 하며, 와타가마니 아바야 왕은 오히려 대승 계통의 아바야기리(무외산사=대승) 파를 후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근거로는 상좌부의 본산인 마하 비하라(大寺)가 한때 공격을 받고 재산이 몰수 당 했다는 이의를 재기하고 있다.

상좌부 제4차 결집이 스리랑카에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데, 사실은 기억에 의해서 삼장을 암송하여 보존해 왔는데, 외세의 침범을 자주 받아서 왕 자신이 여러 차례 피난을 가야 했고, 암송에 의한 삼장의 보존이 불투명하고 또한 기근이 들어서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삼장을 문자화한 삼장으로의 보존의 필요성 때문에 결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와타가마니 아바야 왕의 적극적인 후원은 아니라는 설이다. 또한 마하비하라의 비구들이 참여하여 삼장을 암송한 것은 사실이며, 이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삼장을 문자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른바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4차 결집은 사르바스띠와다(설일체유부)의 전통에서 카슈미르(혹은 잘란다르)에서 기원후 78년경에 결집회의가 개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니슈카 대왕은 와수미트라 삼장의 지도아래 500명의 빅슈(비구)들이 모여서 설일체유부 소전의 아비다르마(아비담마) 텍스트(구사론)를 편집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는 설일체유부의 아비담마는 프라크리트어인 간다리어로 되어 있었던 것을 고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서 결집하도록 한 것이다. 간다리어 아비담마는 카로스티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카로스티 문자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걸쳐서 간다라(지금의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사용된 문자였다. 이 문자는 박트리아 쿠샨제국 소그디아와 실크로드의 나라들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자는 7세기 까지 타림분지의 호탄이나 니야 국에서도 사용됐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다시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개최된 4차 결집으로 돌아가 보면, 이 결집은 12년에 걸쳐서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설일체유부는 끝까지 독립된 종파로 존속이 안 되고, 대승불교에 계승되었지만 4차 결집은 아비담마란 불교교리(심리철학)가 산스크리트어로 체계화되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유럽의 한 불교학자는 카니슈카의 후원에 의한 4차 결집은 허구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또 한 학자는 4차 결집은 상좌부나 대승 양쪽 다 명목상의 결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인도-그리스 왕국의 메난더(밀린다) 1세 왕, 인도의 아소카 대왕, 북인도의 하르샤 왕과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을 불교의 대 후원 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면 설일체유부에서 개최한 제4차 결집대회에서 아비담마 텍스트를 편집했다는데, 도대체 이 텍스트는 어떤 경전인가를 알아보자.

제4차 결집에서 편집된 텍스트는 《아비담마대비바사론Abhidharma Mahāvibhāṣa Śāstra 阿毗達磨大毗婆沙論》이다. 이 책은 상좌부의 설일체유부의 논장인《발지론発智論 Jñānaprasthāna》의 주석서이다.《発智論 Jñānaprasthāna》은 카탸니푸트라( Katyayaniputra, BC 2세기경 가다연니자)가 지은 불전이다. 당나라의 삼장법사 현장(玄奬)이 657-660년에 한역하였으며, 모두 20권이다. 원제는《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이고,《발혜론(發慧論)》《발지경(發智經)》《팔건도론(八健度論)》이라고도 하는데,《아비담팔건도론(阿毘曇八健度論)》(30권)이라는 이역본도 존재한다. 이 책이 나옴으로써 원시불교에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리가 독립하게 되었다. 초기 유부에는 6종의 논서가 더 있었는데, 이들을 한데 모아 육족론(六足論)이라 부르고 그 책을 신론(身論)이라 한데서 논서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모두 8장 44절이며, 8장은 각각 잡(雜)·결(結)·지(智)·업(業)·대종(大種)·근(根)·정(定)·견(見)의 팔온(八蘊)으로 나뉘고, 44절은 44납식(納息)으로 구성된다. 유부교학의 기초를 마련한 책으로 평가되며, 주석서로는《대비바사론》(200권)이 있다. 불멸 400년 후 카니슈카 왕이 500명의 아라한을 카슈미르에 모아놓고 삼장(三藏)을 주석하게 하였는데, 《대비바사론》도 그 중의 하나였다.

(사진3: 카니슈카 대왕이 건립한 인도 펀자브 바틴디아에 있는 킬라 무바락 성.)
쿠샨제국은 로마제국과도 교섭을 했지만, 특히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불교가 동진하게 된다. 기원후 1-2세기 경, 군사적으로 북부 인도와 타림 분지를 점령했다. 쿠샨제국은 자신들의 옛 고향인 이곳을 확보하고 로마와의 무역을 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쿠샨 제국은 중국군대와 함께 유목민족의 습격에 대적하는데 협력했고, 그 나라가 중국 한(漢)나라였고, 기원후 84년 한나라 장군 반초와 협력해서 소그디안들과 대적했다.

(사진4: 대승경전을 중국어로 최초로 역경한 쿠샨제국의 승려인 로카세마<기원후170년>)
한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맺고, 카니슈카 대왕 시대에는 쿠샨제국은 중국에 의존하던 신장지역의 카슈가르에 왕국을 세워, 호탄과 야르칸드를 통제하기도 했다. 쿠샨제국은 행정에 인도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를 도입하고 세린디안 예술이 창조되도록 그레코 불교 예술을 소개해 줬다. 쿠샨제국은 한 나라에 선물을 보냈고, 불교 전도단을 한 나라에 파견했고, 삼장법사인 로카세마 빅슈(비구)를 중국 한 나라 수도 낙양에 보내서 역경을 하도록 했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는데, 쿠샨제국은 큰 역할을 했으며, 실크로드 불교 전법에 결정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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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는 입수되는 즉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잃어버린 글을 다시 찾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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